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터지면 10조"..미국 수출도 넘본다, 체급 달라진 'K방산'<1>

김경진 2022. 5. 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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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성산구 신촌동에 위치한 한화디펜스 1사업장 내부. 김경진 기자


지난 2일 창원시 성산구 신촌동에 있는 한화디펜스 제1사업장. 축구장 10개 넓이(5만8500㎡)의 초대형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가로 4.5m, 세로 3.5m 크기의 대형 태극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국토를 지키는 ‘국방’이면서, 경제적 가치를 키우는 ‘산업’으로서 방산(방위산업) 업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주포 한 대에 2800개 부품…용접만 45일


태극기 왼편에는 ‘위장 도색’ 직전의 K9 자주포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K9 자주포 한 대에는 700조각의 방탄강(총탄을 막기 위해 표면을 단단하게 만든 강재)이 들어간다. 조각을 이을 때마다 안팎으로 총 6번의 용접 과정을 거친다. 이 회사 김종윤 구매기획팀장은 “용접에만 달포(45일), 부품 2800여 개를 장착하는 데 총 제작 기간이 100일쯤 된다”며 “자체 시험장에서 주행·작동 시험을 거치고 나서야 수출길에 오른다”고 설명했다.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 [사진 한화디펜스]

국내 시장 포화되자 수출길 ‘개척’


자주포의 대당 가격은 약 40억원이다. 현재까지 누적 수출액 5조원에 달하는 ‘K방산’의 일등공신이다. 이처럼 토종 방산업체들이 해외 시장에서 올린 ‘전과’가 눈부시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는 지난해 70억 달러(약 8조9900억원)어치의 계약을 따냈다. 5년 전 25억6000만 달러(약 3조2900억원)였던 점을 고려하면 비약적인 성과다.

안영수 항공전략연구원장은 “국내 방산업체는 군과 계약 생산을 통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한편, 갑자기 계약이 끊기는 문제를 겪어 왔다”며 “이런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제는 수출 공신이 된 K9 자주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2020년 방위사업청과 납품 계약이 종료된 이후 K9은 수출만이 유일한 살길이 됐다. 이집트를 포함해 지금까지 8개국과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호주 ‘레드백’ 수주하면 10조원 쾌거


한화디펜스는 현재 ‘레드백(호주 독거미)’ 사업 수주에 뛰어든 상태다. 레드백은 K21 장갑차를 기반으로 호주 현지의 조건에 맞춰 개발한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다. 호주 정부는 181억 달러(약 23조원)의 예산을 잡아놨다. 현재 한화디펜스와 독일 라인메탈이 최종 후보에 올라있다. 업계는 올 하반기 한화가 수주에 성공하면 10조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사진 한국항공우주산업]


K9 자주포와 함께 천궁Ⅱ(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디펜스), FA-50을 포함한 고등훈련기 T-50(한국항공우주산업·KAI), 1400t급 잠수함이 방산 분야의 ‘수출 4스타’로 불린다.

이 가운데 천궁Ⅱ는 올 초 아랍에미리트(UAE)와 4조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단일 유도 무기 수출로는 최대 규모다. KAI는 T-50 계열 수출로 누적 3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KAI 측은 “수출국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올해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 등에 추가 수출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1년부터 1400t급 잠수함 6척(인도네시아 등)과 군수지원함 등 군함 6척(영국·노르웨이)을 수출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누적 수출액이 36억 달러(약 4조6200억원)에 달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방산업계 관계자는 “‘K방산의 핵심 경쟁력은 가성비(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라며 “K9 자주포는 자동화, 천궁Ⅱ는 현지 수요를 반영한 개발·생산의 현지화, T-50은 원자재 대량 구매, 잠수함·군함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통해 원가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화디펜스 K9는 자동화 설비에 적극 투자하면서 해외 경쟁사 대비 성능은 비슷하면서 제조 원가를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미국·유럽으로 영토 넓히는 ‘K방산’


최근엔 K방산의 영토가 넓어지고 있다. 한화디펜스는 영국 자주포 획득 사업, 미국 사거리 연장 자주포 사업, 미국 차세대 보병전투차량 획득 사업 등에 도전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K2 전차로 노르웨이와 폴란드 수출을 공략 중이다. 안영수 원장은 “그동안 콧대 높던 선진국들도 국내 제품을 도입하면서 시장이 대형화하고 있다”며 “선진국 눈높이에 맞는 첨단 무기를 생산하면서 K방산의 체급이 확 커졌다”고 말했다.

수출길이 열리면서 방산 생태계도 탄탄해지고 있다. 자주포 한 대(40억원)를 팔 때마다 1·2차 협력업체엔 26억여 원이 돌아간다. 예컨대 자주포에는 STX엔진이 생산한 엔진과 SNT중공업의 변속기가 일체형(파워팩)으로 들어가는데, 이 가격만 8억원에 이른다.

중견 제조업체인 지성큐앤택은 전체 매출의 3분의 1가량이 다연장 로켓포 천무와 천궁Ⅱ에서 발생한다. 이 회사 박희석 대표는 “국내 납품 계약이 끝난 후부터 개량 무기 양산 때까지 중소기업은 험로를 걸어야 한다”며 “이 기간 중 정부가 최소한의 수요를 이어가는 한편 수출 활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국내 최초 수출 잠수함인 인도네시아 1400톤(t)급 잠수함 항해 모습. [사진 대우조선해양]


방산업계도 정부에만 기대는 천수답 경영을 넘어 체질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위원은 “정부의 외교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방산기업도 본연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개발과 경영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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