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이 좌파에 주는 교훈

한겨레 입력 2022. 5. 15. 15:46 수정 2022. 5. 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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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에마뉘엘 마크롱(44)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저녁(현지시각) 파리 에펠탑 앞에 모인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연임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진행된 결선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를 제치고 연임에 성공했다. 파리/AP 연합뉴스

[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 |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유럽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지켜냈다. 그는 대선 결선투표에서 국민연합(옛 국민전선)을 이끄는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을 이겼다. 중도 성향 마크롱은 기성 정당들의 지지를 받아 58.5% 득표율로 여유 있게 이겼지만, 민족주의자며 반이민주의자인 르펜이 프랑스 유권자 10명 중 4명 이상(41.5%)의 지지를 받은 사실은 간과하기 어렵다. 르펜은 2017년 대선에서도 결선에 올라 34%를 득표했다. 프랑스에서는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득표율 1위와 2위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맞붙는다.

프랑스 유권자들 사이에서 르펜 지지율의 급격한 상승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진보적인 좌파 후보가 2017년에 이어 이번에도 결선투표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은 주목받지 못했다. 올해 선거에서는 좌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1차 투표에서 22%라는 꽤 괜찮은 득표율을 거뒀지만, 결선투표로 향하는 2위 자리는 약간의 차이로 르펜에게 내줬다. 사회당 후보로 나선 파리시장은 1.8%라는 실망스러운 득표에 그쳤다. 한때 주류 정치세력이었던 사회당은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과 불안 증가를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키는 데 명백히 실패했다. 2017년 선거에서 젊은 마크롱이 기성 정계를 무너뜨린 충격에서 프랑스 좌파가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고 해도 부당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크롱은 ‘빛’을 많이 잃었으며, 실현 가능한 대안의 부재야말로 마크롱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일 수 있다.

프랑스 좌파는 참혹한 대선 패배에 이어 하원의원 선거를 위한 대응에 나섰다. 지난 선거에서는 마크롱이 이끄는 여권이 전체 577석 중 과반인 346석을 차지했다. 오는 6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2008년 친유럽연합 성향의 사회당에서 탈당한 멜랑숑 주도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이 선거연합을 이뤘다. 비록 이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좌파를 갈라놓는 ‘쐐기’로 종종 작동하는 유럽 통합에 대한 견해차 등이 있다), 그들 모두 좌파의 분열이 사회적 진보의 전망을 손상한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좌파의 분열은, 많은 프랑스 유권자들이 프랑스 정치를 현대화하겠다는 마크롱의 약속에 환멸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마크롱의 입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많은 이들은 마크롱의 정책이 친기업 의제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새 부대에 넣은 헌 술에 불과하달까? 그리고 좌파연합의 목표도 마크롱의 친기업 의제를 막을 수 있는 하원에서의 과반 확보다. 이를 위해 좌파 정당들은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프랑스 그리고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정당 간 또는 정당 내 좌파의 분열로 가장 이익을 보는 이들은 정치적 우파와 기업이라는 건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가 분열돼 있을 때 그들은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모두 부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함께한다면 우리는 단단한 주먹이 돼 때릴 수 있다! 이는 노동운동의 오래된 은유지만, 여전히 들어맞는 말이다. 하지만 단결은 쉽지 않다. 특히 선거 패배 뒤 와신상담하는 동안에는, 패배한 이유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도출하기보다는 기존의 파벌을 강화하고 나서기 훨씬 쉽다. 각 정파는 이런 ‘반사작용’을 극복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정치적 경쟁에 놀아나지 않고 함께 전진할 수 있다. 이는 좌파 정치권 내 분파뿐 아니라 노동조합에도 적용된다. 노동조합이 사회 진보를 위해 단결하고 좌파 정당과 연대하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게 된다. 계속되는 분열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승리 이상의 것을 안겨줄지 모른다. 프랑스에서 얻을 교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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