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0년 동안 우즈벡서 한글교육 헌신한 허선행 교장

정경원 2022. 5. 15. 11:1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허선행 타슈켄트 세종학당 교장이 처음으로 광주 고려인마을을 찾았습니다.

교사가 꿈이었던 허 교장은 1991년 전남대 사범대 4학년 재학 시절, 광주·전남에서 펼쳐진 구소련 한글학교 설립 캠페인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지난 30년 간 이 한글학교를 거쳐간 학생만 8천여 명에 이릅니다.

그는 최근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을 출간해 지난 30년 동안 이어온 한글학교의 역사와 고려인들의 정착기 등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허선행 타슈켄트 세종학당 교장이 처음으로 광주 고려인마을을 찾았습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독립투사 후손인 고려인 동포 3천여 명이 모여 살고 있는 국내 최대 고려인 집단 거주지입니다.

교사가 꿈이었던 허 교장은 1991년 전남대 사범대 4학년 재학 시절, 광주·전남에서 펼쳐진 구소련 한글학교 설립 캠페인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1992년 졸업 직후, 그때 세워진 5개 한글학교 가운데 한 곳인 우즈베키스탄 광주한글학교로 향했습니다.

당시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 했다는 허 교장은 고려인 동포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쳐주겠다는 마음 하나로 낯선 땅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건물은 낡고 허름했고, 제대로 된 교재도 없었지만, 묵묵히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재정난에 시달려 이곳저곳에서 한글학교가 문을 닫았지만, 그는 학생들과 함께 버텨냈습니다.

그 덕분에 설립 당시 20명이 전부였던 한글학교 학생 수는 최근 K-POP 등 한류 열풍까지 더해지며 500명으로 늘었습니다.

지난 30년 간 이 한글학교를 거쳐간 학생만 8천여 명에 이릅니다.

허 교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 가운데 한 명으로 박율리아 씨를 꼽았습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박 씨는 2010년 G20 회의에서 러시아어권 대통령의 통역을 맡아 한글학교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는 또 비행기를 탔다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이 된 제자 굴잔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기억도 회상하며 미소를 띄었습니다.

2007년 외교부 평가에서 전세계 3,500개 세종학당 가운데 1위에 올라 국민포장을 받았던 허 교장.

그는 최근 〈허선행의 한글아리랑〉을 출간해 지난 30년 동안 이어온 한글학교의 역사와 고려인들의 정착기 등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Copyright © kbc광주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