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롤링 무죄" 판결에 속타는 대형 플랫폼

구민기 입력 2022. 5. 15. 17:34 수정 2022. 5. 1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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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은 '유죄' 여기어때 '무죄'
최근 판례서 불법 경계 뚜렷해져
"공개된 정보는 허락 불필요"
재판 앞둔 네이버 판결에 '이목'

네이버가 부동산 정보 스타트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플랫폼업계에 ‘크롤링’(자동으로 웹페이지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경쟁사인 여기어때와 야놀자 간 크롤링 분쟁 재판에선 “정보 제공자 허락 없이도 합법적 크롤링이 가능하다”는 판례가 나왔다. 빅데이터의 소유권과 적법한 활용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후발주자 ‘비밀병기’ 크롤링은 무죄?

15일 법조계와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다윈중개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네이버부동산의 매물 정보를 무단으로 크롤링해 가져가 상업적으로 쓰는 행위를 중단하고 손해배상하라는 내용이 골자다. 다윈중개는 2019년 설립된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으로, 자체 매물은 물론 네이버부동산의 매물을 자사 플랫폼에 노출하고 있다. 네이버 측은 “오랫동안 데이터를 수집해온 기술적 노하우와 신뢰도를 손쉽게 무단으로 활용하는 불법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야놀자는 심명섭 여기어때 대표를 상대로 같은 취지의 소송을 냈다. 숙박업소 목록을 무단으로 크롤링해 빼돌려 영업에 심각한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은 엇갈리게 나오고 있다. 여기어때는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불법 크롤링 판정을 받은 2017년 사람인과 잡코리아 간 분쟁 결과와는 대비되는 판결이다. 법조계에서는 “합법과 불법 크롤링 기준에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롤링 소송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크롤링이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망 침입죄에 해당하느냐다. 사람인 크롤링 사건 재판부는 잡코리아가 일률적으로 크롤링을 금지한 상황에서 사람인이 가상사설망(VPN)을 활용해 침투한 행위라는 이유로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여기어때와 야놀자 사건 재판부는 모바일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이 따로 제한돼 있지 않았고, 누구나 열람해볼 수 있는 정보였다는 점에서 여기어때 크롤링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즉, 플랫폼에서 설정한 접근 권한 내에서 크롤링했다면 합법적인 크롤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 제공자 허락 여부는 판단 기준이 되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정보 제공자의 허락’이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며 “공개된 정보라면 허락 여부와 상관없이 크롤링해도 무방하다는 판례”라고 해석했다.

저작권법상 데이터베이스 제작자 권리침해죄 성립 여부도 논쟁거리다. 크롤링한 데이터가 저작권에 해당할 만큼 정보 제공자 노력이 들어갔는지, 정보 제공자에게 큰 피해를 줬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재판부는 여기어때가 크롤링한 데이터에 대해선 “숙박업소 정보 50개 항목 중 3개에서 8개 사이의 정보를 크롤링했으며 영업상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반면 사람인 크롤링 재판 당시에는 “사람인 크롤링으로 잡코리아 마케팅 비용이 2.5배나 증가하는 등 큰 피해를 봤다”고 결론지었다.

 “법적 기준 나왔다” 긴장하는 업계

불법 크롤링과 합법 크롤링의 윤곽이 나타나면서 플랫폼업계에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크롤링은 플랫폼 업계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쫓기 위한 핵심 수단이다. 검색엔진, 쇼핑몰, 콘텐츠 등 다양한 플랫폼업계에서 다수 업체가 크롤링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크롤링 소송을 제기한 네이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로선 불리한 상황. 법조계에선 다윈중개의 정보통신망 침입죄가 성립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네이버부동산은 플랫폼 설계상 크롤링을 일률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김석환 다윈중개 대표는 “순전히 공개된 데이터만 크롤링했고, 해킹 등 어떤 불법적인 우회 방법을 이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데이터베이스 제작자 권리침해죄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다윈중개는 크롤링한 매물을 ‘아웃링크’(기존 정보 제공자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행위) 방식으로 부동산 매물을 노출했다. 이런 방식은 네이버부동산 플랫폼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 크롤링이라는 게 다윈중개의 주장이다. 반면 네이버는 “허위 매물을 거르고 부동산 매물을 노출하는 등 데이터 자체에도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맞서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아웃링크 방식 크롤링은 새로운 형태”라며 “업계에서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 크롤링

웹페이지의 정보를 긁어가는 행위다. 크롤러라는 프로그램으로 주어진 웹페이지에 접속해 데이터를 끌어와 분류하고 저장한다. 데이터를 다수 확보하는 것이 플랫폼 기업들에 중요해지면서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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