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보도'는 과연 저널리즘적 가치가 있을까

정민경 기자 입력 2022. 5. 15. 10:14 수정 2023. 11. 3. 14:2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라이프 스타일' 보도 늘어나며 '읽을 거리'로서 소비 확대된 패션 보도
"정파적 접근이 아닌 정치인이 보내는 메시지 파악하고 시대상 짚어야"
모든 패션 보도 비판하긴 어렵지만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 기사는 우려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장면 1.

“'그 드레스로 할 일 마쳤다' 가십걸 속 소녀, 미국을 입다”(5월7일 서울신문)

지난 2일 세계 최대 패션쇼 2022 '멧 갈라'(Met Gala)에서 드라마 '가십걸'로 인기를 얻은 배우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입은 베르사체 드레스가 화제였다. '멧 갈라'는 뉴욕 패션위크 창시자가 1984년부터 주제를 정해 시작한 패션쇼다. 올해 주제는 '도금 시대 패션'이다.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이날 구리색 드레스를 입었는데, 매듭을 풀자 청녹색 원단이 새로 드러났다. 그의 드레스는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을 콘셉트로, 구리로 제작된 여신상이 이제는 산화돼 청녹색이 된 것을 표현했다.

이런 그의 드레스에 찬사가 뒤따랐고 스토리텔링을 전달하는 기사도 쏟아졌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시대, 읽을 거리를 제공하면서 이러한 패션 분야를 전문으로 쓰는 기자도 있다.

▲서울신문 기사 갈무리.

장면2.

“후드티에 안경, 경찰견 안은 김건희…윤 취임 전 활동?”(4월4일 SBS)
“'완판녀'로 등극한 김건희…품절 '3만원 짜리 슬리퍼' 뭐길래”(4월5일 서울경제)
“'모델 포스', '비주얼 깡패' 한동훈 향해 쏟아지는 관심”(4월15일 조선비즈)
“'한동훈 안경 어디 거?' '모델 포스' 남다른 패션 또 화제”(4월15일 머니투데이)
“사찰 방문한 김건희 치마, 5만4000원짜리 쇼핑몰 옷이었다”(5월3일 중앙일보)

최근 쏟아진 정치인, 정치인 가족과 관련한 '패션' 보도다. 보통 이런 패션 보도는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만들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경향은 보통 세 갈래로 나뉜다. 명품을 입었을 경우 '모델 포스' 등과 같이 칭찬하는 논조를 띈다. 혹은 '사치스럽다'거나 '예산 사용' 등을 꺼내며 비판하는 논조가 있다. 명품이 아닌 저렴한 옷을 입었거나 낡은 구두나 가방 등을 보여주면서 '검소하다', '근면하다'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명품 혹은 저렴한 옷을 걸친 정치인의 이미지를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보도는 여·야를 막론하고 꾸준했다. 특히 여성 정치인이 공식 행사에 무슨 옷을 입었는지, 옷으로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는 정치적 성향이나 성과를 떠나 지속적으로 보도됐다.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 패션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패션 보도, 2020년 빨간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출석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 관련 보도, 지난 4월 김정숙 여사를 둘러싼 '옷값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관련 기사: 대대적인 '박근혜 패션' 보도, 동아일보 이런 모습 어때요?
'류호정 원피스' 논란은 언론이 만들었다
중앙일보 “잘 입어도, 못 입어도 평가…女정치인 '패션정치' 숨은 꼼수]

“정파적 접근이 아닌,
정치인이 보내는 메시지 파악하고 달라진 시대상 짚어야”

'패션 보도'는 과연 저널리즘 가치가 있을까. 라이프 스타일 기사 소비가 늘어난 시대에 패션 보도는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정치인 패션이 '어뷰징' 기사가 되는 이유도 패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 때문이다. 때문에 패션을 다룬 보도라고 해서 그 자체로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이제는 좋은 패션 보도가 어때야 하는지를 논의할 시점이 아닐까.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전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국장)는 “정치인이나 정치인 가족에 대한 패션 스타일은 원래 패션 잡지의 영역이었다. 패션잡지에서는 정치적 의미를 짚는다기보다 무엇을 입었는지 아이템 위주로 다룬다”며 “최근 패션 잡지가 아닌 언론에서도 정치인이나 정치인 가족의 패션을 다루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보도들이 많아졌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보도도 많다”고 말했다.

김도훈 칼럼니스트는 2018년 6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트럼프가 텍사스 국경의 이민자 아동 격리 시설을 방문할 때 자라(ZARA)의 자켓을 입었던 사례를 언급했다.

멜라니아 트럼프가 입은 자켓에는 'I really don't care, Do you?'(난 신경 안써. 너는?) 이라고 적혀있었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패션담당 에디터는 “자신은 아동격리 정책과 상관없다는 메시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메시지이거나 내가 입고 싶은 것을 입을 뿐이니 상관 말라는 메시지 일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 4개월 이후, 멜라니아 트럼프는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자켓에 대해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좌파 언론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며 “해당 자켓으로 내가 그들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허프포스트: 멜라니아 트럼프가 '신경 안 써' 재킷을 의도적으로 입었다고 인정하다]

