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비를 기다리는 마음

최우리 2022. 5.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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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도입 부분은 봄비를 떠올리게 한다.

서울·경기 지역은 그나마 평년 대비 누적 강수량이 94%였지만, 경북과 강원 영서 지역은 67%로 약하게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방구석에 앉아 공상을 즐기는 나는 일단 비나 한번 내리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을 곱씹으며 비를 기다리는 이 마음을 합리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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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지난달 26일 강원 강릉시 홍제동 한 공원에 활짝 핀 라일락꽃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연합뉴스

최우리 | 경제산업부 기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도입 부분은 봄비를 떠올리게 한다. 한음 한음 손끝으로 피어나는 빗방울 소리를 표현한 곡을 듣다 보면 빗방울이 떨어지는 하늘 아래 우산을 펴면서 집을 나서는 아침의 풍경이 떠오른다. ‘빗소리 에이에스엠아르(ASMR)’ 유튜브 영상까지 듣다 보면 빗소리는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아이·부모·스승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청명한 5월이지만 하루 정도는 비가 내리면 좋겠다. 어두워진 하늘이 맑게 갠 뒤 눈에 들어온 동네의 빨간 장미가 더 빨갛기 때문이다.

비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대지의 메마름 때문이다. 매달 10일마다 발표하는 행정안전부 5월 가뭄 예·경보를 보면, 지난 1일 기준 최근 6개월 동안의 전국 누적 강수량이 평년의 77% 수준이었다. 서울·경기 지역은 그나마 평년 대비 누적 강수량이 94%였지만, 경북과 강원 영서 지역은 67%로 약하게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 한국과 같은 선진국은 비가 적게 온다고 해도 상하수도 시설 등이 완비되어 있어 물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쉽게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도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평년 대비 109%로 현재까지의 물 공급에는 문제가 없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세계 식량과 에너지안보 상황을 분석하는 국제 뉴스를 계속 보다 보니 불안감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언론이 암울한 미래를 섣불리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지만 현실을 직시할 필요는 있다.

기후학자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 혼란으로 식량난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다. 특히 남아시아를 주목하라고 경고해왔다. 이 지역에서 식량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그 지역 내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세계적인 식량난을 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일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가 밀 수출을 금지했는데 이제 다 같이 쌀을 많이 먹으면 되는 걸까. 인도의 올해 3월은 121년 만에 가장 더웠고 4월 역시 역대 3위의 기온을 기록했다. 세계적인 밀 생산 지대인 우크라이나 지역도 파종을 앞두고 벌어진 전쟁으로 올해 생산량이 현저하게 줄어드는데 수출길 역시 막힐 것이라고 언론은 전망한다.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하는 시민들도 서서히 기후와 경제, 산업과 국제정세 관계에 체감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방구석에 앉아 공상을 즐기는 나는 일단 비나 한번 내리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여름이 시작됐다는 입하(5월5일)가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실내에서 모기 발견 횟수가 늘고 있다. 계속 비가 내리지 않고 기온이 오르면 올여름 모기도 늘 것이다. 이즈음 비가 내리면 가뭄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만 산란이 시작되는 모기의 유충들을 쓸어가는 효과가 있을 텐데, 야속하게도 비가 오지 않고 있다.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을 곱씹으며 비를 기다리는 이 마음을 합리화해본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작물들에 물을 열심히 주고 있는데 정작 싹은 안 나고 화분 속 흙만 굳어졌다. 흙이나 돌 사이에 공기가 들어 있는 공간에 빗방울이 흘러들어가 이를 막고 다시 수분이 증발하면서 공기가 들어 있던 빈틈을 메워버려 흙이 굳어버린 듯하다. 이렇게 땅이 굳으면 땅속 적당한 수분과 공기로 숨을 쉬며 생활하던 지렁이에게도 위기가 온다. 숨 쉴 공간이 빗방울로 채워지면서 숨을 쉬기 위해 태양 아래로 외출을 단행하다 몸이 마르거나 외부 충격으로 몸이 터져 죽기도 한다.

날씨를 관찰하다 보면 늘 적당한 삶을 소망한다. 지렁이도 나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비가 내리길 바란다. 기후위기 시대를 견디는 시민들은 보통의, 평범한, 적당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장 어렵고 간절한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듯하다.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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