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내가 정의를 구현한다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2022. 5. 15. 13: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적 제재 통해 관객에게 통쾌함 선사
뮤지컬 《데스노트》의 흥행 신화는 계속된다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올 상반기 뮤지컬 공연계에서 가장 흥행한 작품 하나만 꼽는다면 《데스노트》일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좌석 간 거리 두기가 해제된 이후 1300석 규모의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이 연일 만석을 이루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김준수, 홍광호, 고은성, 김성철, 강홍석, 서경수, 김선영, 장은아 등 실력 있고 인기 많은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면서 한동안 제대로 된 무대 공연을 만나기 어려웠던 뮤지컬 팬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일본의 동명 베스트셀러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2015년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 같은 프로덕션으로 초연을 했다. 당시 일본 신국립극장 예술감독 구리야마 다미야의 연출로 한·일 양국에서 소개돼 화제가 된 바 있다. 2017년 재공연을 거쳐 올해는 새로운 프로덕션(제작 오디컴퍼니, 프로듀서 신춘수, 연출 김동연)으로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데스노트》 무대ⓒ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데스노트》 무대ⓒ오디컴퍼니 제공

일본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

법학도를 꿈꾸지만 정의를 실현하기에는 범죄자가 너무 많고 공권력이 그들로부터 사회를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믿는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 그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모범생이지만 공권력이 범죄자들에게 제대로 제재를 가하지 못한다면 그 대안으로 사적인 제재가 용인될 수밖에 없다는 자신만의 정의론을 수업시간에 설파하는 등 정의 구현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데스노트'라고 쓰인 한 권의 노트를 우연히 길에서 발견한다. 이 노트 안에 누군가의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은 정해진 시간에 죽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가 시험 삼아 TV 뉴스 속보에 뜬 유괴범의 이름을 적자 경찰과 대치 중이던 유괴범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사건이 종료된다. 이때부터 라이토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위험한 범죄자들의 이름을 노트에 적음으로써 그들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이런 능력을 가지고 실현에 옮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사적 제재를 가능하게 했던 무시무시한 이 노트의 무한한 능력은 원래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사실 '데스노트'는 사신들이 인간들을 죽일 때 사용하는 노트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신 류크는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유희를 추구하기 위해 일부러 데스노트를 인간계에 떨어뜨렸다. 라이토가 우연히 이 노트를 습득한 것이었다. 그리고 라이토는 자신에게 새롭게 부여된 능력이 하늘의 뜻이라고 믿으며 인간들을 심판하는 새로운 신이 되고자 한 것이다.

뮤지컬 《데스노트》 포스터ⓒ오디컴퍼니 제공

원작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이 지속적으로 팬을 양산하고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 역시 이 작품의 소재가 되는 '사적 제재'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일 것이다. 현실 속의 범죄 사건을 통쾌한 사적 복수로 해결한 드라마 《빈센조》나 웹툰 《비질란테》가 시청자들의 공감과 함께 대리만족을 불러일으켰고, 유튜브에서도 범죄자를 대신 응징해 준다는 설정의 채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만기출소 후 자택으로 돌아가자 한동안 그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유튜버들이 자택 주변에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면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의 자택에 잠입해 둔기로 머리를 가격한 가해자는 당시 '의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가 신청한 국민참여재판이 5월18일 열릴 예정이어서 다시 한번 '사적 제재'가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다.

사적 제재는 온라인상에서도 활발하다. 소셜미디어에는 억울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해자의 신상을 직접 공개하거나 혹은 신상털이를 유도하는 글이 빈번하게 올라온다. 해외에서 사적 제재는 더 심각하다. 인도의 경우 아동성애자나 강간범 등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마을 주민에 의해 집단 폭행당하고 사망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사법 불신이 큰 나라일수록 사적 제재 빈도나 이에 대한 사회적 옹호가 커진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국의 법 체계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인 것이다.

한국법제연구원에서 발간한 2021년 국민법의식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성범죄의 경우 우리 사회의 처벌이 불충분하다고 여기는 여론이 87%를 넘는다. 대중의 '성(性)인지 감수성'과 현실 형량 사이의 괴리가 여전히 크다는 뜻이고, 그 사이를 사적 제재가 파고드는 것이다. 법과 수사 체계가 엄밀하고 공정해 그 범죄자가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개인이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적 제재를 행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그 또한 가해자가 된다.

뮤지컬 《데스노트》에서도 결국 사적 제재의 칼을 맘대로 휘두르는 라이토가 사회의 가장 위험한 범죄자가 된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신격화한 나머지 추적하는 경찰들과 인터폴까지도 무차별하게 죽인다. 그를 추적하는 인물로는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민간 탐정 '엘(L)'이 있다. 그 역시 고등학생으로 라이토를 감시하기 위해 같은 학교에 전학해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고 날 선 대화를 주고받으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두 사람이 모두 공권력의 영역을 떠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 싸움의 연장으로 테니스 경기를 벌이는 장면은 공연에서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뮤지컬 《데스노트》 무대ⓒ오디컴퍼니 제공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작품에 반영

이 작품에서 정작 소외된 역할은 공권력이다. 공교롭게도 라이토의 아버지 야가미 소이치로는 아들이 '무차별 원격 살인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경찰국 간부다. 그는 엘이 지목한 살인자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작품에는 생략돼 있지만, 현실이라면 아버지이자 경찰 간부로서 자신의 아들이 '사적 제재'를 행하고 있는지 진실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사적 제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처벌과 판결의 원리가 규정과 이성이 아닌 감정과 증오로 이뤄져있는 만큼 공권력을 대표해, 그리고 아버지로서 라이토가 이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의 사적 제재가 갖는 대중의 공감대, 사신들의 환타지 영역이 주는 재미, 라이토를 따르는 대중의 감정이입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배우들의 호연과 실감 나는 무대 연출을 고루 갖춰 전석 매진으로 순항 중이며 연장 공연까지 확정됐다. 공연은 6월1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7월1일~8월14일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