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어퍼컷? 하려면 제대로 날려라 [세상읽기]

한겨레 입력 2022. 5. 15. 15:46 수정 2022. 5.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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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중앙시장을 찾아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이상한 정부가 출범했다. 시대 변화에 눈감은 정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지 못하는 정부. 시장 이외에 ‘대안은 없다’고 외치던 한물간 신자유주의 교리를 2022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파산선고가 내려진 신자유주의의 재건을 대놓고 추진하는 정부의 출범이라니.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대응해 적극적 재정정책을 폈던 주요국들은 2010년 토론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국정운영 기조를 다시 긴축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유럽의 재정위기를 시작으로 세계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져들었다. 실업과 불평등은 심각해졌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러자 세계 곳곳에서 이주자, 유색인종 등 소수자를 희생양 삼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극우정치가 극성을 부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좋은 일자리가 줄고 먹고살기가 힘들어지자 성, 세대, 계층을 둘러싼 갈등은 전례 없이 심각해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위기가 더해지자, 정부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신자유주의 교리는 파산 선고를 받았다.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지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2020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연 연례회의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긴축’의 종언을 선언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와 대통령 취임사를 보면,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더 늘리겠다는 정책과 말이 가득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임시직 비율이 두번째로 높은 한국 노동시장을 더 유연화하고, 양극화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고치기는커녕 규제를 완화해 더 강화하려고 한다. 민간 중심의 서비스 전달 체계로 안 그래도 몸살을 앓고 있는 돌봄, 보건의료, 교육 등 필수 사회서비스를 영리화하기 위한 ‘서비스산업 발전기본법’ 제정도 추진하겠단다.

국민의 어려운 삶을 보듬기 위해 증세도 모자랄 판에 주식양도세, 종합부동산세, 다주택자 보유세 등을 깎는 부자를 위한 감세를 주장하고 나섰다. 양극화는 “빠른 성장”으로 해결하겠단다. 공정한 분배 없는 성장이 심각한 불평등과 양극화의 원인이라는, 1990년대 초 이후 누구나 다 알게 된 “과학과 진실”에 눈을 감은 것 같다. 끝난 줄 알았던 박정희식 성장제일주의와 한물간 신자유주의를 버무린 듯하다.

대통령이라면 선진국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왜 불행한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 최고를, 합계출생률은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장관 후보자들처럼 돈으로 스펙을 쌓아줄 부모가 없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절망하고 있다. 대학을 나와도 괜찮은 일자리를 얻는 것은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워졌다.

“시대를 읽지 못하면 망한다.” 개인과 기업이 시대를 읽지 못하면 개인과 기업만 망하지만, 대통령이 시대를 읽지 못하면 모두가 망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항상 그렇듯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다.

왜 대통령을 하려고 했는지 자문하라. 설마, 미운털 박힌 사람들 혼내주고, 집무실과 관저를 옮기고, 측근들을 고위직에 앉히기 위해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대통령은 그 직을 수행하는 날부터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의 대통령이고 박근혜, 문재인, 이재명, 심상정의 대통령, 나와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고단한 삶과 함께해야 한다.

세상이 변했다.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목되었던 정부는 해결책이 되고, 해결책이라고 믿었던 시장이 문제의 원인인 시대가 왔다. 40여년 전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했던 “정부가 바로 문제”라는 말을 “고삐 풀린 시장이 바로 문제”라고 바꿔야 할 때가 됐다. 대통령이라면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어퍼컷? 제대로 날려라. 애꿎은 허공에 날리는 어퍼컷은 그만하자. 심각해지는 소득·자산 불평등, 고용 지위와 기업규모에 따라 이중화된 노동시장, 부와 학벌의 세습, 성차별, 재벌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을 갉아먹는 불공정한 사회경제구조에 어퍼컷을 제대로 날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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