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도매 202원에 사서 122원에 파는 한전..지속가능할까

정남구 2022. 5. 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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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한전의 천문학적 적자와 물가상승
생산비보다 매우 싼 요금..올 한전 손실 20조 넘을듯
여론 눈치·물가 고민에 정치권도 '책임' 미루기만

한국전력공사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남동발전 등 6개 발전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6개 회사의 국내 발전 설비 비중은 70%가량이다. 한전은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회사들이 생산한 전기를 사서 소비자들에게 파는 회사다. 2021년 한전은 60조원어치의 전기를 팔았다. 국내총생산(2057조원)의 약 2.9%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런데 영업 실적은 참담하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5조8601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역대 최대였다. 전기를 사는 값(도매가격)보다 판매단가가 더 쌌기 때문이다. 손실을 줄이는 길은 사실상 하나,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한전은 4월부터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6.9원 올렸다. 하지만 그 정도 인상으론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이 2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분기에만 이미 7조8천억원 적자를 냈다.

한전은 정부가 18.2%, 산업은행(정부가 100% 지분 보유)이 32.9% 지분을 소유한 공기업이다. 전기요금을 멋대로 정할 수 없다. 한전 이사회에서 의결한 전기요금안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전기요금 및 소비자보호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고,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하고, 전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

적자 쌓이는데 정치권은 공방만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싼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가 2019년 9월 발표한 것을 보면, ㎾h당 8.28펜스(약 125원, 2018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 28개 회원국 가운데 터키(7.79펜스/㎾h) 다음으로 싸다. 28개국 평균인 15.12펜스(약 228원)의 절반이다. 발전단가가 싼 석탄발전과 원전의 비중이 높고, 세금과 부담금은 싸기 때문이다. 1인당 전력사용량도 다른 선진국에 견줘 많다. 2019년 1인당 10.9㎿h(메가와트시)를 썼다. 미국(12.9M)보다는 적지만 일본(7.9M), 프랑스(7.0M), 독일(6.6M)보다 많다.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7.7M)도 크게 웃돈다. 요금이 싼 전력을 산업용으로 많이 쓰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의 공공물가 관리도 전기요금을 억제하는 쪽으로 작용해왔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발전 연료비가 크게 상승했지만, 정부는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이로 인해 한전이 1조원대의 적자를 내게 되자, 정부는 원가 상승분을 보전해주겠다며 9월에 추가경정예산에서 6680억원을 지원한 일도 있다.

발전연료비의 등락에 따라, 한전이 사는 전력의 도매가격도 등락한다. 이를 판매가격에 반영하면 소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외국에서 효과가 검증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우리 정부도 2021년부터 도입했다. 전 분기 대비 ㎾h당 ±3원, 연간 ㎾h당 ±5원 한도의 연료비 조정단가를 가격에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경제주체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유로 정부는 이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 적용을 유보했다.

여기에는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정치 공방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한전의 적자가 탈원전 탓이고, 탈원전에 따른 비용 증가로 전기요금이 오른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원전의 발전 비중은 2018년 23.4%까지 떨어졌으나, 2019년 25.9%, 2020년 29.0%까지 상승했다. 2021년에도 27.4%를 기록했고, 올해 1, 2월에는 29% 안팎에 이르렀다. 전기요금에 영향을 끼칠 만한 원전 설비용량이나 발전량에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2017년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원전 수명 연장 배제를 선언하면서 “탈원전 정책을 해도 2022년까지는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던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전기요금에 손대는 것을 무조건 꺼렸다.

한전의 영업적자 확대는 천연가스, 유류 등 발전연료 가격이 급등해 전력 도매가격이 상승하는데도 이를 판매가격에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전력 도매가격은 ㎾h당 202.11원으로 1년 전의 76.35원에 견줘 164% 상승했다. 판매단가는 4월에 기준연료비(4.9원/㎾h)와 기후환경요금(2.0원/㎾h)을 올려 약 122원가량이다. 1㎾h를 팔 때마다 80원가량 손실을 보게 되는 구조다.

일본의 경우 1996년 연료비 조정제도를 도입해, 매달 적용하고 있다. 도쿄전력의 경우 월 260㎾h를 쓰는 평균모델 가구의 월 전기요금이 지난해 4월 6546엔(약 6만4150원)에서 올해 4월 8359엔(약 8만1918원)으로 27.7% 올랐다. 6월에는 8565엔(약 8만3937원)으로 더 오르게 된다.

한전의 적자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은 한전의 주주들이다. 한전은 상장회사다. 정부와 산업은행 외에 국민연금이 5.91% 지분(2021년 말 기준)을 갖고 있고, 42.28%를 소액주주들이 갖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37%가량이다. 한전이 그동안 벌어들인 돈 가운데 배당하지 않고 쌓아둔 이익잉여금은 2020년 말 51조원가량인데, 지난해 5조원을 까먹었다. 올해부터 한해 25조원씩 까먹는다면 2년이면 바닥이 난다.

가계가 전기요금 인상을 반길 리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월평균 304㎾h를 쓰는 4인가구 주택용 월간 전기요금은 4월 인상분(2097원)을 반영할 때 약 3만6918원이다. 전기요금의 소비자물가지수 비중은 1.55%(1000 가운데 15.5)다. 10% 인상할 경우 월간 추가 부담이 커피 한잔 값이 안 되지만, 거의 전 국민이 영향을 받는다. 그 가운데는 사회취약계층도 적지 않다.

적자 막대한데 물가 부추길까 우려

사실 가계보다 전기요금에 더 민감한 것은 기업들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이 유럽 선진국보다 훨씬 많은 것은 산업용 전력 소비 비중이 오이시디 평균(32%)을 크게 웃도는 54.8%(2019년)에 이르기 때문이다. 상업·공공용 비중이 30.0%이고, 가정용은 13.4%에 그친다. 낮은 전력요금은 전력 다소비형 산업에 사실상 보조금 구실을 했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하는 유인이 되기도 했다. 가격의 신호 기능이 먹통이 된 것이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는 10월에 기준연료비를 4.9원 더 올릴 예정이다. 그러나 그 정도 인상으론 한전의 거액 적자를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 후보자는 9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전기요금 같은 것은 계속 원가를 반영하지 않고 눌러놓으면 결국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물가가 제일 문제”라며 “물가상승 억제 대책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는 전기요금을 과연 얼마나 올릴까?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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