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으로 루이비통 레스토랑 파격 이끌어.. 한국계 입양아 출신 이 남자

송혜진 기자 2022. 5. 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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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루이비통 메종의 레스토랑 지휘하는 피에르 상 보이에
7살에 프랑스로 입양된 유명 한국계 셰프
코로나 때 배달했던 비빔밥, 프렌치 코스 요리로 내놔
다음 달 10일까지 열리는 루이비통의 임시 레스토랑을 총괄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 뒤로 천장에 매달려 샹들리에처럼 반짝이는 1만3899개의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꽃송이 장식이 보인다. /김지호 기자

어떤 음식은 세상을 연결한다. 오는 6월10일까지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4층에서 운영되는 팝업 레스토랑 ‘피에르 상 at 루이 비통(Pierre Sang at Louis Vuitton)’은 그 자체로 프랑스와 한국을 연결하는 실험실이다. 루이비통 서울이 전세계 메종에서 유일하게 임시 레스토랑을 열었다. 총괄 운영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Boyer·43)가 맡았다. 그는 파리에서도 최고급 요리를 창의적으로 담아내는 ‘누벨 퀴진(새로운 요리)’ 열풍을 만든 주인공으로, 현재 파리에서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5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피에르 상 보이에에게 “루이비통과의 작업은 어떤 의미냐”고 묻자 그는 단숨에 “확장(expansion)”이라고 답했다. “저의 세계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넓어졌고요, 루이비통도 저와 만나면서 새로운 면을 보여주게 됐다고 믿습니다. 어떤 만남은 서로의 세상을 팽창시키는 법이죠(웃음).”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남자

레스토랑 한켠에 선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 ‘피에르 상 at 루이 비통(Pierre Sang at Louis Vuitton)’은 다음 달 10일까지 루이비통 메종 서울 4층에서 운영된다. 전세계 메종에서 유일하게 진행되는 레스토랑 팝업이다. /루이비통

피에르 상 보이에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때가 7살 때쯤이다. 입양 당시 서류에 적힌 한국 이름은 김상만. 프랑스 양부모님은 그를 위해 이름에 한국 이름 ‘상만’ 두 글자를 넣어주려 했지만,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이름은 ‘피에르 상만 보이에’가 아닌 ‘피에르 상 보이에’가 됐다. 보이에는 이후 대학에서 요리와 호텔 경영학을 공부했고 프랑스·한국·런던의 유명 레스토랑을 거치며 일한 뒤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 2012년에 레스토랑 ‘피에르 상 인 오버캄프(Pierre Sang in Oberkampf)’와 2014년 ‘피에르 상 온 감베(Pierre Sang on Gambey)’를 열었다. 현재는 ‘시그니처’ ‘르 로프트’라는 최고급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보이에는 “루이비통이 협업 제안을 했을 때 바로 ‘좋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다른 곳도 아닌 루이비통 서울이다. 서울에서 한국 최고의 식재료를 가지고 프랑스 요리를 한다는 점에 매료됐다. 루이비통이라는 럭셔리 회사를 통해 나의 캐주얼하고 대담한 음식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흥분됐다.”

쌈장 소스와 명이나물을 올린 한우 등심 스테이크. 보이에는 최상의 한국 제철 식재료로 우아한 프렌치 요리를 완성했다. /루이비통 제공

보이에는 런치·디너 코스에 6시간 소금물에 절였다가 구워낸 아스파라거스를 전채 요리로 내놨다. 한국 김치를 만드는 방식에서 착안했다. 한우 등심 스테이크 옆엔 쌈장 소스와 명이나물을 올렸다. 보이에는 “한국의 나물과 꽃을 맘껏 재료로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같은 식용꽃도 한국 토양에서 자란 것과 프랑스에서 자란 것은 맛이 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를 살릴 수 있어 기뻤다.”

보이에가 운영하는 팝업 레스토랑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런치(13만원)·디너(23만원)·티타임(8만원) 코스의 모든 좌석은 지난 달 26일 사전 예약이 열리자마자 5분만에 모두 마감된 상태다.

◇코로나를 이긴 비빔밥

보이에는 런치·디너 코스에 비빔밥도 넣었다. 보이에에게 비빔밥은 특별한 음식이다. 식당을 처음 열 때 점심 메뉴로 시작한 것도 비빔밥이다. 한식이지만 프랑스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음식이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을 제공할 수 있어 지갑이 얇은 대학가 손님들도 먹을 수 있는 메뉴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2020년 3월 프랑스 테제베(TGV) 열차의 부탁을 받고 열차 전용 도시락으로 납품했던 음식도 바로 비빔밥이다. 보이에는 “코로나 기간에도 비빔밥은 힘이 돼줬다. 파리 도시 전체가 락다운 됐을 때도 비빔밥을 만들어 배달했다. 그 덕에 80여명의 직원들에게 계속 월급을 줄 수 있었다”고 했다.

보이에는 락다운이 됐던 파리에서 사람들이 주문해 먹던 배달 비빔밥을 기억하기 위해 이 같은 일회용 식기에 음식을 담자고 루이비통 측을 설득했다. /루이비통

코로나를 견뎌낸 ‘배달 비빔밥’을 드러내기 위해 보이에는 이번 루이비통 팝업에서도 비빔밥을 일회용 종이 상자에 담았다. 새까만 종이상자 안에 갖은 식용꽃과 토종 유정란을 얹은 밥을 담았다. 보이에의 로고와 루이비통 모노그램 로고가 새겨진 종이상자를 열면 상자가 꽃 모양으로 펼쳐진다.

보이에는 “럭셔리 기업이 음식을 일회용 상자에 담아낸다는 건 대단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루이비통이 고맙게도 내 설득을 들어줬다. 한국 손님들이 이 비빔밥을 대하면서 탄성을 지를 때 말할 수 없이 벅차다”고 말했다.

루이비통 측도 비빔밥을 일회용 배달 용기에 담는 대신, 루이비통 마스코트 ‘비비엔(Vivienne)’ 모양의 냅킨 홀더는 버려진 가죽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환경 보호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고심한 결과다.

◇가지를 뻗는 꽃

피에르 상 보이에가 운영하는 식당의 로고. 꽃봉오리와 갓 핀 꽃송이, 그리고 활짝 벌어진 꽃으로 구성됐다. /pierresang.com

보이에의 식당 로고는 꽃 모양이다. 첫 식당인 ‘피에르 상 인 오버캄프’의 로고는 작은 꽃봉오리, ‘피에르 상 온 감베’는 갓 피어난 한 떨기 꽃이다. ‘시그니처’와 ‘르 로프트’를 열면서 보이에는 활짝 핀 꽃송이를 하나 더 추가했다.

보이에는 “내가 심은 요리의 세계에서 꽃봉오리가 돋아났고 그게 자라서 꽃이 됐으며 이제 만개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난 한국이란 토양에서 나와 프랑스라는 나라에 자란 꽃이니까. 내 꿈은 그 꽃이 더 멀고 아름다운 곳으로 닿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그렇게 세상을 연결하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닐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 가득 샹들리에처럼 달아놓은 1만3899개의 모노그램 꽃송이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문득 보이에의 꿈이 저런 모양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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