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북한, 확진자 대신 "유열자" 왜?..당장 부족한 3가지
확진자·의심환자 여부 체온계로 파악 추정
백신, 진단키트, 고품질 마스크 절대 부족
코로나19가 북한을 강타했다. 15일 현재까지 <조선중앙통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이다. 유열자(발열자)가 하루 사이에 10배 이상 폭증하고 사망자도 나날이 는다. 이날까지 누적 발열자 수는 인구 대비 3.4% 수준인 82만620명에 이르고, 사망자 수도 42명으로 집계됐다. 나날이 폭증하는데다, 북한의 방역 능력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공식 발표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을 추정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3일 열린 정치국협의회에서 현 상황을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방역투쟁을 강화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이란 건국 이래 최대의 보건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방역능력, 어느 정도인가?
관건은 북한 정부의 코로나19 위기 대응 능력이다. 즉 얼마나 효과적인 방역 대응으로 주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가가 핵심이다. 코로나19 대응 능력에는 두 가지 지점을 봐야 할 것이다. 하나는 방역 행정이며, 다른 하나는 보건의료 체계와 백신 등 의약품 관련 인프라와 기술 수준이다. 현실에서는 이 둘은 긴밀히 연계돼 있다.
전자의 측면에서 북한은 이미 고강도 봉쇄와 통제 정책에 들어갔다. 김 위원장은 “전국의 모든 도, 시, 군들에서 자기 지역을 봉쇄하고 주민들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사업단위, 생산단위, 거주단위별로 격폐 조처를 하는 사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실, 북한은 팬데믹이 세계를 휩쓴 지난 2년간 이미 고강도 방역책을 강도 높게 실행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국경을 접한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발하자, 지난 2020년 1월25일 모든 국경을 닫았다. 검역 강화, 물자소독, 도 간의 이동금지, 폭넓은 격리가 이뤄졌다.
이런 방역 행정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 또한 지난 2000년 이래 지속해서 감염병을 겪으면서 체계화됐다. 북한은 2002년 사스를 시작으로 2006년 홍역, 2009년 신종플루, 2013년 에볼라 바이러스, 그리고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잇달아 겪으면서 나름의 방역 행정체계를 구축했다. 중앙 정부 부처인 보건성 아래 국가위생검열원과 평양과 개성, 함흥, 청진 등 네 곳에 위성방역소를 갖추었다. 중앙병원을 비롯해 각 도와 군의 인민병원에 각기 위생방역소를 두었다. 김 위원장은 방역대책과 관련해 “유열자들의 병 경과 특성들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전문성 있는 지도서의 요구에 맞게 과학적인 방법과 전술을 전격적으로 따라 세우며 국가적인 의약품 보장대책을 더욱 강화하여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 진단 키트, 보호장구도 없어
문제는 의료인프라와 의약기술 수준 등 후자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사태는 모두 다 알고 있듯 행정만으로 결코 풀 수 없다. 그것은 의료체계는 물론 의료 과학과 기술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점이 바로 현 북한의 감염병 대유행이 매우 우려되는 이유다. 대북 보건의료 전문가인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지금 북한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백신 등 의약품과 진단 장비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에 따르면 현재 북에서 유행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오미크론 바이러스이다.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치명률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을 때 대략 0.6%로 본다. 하지만 백신을 세 차례 접종하면 0.07%, 즉 치명률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다. 대규모 사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처럼 백신 접종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와 함께 진단키트 등 검사 장비와 KF94처럼 주민과 의료진들이 착용할 수 있는 고품질 방역 마스크 등 보호장구도 필요하다. 대북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북한은 현재 확진자나 의심환자 여부를 체온계로 열을 재 파악하는 상황으로 추정한다. 백신, 진단키트, 고품질 마스크 등 보호장비 등 세 가지 의학품과 장비가 없거나 절대 부족하지만, 이 모두 북한이 자력으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란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북한의 의료체계는 기본적으로 전 국민 무상치료, 의사담당구역제(5호담당구역제), 예방의학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 재원 조달과 공급 체계 모두 국영이다. 이름하여 사회주의 의료체계다. 북한이 자랑하는 이 사회주의 의료체계가 실질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여러 우려를 더 가중한다. 주민들이 실제 겪는 보건의 현실은 무상의료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부족한 의약품, 전기가 없어 작동하지 않은 의료 시설과 장비 등으로 실질적인 의료보장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다. 그나마 중국에서 들어오던 의약품 등도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 조처 이후 원활하지 못하다는 게 국제앰네스티의 평가다. 탈북자들도 무상의료라고 하지만 실상은 의사에게 돈을 건네거나 물품이라도 줘야 한다고 증언한다.
