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에 묻어 오는 시인의 향기 이상화 고향의 봄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저항시인 이상화 생가터 ‘라일락뜨락 1956’/200살 라일락 고목 지금도 봄이면 꽃 활짝/시인 말년 4년 보낸 이상화 고택에도 곳곳서 시인의 향기/‘동무생각’ 작곡가 박태준 풋풋한 사랑 담긴 청라언덕은 이국적 풍경


1922년 백조 창간호에 시 ‘말세의 희탄’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한 이상화는 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굴종을 숙명으로 여기며 친일문학을 일삼던 일제강점기에도 민족정기를 지키며 저항시를 썼는데 대표 작품이 1926년 개벽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초기에는 ‘나의 침실로’ 같은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다. 하지만 1923년 9월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폭동·방화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자경단과 경찰이 최소 한국인 6000여명을 살해한 ‘관동대학살’을 겪으면서 나라를 뺏긴 민족 현실을 토로하는 저항정신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가 고택을 생가로 알고 있을 정도로 실제 생가 터는 사실상 잊혔던 곳. 이런 역사적인 장소를 다시 부활시킨 이가 ‘라일락뜨락 1956’의 주인장인 시각디자이너 권도훈(51)씨다. 그는 대구근대골목 투어를 하다 4년 동안 빈집으로 방치된 이곳의 라일락 나무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이에 어렵게 집을 매입해 2018년 10월 카페로 문 열었다. 골목길 입구 담벼락의 이상화 초상화도 그의 작품으로 카페는 시인의 삶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페에서 ‘상화커피’를 맛볼 수 있는데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권씨가 인도네시아 만델링 품종을 핸드드립으로 내린다. 시인은 프랑스 유학을 위해 1922∼1924년 도쿄 ‘아테네프랑세’에서 공부했는데 당시 만난 여인 유보화와 마셨을 커피를 재현했단다.








대구의 대표 여행지 중 하나가 옛 대구읍성 골목을 이어서 만든 대구근대골목이다. 대구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근대골목은 5개 코스로, 청라언덕에서 진골목까지 100년 전 흔적을 따라가는 2코스 ‘근대문화골목’이 가장 인기 높다. 1922년에 발표된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 ‘동무 생각’의 배경이 이곳 청라언덕이기 때문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하는 ‘동무 생각’은 학창 시절 한 번쯤은 불러 보는 유명한 곡이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박태준은 청라언덕을 넘어 계성학교에 다니면서 매일 만나던 신명학교 여학생을 짝사랑했단다. 훗날 이 이야기를 들은 이은상이 소녀를 영원히 간직하라며 가사를 써 줬고 박태준이 곡을 붙이면서 아름다운 ‘동무 생각’이 탄생했다. 노랫말 속 ‘백합’이 박태준이 짝사랑한 여학생이다.


챔니스 주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하던 방갈로풍으로 꾸며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 높다. 스윗즈 주택을 배경으로 가장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붉은 벽돌 건물에 기와지붕을 얹은 독특한 건축양식이 돋보이며 위로, 옆으로 자란 두 그루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빼어나다. 선교사들이 들여온 한국 최초 서양사과나무 3세목도 만날 수 있다.
대구=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텅 빈 쌀통에서 71억 빌딩”…조정석·남궁민·안보현, 공사장 전전하던 배우들의 ‘훈장’
- ‘200억 전액 현금’ 제니, 팀내 재산 1위 아니었다! 블랙핑크 진짜 실세 따로 있다
- “스타벅스 빌딩까지 다 던졌다” 하정우, 7월 결혼설 앞두고 터진 ‘100억원’ 잭팟
- “100억 빌딩보다 ‘아버지의 배’가 먼저”… 박신혜·박서진·자이언티가 돈을 쓰는 법
- 침묵 깬 김길리, 빙상계 ‘발칵’ 뒤집은 ‘최민정 양보’ 루머에 직접 입 열었다
- “1년 내내 노란 옷 한 벌만” 정상훈, 14번 이사 끝에 ‘74억’ 건물주
- “통장에 1600만원 찍혀도 컵라면 불렸다” 박형식, ‘식탐’ 소년의 눈물겨운 억대 보상
- “비데 공장 알바서 45억 성북동 주택으로”… 유해진, 30년 ‘독기’가 만든 자수성가
- “매일 1만보 걸었는데 심장이”…50대의 후회, ‘속도’가 생사 갈랐다
- “부모님 빚 갚고 싶었다”… ‘자낳괴’ 장성규가 청담동 100억 건물주 된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