윤석열과 한동훈의 고등교육 '모욕'은 닮은 꼴이다

최원형 입력 2022. 5. 15. 18:36 수정 2022. 5. 16.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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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모욕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끝없이 반복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였던 지난해, 그의 배우자가 허위 경력으로 대학 겸임교수로 일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른바 '강사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실질적으로 5년 이상의 연구 경력이 있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연구 업적도 있어야" 하는 등 "연 수입이 2천만원도 넘기지 못하고 1년짜리 비정규직에 불과한 그 하찮은(?) 시간강사라도 해볼라치면" 고등교육 체계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을 만족시켰어야 했다는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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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22년 5월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생각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프리즘] 최원형 | 책지성팀장

어떤 종류의 모욕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끝없이 반복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였던 지난해, 그의 배우자가 허위 경력으로 대학 겸임교수로 일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윤 대통령은 “겸임교수라는 건 시간강사”로, “시간강사는 (정식 교수를 뽑을 때처럼) 자료를 보고 뽑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어디 석사과정, 박사과정에 있다 그러면 그냥 얘기(시간강사 지원)를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시간강사는 전공을 엄격히 따지지 않고 알음알음 뽑는 게 관행이라는 인식이 들어 있었다.

강사들은 “대학 시간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이른바 ‘강사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실질적으로 5년 이상의 연구 경력이 있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연구 업적도 있어야” 하는 등 “연 수입이 2천만원도 넘기지 못하고 1년짜리 비정규직에 불과한 그 하찮은(?) 시간강사라도 해볼라치면” 고등교육 체계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을 만족시켰어야 했다는 비판이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미성년 자녀가 여러 편의 ‘논문’을 작성해 국외 저널들에 게재하는 등 부적절한 ‘스펙 쌓기’를 해왔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지난해 윤 대통령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자녀가 쓴 글들을 “석·박사 이상만이 작성할 수 있는 것으로 연상되는 ‘논문’이라 칭하는 것은 전형적인 왜곡·과장”이며, 그것들이 게재된 곳은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게재가 완료되는 ‘오픈액세스 저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논란만 되지 않았다면, 한 후보자 자녀가 쓴 글들은 미국 대학 입시건 어디에서건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으로 포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논문이 아닌 “에세이, 보고서, 리뷰 페이퍼 등”으로 도로 격하하기 위해, 돈만 내면 글을 실어주는 가짜·부실 저널을 그 대척점에 있는 ‘오픈액세스’ 저널로 둔갑시키는 무리수를 둔 셈이다. 오픈액세스는 비싼 구독료 없이도 연구 성과를 쉽고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인데, 구독료보다 게재료에 주로 기댄다는 특징을 악용한 가짜·부실 학회나 학술지는 이 운동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꼽힌다.

고위 공직 후보자들은 검증 과정에서 논문 표절, 자녀 입시 같은 대학과 고등교육 영역에서 곧잘 미끄러진다. 배경에는 대학과 고등교육이 ‘엘리트 세습’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하는, ‘모욕’에 가까운 대중 감정이 있다. ‘누군 부모 잘 만나서 저런 봉사활동도 하고 논문 저자도 되는구나!’ 그러나 단지 기회의 불평등·불공정을 탓하는 인식만으로는 포착해낼 수 없는 종류의 모욕도 있다. ‘‘명문대’ 학생이 왜 ‘지방대’ 표창이 필요하냐’, ‘시간강사는 그냥 뽑는다’,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게재 완료’, ‘논문 아닌 에세이 수준의 글’ 따위의 말들에서 끊임없이 확인되는, 고등교육 본연의 가치에 대한 모욕이다. 학문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의 수단으로서만 바라보는 태도가 이런 모욕을 주는 주범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지위재(positioning goods)로만 취급된다. ‘좋은 대학’이 목표지만 ‘좋은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서열화된 대학 간판은 믿어도 고등교육이란 내용물은 믿지 않는다. 정치세력에 따라 공수만 바꿔가며 서로 불평등·불공정하다고 질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묻지마’ 정시 확대, ‘에이아이(AI) 교육’ 등 윤석열 정부의 공허한 교육정책 등이 ‘불평등·불공정 타령’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교육을 지위재로 취급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대학이란 간판이 아니라 고등교육이란 내용물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은 비로소 누구에게나 공적으로 제공되는 ‘공공재’(public goods)일 뿐 아니라, 전사회적으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동재’(common goods)가 될 수 있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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