중국, 코백스퍼실러티 국제사회 지원 시급
외부의 지원과 관련해 북한이 가장 쉽게 손을 벌릴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2일 정례브리핑에서 “동지이자 이웃이자 친구로서, 중국은 언제든 북한이 코로나19에 맞서도록 전력으로 지원하고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지원 의사를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궁 대변인이 북한의 요청이 있으면 즉각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이 공급된다면 약간의 도움은 되겠지만, 이들 나라 백신의 낮은 약효 논란에다 두 나라의 지원만으로도 사태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충분치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보건기구(WHO)의 코백스 퍼실러티(코백스)를 통한 지원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정부도 코백스가 북한에 백신을 할당하면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코백스는 세계에 코로나 19 백신을 평등하게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세계 백신 공동분배 프로젝트다. 애초 목표에 비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가장 이용 가능한 국제사회의 지원 방법으로 거론된다. WHO 에드윈 살바도르 평양사무소장은 지난 12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계속 북한에 코로나 백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북한 당국과의 협력에 전념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비비시(BBC)방송이 전했다. 다만 북한은 2021년 초 190만 도스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코백스의 결정에 반응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이후 북에 대한 이 기구의 백신 배정은 취소되었다. 지난 4월 코백스 대변인은 “현재 코백스가 북한에 배정된 구체적인 코로나 19 백신 분량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요청한다면 재배정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남의 백신 지원 제안 수용할까?
한국의 윤석열 정부도 빠르게 백신 지원 의사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북한 주민에게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할 방침을 말했다고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다만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북한 쪽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 대변인은 덧붙였다.
보건의료 및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북이 당장 우리의 지원 의사를 수용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아마도 북이 외부의 지원을 받는 걸 선택한다면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가 먼저일 것이다. 이어 코백스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의 지원 여부는 그 이후에야 검토할 옵션일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보건의료 분야는 국제사회도 그렇지만 한국의 대북 지원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부문이다. 전체 지원의 40% 이상이 보건의료 분야다. 근년 들어 주목할 만한 남북 보건의료 협력 합의는 2018년 11월에 이뤄진 이른바 ‘개성합의’다. 당시 남북은 그해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후속으로 남북보건의료 분과 회담을 열어 포괄적, 중장기적 방역 및 보건의료 협력 사업을 추진하자는 내용의 ‘남북보건의료 협력 합의문’을 공동 발표했다. 이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2020년 9월 22일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이뤄진 기조연설에서 “북한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 몽골 한국이 함께 하는 동북아시아 방역 보건협력체를 제안”하기도 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북한은 동북아 방역 보건협력체 제안에 응하지 않으며, 오히려 군사적으로 남북관계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이런 협력의 가능성마저 어렵게 하고 있다. 장보람 국제엠네스티 동아시아 연구원은 “북한은 국제사회와 협력해 주민들을 위한 코로나 19 백신 확보계획을 세워 차별 없는 백신 접근을 제공하고 투명한 백신 분배계획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량부족에 극심한 경제난 속 엎친 데 덮친 격
실상 북한의 어려움은 보건의료 위기를 넘어선다. 어쩌면 코로나19 위기보다 주민들에게는 더 큰 문제는 식량문제 등 민생이다. 가뜩이나 미국과 유엔의 오랜 경제제재로 경제난이 가중되어온 터에 설상가상 상황인 것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된 뒤 북한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4.5%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7월 발표한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결과 보고서는 이런 사실을 전하며, 이는 고난의 행군 시기(1997년 -6.5%) 이후 23년만의 최저치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2021년 7월13일 유엔 고위급정치포럼(HLPF)에서 자국이 겪는 경제난의 내용을 담은 자발적 국가별 검토(VNR) 보고서를 공개해 이를 인정하기도 했다. 여기에 홍수피해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식량부족 사태를 낳았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을 항상적인 식량부족 국가로 지정한 상태다. 이 기구는 북한 주민의 47.6%가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현재 오랜 경제제재에 따른 식량난과 경제침체 등 민생위기과 경제위기란 두개의 위기에 더해 코로나 위기란 보건위기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는 “경제제재는 인도적 지원을 위한 배를 구하기가 어렵게 하고, 은행계좌도 개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북한 주민을 위해 백신 등 여러 인도적 지원을 조건 없이 주고 북한 또한 주민을 위해 무조건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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