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식량안보 전략, 제로부터 다시 짜라

2022. 5. 1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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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소 잃고도 외양간 고쳐야 한다. 농업은 그렇다." 한 생명공학 전문가의 얘기다. 급변하는 대외 상황과 기후변화 속에 국가 식량안보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위기감이 바탕에 놓여 있다.

지구촌을 움직이는 상식과 원칙이 뒤집어지는 '뉴노멀'과 '파괴'의 시대에 먹거리마저 위협받고 있다. 세계화의 종식과 급격한 기후변화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인류의 삶과 산업을 지탱하는 에너지와 자원, 식량 공급체계가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다.

당장 심각한 작물은 밀이다. 세계 1위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5위 국인 우크라이나 간 전쟁과 수출 중지로 밀 공급이 타격을 입은 가운데 밀 생산 2위, 수출 10위권 국가인 인도마저 수출을 금지했다. 밀 수출 2~3위 권인 미국과 캐나다도 가뭄으로 작황이 좋지 않다. 상황이 나빠지자 이집트가 밀·밀가루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헝가리, 터키 등도 대열에 동참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식량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유엔 산하 FAO(유엔식량농업기구)는 최악의 경우 세계 각국에서 1300만명 이상의 영양실조 환자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한다. 특히 밀은 전 세계 인구 35%의 주식인 만큼 밀 부족은 세계적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피해는 밀 의존도가 높은 저개발국들에 집중되겠지만 우리나라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가격인상뿐 아니라 서민식품인 라면이나 국수 먹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밀, 콩, 팥 등 주요 수입 곡물을 비축하고 있지만 세계 각국이 수출 빗장을 거는 상황에서 충분치 않아 보인다. 특히 밀은 자급률 0.8%로 수입이 막히면 방법이 없다. 밀을 주 원료로 하는 산업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요소수 부족이 국가 물류대란 대란 우려를 키운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2㎏으로, 갈수록 소비가 줄어드는 쌀 연간 소비량 57㎏의 절반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정부는 2025년 밀 자급률 5%를 목표로 세웠지만 좋은 시절의 얘기다. 윤석열 정부도 식량주권 확보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밀 자급률 목표는 2027년 7%에 그친다.

문제는 식량주권 확보가 산업과 경제 논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딛고 서있는 바닥이 흔들리는 시대에는 전략을 제로부터 다시 짜야 한다. 탈세계화와 공급망 붕괴, 급격한 기후변화라는 복잡한 변수를 모두 고려한 식량주권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농업을 반도체나 배터리 못지 않은 미래 산업으로 규정하고 인력육성부터 기술개발, 산업화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특히 주요 작물에 대해 자체 조달 방안과 글로벌 공조 전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농업은 기후변화, 저출산·고령화, 디지털 전환, 일자리 창출, 미래 먹거리산업 육성이란 국가 현안과 모두 맞닿아 있는 산업이다. 전통산업인 동시에 선진국 산업이기도 하다. 당장 우리 농촌 현실은 갈수록 줄어드는 농지와 일할 사람 부족으로 열악한 상황이지만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잘 풀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도 있다.

곡물자급률 19.3%라는 수치는 한국의 농업 경쟁력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수준까지 낮아져 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세계적 위기 중 하나로 식량을 꼽으면서 해결 의지를 드러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취임사에서 밀·콩 자급률 개선, 쌀가루 산업화, 곡물기업 지원, 농지 확보 등을 통한 식량주권 확보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종자부터 농식품 산업 전반의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가장 잘한 R&D 중 하나로 통일벼 개발을 꼽는다. 정부와 연구자들이 10년 이상 개발에 매달려 1971년 탄생한 통일벼는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해방시켰다. 그 때의 각오로 종자 개발부터 미래 인재 양성, 유망 스타트업 육성, 스마트 농업 기술투자, 농업기업 성장 지원, 글로벌 협력까지 종합적 전략을 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K-농업'의 반전을 이뤄낼 때다.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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