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은 치솟는데..하청업체 납품단가는 10곳 중 4곳이 '제자리'
[경향신문]
최근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지만 하청업체 10곳 중 4곳은 납품단가를 올려받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초 계약서에 납품단가 조정 조항이 없는 비율이 높았고, 하청업체가 가격 인상 등을 요구할 수 있는 조정협의제도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원·수급사업자 간 납품단가 조정실태에 대한 긴급 점검 조사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응답 업체 중 42.4%는 원자재 가격 상승 분이 납품단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하청업체가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는 의미다. 특히 건설업종의 경우 이 비율은 51.2%에 달했다.
가격 상승분이 전부 반영됐다고 답한 업체는 응답업체 중 6.2%에 불과했다. 이를 포함해 50% 이상 반영된 업체 비율도 12.2%였다. 이 외 10% 이상 50% 미만(20.7%), 10% 미만(24.7%) 순이었다. 공정위가 최근 가격이 급등한 원자재로 제품을 생산해 납품하는 중소기업 401개 업체를 대상으로 지난달 6일부터 한달간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응답 업체 10곳 중 4곳은 애초에 원청과의 하도급 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다고 표시된 조항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하도급법에 따르면 원청업체는 공급 원가 변동에 따른 하도급 대금의 조정 요건과 방법을 하도급 계약서에 명시해야 하는데 공정위 조사 결과 계약서 상 관련 조항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2.1%에 그쳤다. 오히려 ‘조정불가’ 조항이 있다고 답한 경우도 11.5%에 달했다.
계약서에 해당 조항이 없더라도 하청업체는 ‘조정협의제도’를 통해 하도급법에 따라 직접 원청에 납품단가 조정을 요청하거나 조합을 통해 대행협상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응답업체 절반 이상은 이 제도를 모르고 있었다. 업체가 직접 조정 요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한 비율은 54.6%였으며, 대행 협상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비율은 76.6%에 달했다. 실제 가격 조정을 신청해본 적이 있는 업체 비율은 39.7%로 집계됐다.
공정위는 조정 신청 이후에도 절반에 달하는 원청업체가 사실상 이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납품단가 조정 신청을 한 업체 중 48.8%는 원청업체가 협의를 개시하지 않거나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을 통해 대행협상을 신청한 경우는 협의 개시 비율이 69.3%로 비교적 높았으나, 전체 조정 신청 건수 중 조합을 통해 협상을 신청한 경우는 8.2%에 불과했다.
공정위는 현장에서 납품단가가 신속하게 조정될 수 있도록 이날부터 전담 대응팀을 가동키로 했다. 7월부터는 총 10만개 업체 대상 하도급거래 서면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위법 혐의가 있는 업체에 대해 직권 조사도 실시한다. 박세민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과장은 “원자재 가격 동향 및 납품단가 조정실태에 관한 상시 모니터링을 즉시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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