김 칼럼니스트는 이 사례를 언급한 후 “이처럼 정치인이 어떠한 옷을 입는 건 많은 경우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본다”며 “최근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는 김건희 패션의 경우 이전에는 그가 명품 브랜드의 옷이 입는 모습이 자주 보였는데 최근에는 저렴한 인터넷 쇼핑몰들의 옷을 입고 나온다. 자신은 검소하다는, 접근 가능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칼럼니스트는 “미국에서는 이미 '재키 스타일'(재클린 케네디) 등 옷 잘입는 정치인 패션이 주목받은 것이 아주 오래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근검 절약해야 한다'는 덕목을 강조하면서 그저 튀지 않는 스타일을 고수했다”며 “시간이 흐르고 이런 생각에서 벗어난 세대들이 정치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옷입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김도훈 칼럼니스트는 “좋은 패션 보도라면 패션과 관련한 시대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파적인 관점을 집어넣어 성향에 따라 '누가 명품을 입어서 돈을 낭비한다', '누구는 검소하게 저렴한 옷을 입는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좋은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김 칼럼니스트는 “정치인이 명품을 입었다는 것이 공격을 당해야 할 충분 조건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 명품을 산 돈의 출처 등에 이슈가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누군가 명품을 입었다는 그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파적 접근법을 버리고, 정치인이 옷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그것이 해당 상황에 적절한 지, 시대상과 관련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등을 짚는 것이 저널리즘적 가치를 담은 기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패션 기자들 이야기 담은 논문
“저널리즘적 가치 있으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

패션 보도에 대한 연구도 많지는 않다. 흥미로운 논문 중 하나로 “신문에 나타난 패션 저널리즘 현황 연구: 패션 기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이도은, 성균관대학교, 2014)라는 논문은 일간지 패션 담당 기자 5명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이 논문은 결론으로 “패션 기자들은 패션 분야를 취재하면서 저널리즘적 역할을 발견한 듯도 보였으나 신문사 조직원으로서 성장 가능성과 편집국 내 위상을 고려할 때 저널리즘의 가치 인정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퍼포먼스 모습. 사진=류호정 의원 페이스북

일례로 일간지 A기자는 “어느 날 부장이 다음 달부터 패션을 맡으라고 그랬을 때 처음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옆에서 선배가 하는 걸 봤을 때는 저널리즘이 아닌 것 같았다. 뭐가 요즘 유행이다, 니트 입는 법 5가지를 알려주는 게 일간 신문에서 할 일인가라는 데 회의적이었다”며 “저널리즘은 뭔가 의미가 있고 정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특종할 분야는 아니지만 나름 중요한 현상을 듣고 분석하는 것은 문화부 기자와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자는 “이 일을 하면서 패션에 저널리즘을 붙이는 것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한다. 신문이 생각하는 뉴스 가치가 과연 패션에서 나올까 싶어서다. 조직 내에서 크게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오래해도 될까 고민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보도자료 대부분이 신제품 출시 아니면 연예인이 드라마에서 뭐 들고 나오고 걸치고 나왔는데 매진됐다는 내용이다. 신문에서, 더구나 유통 면이 아니면 쓸 거리가 아니다. 뉴스라 하더라도 사건이나 현상의 이유와 배경, 의미를 중시하는 신문의 기사쓰기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패션 기자도 있었다.

해당 논문이 발표된 지 8년이 지난 데다가 라이프 스타일 기사 소비가 더 활발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패션 보도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의도적인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무검증 보도는 비판받을 만하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인의 의도적 '이미지 메이킹' 받아쓰는 보도는 우려

최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패션 보도와 관련한 3가지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선일보 최초보도한 '김건희 노란 스카프' 출처, 팬카페 맞을까”(4월26일), “질 낮은 한동훈 패션 보도, 온라인에서 적극 팔았다”(5월4일), “이번엔 김건희 치마로 소박함 부각, '독자제공' 사진 진짜일까”(5월4일)가 그 제목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링 보고서 갈무리.

해당 모니터링 보고서를 담당한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팀장은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단순히 유명인의 패션 기사 자체가 문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예를 들어 스타가 친환경 행사 취지에 알맞은 옷을 입는다는 식의 긍정의 주목을 끌었던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다만 정치인이 자신의 의혹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려는 시도에 우려가 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사례를 꺼냈다.

조 팀장은 “'김건희 치마' 등과 같은 기사를 보면, 최초 보도들이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작성됐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어지는 보도들은 이를 어뷰징하는 흐름”이라며 “인수위나 정치인 관계자 발로 '검소하다' 혹은 '트렌디하고 전문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사진 등을 기자에게 전달하고 이것이 1차적으로 보도되면 이후에는 어뷰징으로 퍼져나간다”고 전했다.

조 팀장은 “특히 이런 보도에 출처가 제대로 표기되지 않은 채 '독자 제공' 등으로 보도되는 것은 더 우려스럽다”며 “인수위나 정치권 관계자가 언론에 배포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데도 출처 검증 없이 받아쓰기하는 언론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패션이 독자들의 관심 대상일 수 있으나 패션 자체에 의미를 두고 보도하는 것과 지금 당장 다른 문제로 주목 받는 사람을 패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며 “패션 관련 보도에 대한 가치 판단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순 있으나 정치인에게 특정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패션을 통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본질을 희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인 패션과 옷에 대한 지나친 칭찬이나 공격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특히 어떤 인물이 명품을 입으면 '국격을 높였다'고 쓰고 반면 해당 언론과 대립하는 성향의 정치인이 입으면 '예산을 낭비한다'고 보도하는 등 일관성 없는 기사도 있다”며 “이는 의도적인 과장 보도, 정치적 의도가 담긴 기사라고 평가한다”고 비판했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