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미술품, 이번 기회에 싹 정리해야"

박주연 기자 2022. 5. 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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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준모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미술평론가 정준모 / 우철훈 선임기자

‘청와대가 소장했던 미술품들의 향방은 여전히 안갯속.’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지만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여전히 종로구 청와대에 남아 있는 것으로 5월 12일 확인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청와대 미술품의 용산청사 이전이나 관리 문제 등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며 “새 청사로 미술품들을 옮겨오지 않더라도 앞으로 들어올 미술품들을 고려해 용산청사 내에 수장고는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청와대 총무비서관실·대통령경호처에 확인한 결과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모두 700여점(대통령비서실 606점·대통령경호처 135점)에 달한다. 이중 190여점만 정부 공식 관리 미술품으로 등록돼 있다.

청와대 미술품을 처음 전수 조사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이고, 그 일부가 2018년 처음 공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년에 맞춰 31점을 골라 청와대 사랑채에서 ‘함께, 보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하지만 소장 미술품의 도록이 제작됐거나 공개된 적은 없다. 지난 4월 말 문재인 정부의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총무비서관실에 확인한 결과 5월 초 정부 공식 관리 미술품으로 등록돼 있는 190여점의 도록을 처음 공개한다”고 밝혔지만 도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를 통해 청와대 소장 미술품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그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미술품 목록 작성에 참여하고 수시로 청와대 장식 등을 조언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는 소장 미술품들에 대한 전문기관의 평가에 참여했다.

김학수 ‘능행도’

-청와대 미술품을 언제 직접 확인했나.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에 청와대에 처음 들어가 미술품과 각종 집기 등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도 예술품 재배치와 정리를 위해 많을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적을 때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총무비서관실 부름을 받아 들어갔다.”

-당시 청와대에선 어떤 조언을 구한 건가.

“이 그림을 어디에 걸까, 이 빈 벽에는 어떤 그림을 걸면 좋을까, 향후 미술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해줬다. 청와대의 상당수 벽은 중간중간 구분이 돼 있어 그림 크기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정은영 ‘초하’(1969·왼쪽)와 박광진 ‘불국사의 가을’(1978, 유화, 182x132.4cm)



-청와대가 소장한 미술품 상당수는 베일에 싸여 있다.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처음으로 물품 재고 조사를 했다. 이때 미술품들이 사무 집기, 비품과 함께 처음으로 목록화가 됐고, 이후 조달청의 물자관리법에 미술품을 별도로 구분해 관리하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소장 미술품을 전수조사해 엑셀로 정리했다. 작가명·작품명·제작연도는 물론 취득일조차 알 수 없는 작품이 수두룩했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 물품 재고 조사 때 처음 대장에 올리면서 구입 일자를 이때로 적는 바람에 1994년에 구입한 작품이 제일 많은 것처럼 됐다.”

-좋은 작품이 있었나.

“당시 경호처가 소장했던 작품 중 괜찮은 작품 3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해 미술관 소장품이 됐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소장 미술품에 대해 전문기관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나도 감정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나마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2014년 도자 1점과 사진 1점, 2017년 도자기 16점은 손·망실 처리했다. 너무 수준이 떨어져서였다.”

박수학 ‘책거리’(한지에 채색 182x281cm)



-나머지는 괜찮은 작품이었나.

“감정 시 감정의뢰인과 비밀유지 조항이 있어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쓸 만한 작품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쓸 만하다는 것은 미술관에 소장할 만한 미술사적·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말한다. 그나마 노태우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 본관을 새로 지으면서 새 건물에 맞춰 주문 제작했거나 구입한 작품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어떤 작품이길래.

“본관 1층 왼쪽에 걸려 있던 유양옥의 ‘행차도’와 오른쪽에 걸려 있던 김식의 ‘수렵도’, 대회의실 입구에 걸려 있던 월전 장우성의 ‘군학도’, 그리고 송규태의 ‘일월곤륜도’와 ‘연화도’, 나정태의 ‘십장생문양도’ 등이다. 장우성의 작품은 청와대가 20여점 정도 소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교적 소품이었고 당시 인기 있었던 장미를 그린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 청와대 소장 작품 중 최고가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에 구입해 춘추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설치한 백남준의 ‘비디오 산조’다. 2014년 당시 평가 가액이 3억원 정도였다.”

서세옥 ‘백두산 천지도’ (1990, 한지에 수묵담채, 119.8x159.2cm)



-그외에 기억하는 미술품은 어떤 건가.

“서세옥의 ‘백두산 천지도’, 김기창의 ‘아악’과 ‘산수’, 민경갑의 ‘설경’, 천칠봉의 ‘풍경화 계곡’, 박광진의 ‘풍경화 계류’와 ‘가을풍경’, 오승우의 ‘풍경화 망’ 등이다. 김형근의 ‘과녁’을 비롯해 국전에서 수상한 작품도 여러점 소장하고 있다.”

-청와대 소장 작품 중 뛰어난 작품이 별로 없는 이유는 뭔가.

“예를 들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호남지역 작가 20여명이 대통령 생가터만 남아 있던 신안군 하의도의 풍경을 그려 전시를 한 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걸 대통령이 요구했겠나. 그런 식으로 청와대에 무조건 보내진 작품들도 꽤 있더라. 그런데 청와대는 항온·항습이 안 돼 작품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북악산 기슭에 있어 습도가 높아 오래전 바른 벽지는 우글우글해지고 곰팡이도 피었다.”

손수택 ‘7월 계림’ (1973, 유화, 130.2x161cm)



-청와대에 수장고가 없나.

“노무현 대통령 때 항온·항습기를 사서 달자고 해서 임시로 수장고를 만든 것으로 안다. 하지만 미술관 수장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청와대 임시 수장고 수준이었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주로 어느 정부에서 수집한 건가.

“작품의 제작연도를 보면 박정희 정부 때 구입한 게 제일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집권 기간도 길었고 박 대통령이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붓글씨도 잘 썼다. 김종필 총리도 그림을 잘 그려 <JP화첩>이란 개인화집을 낼 정도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 미술품 상당수가 김원, 박득순, 박광진, 천칠봉 등 일요화가회 회원 작품인 이유가 김종필이 일요화가회 회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풍경화나 조국 근대화와 관련한 작품들이 많은 것도 박정희 집권기의 특성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1966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강태성의 ‘해율’



-소장 작품에 대통령의 취향이나 의지가 반영되나.

“글쎄…. 대통령 취향이 반영돼 구입으로 이어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전혁림의 ‘통영항’이 유일하지 않을까? 대개는 당시 작가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국전 수장작들을 구입했는데 이영찬의 1973년작 ‘풍악(風岳)’은 내가 알기로 박정희 정부의 차지철 전 대통령경호실장이 권상능 대표가 운영하던 조선화랑을 통해 구입한 것이다.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작품이다.”

-청와대 인왕실에 걸려 있던 ‘통영항’은 이명박 정부 때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다시 청와대로 돌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해 구입한 그림인데, 대통령이 세금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을 구매하는 게 옳으냐 하는 문제가 있다. 좋으면 자기 돈으로 사서 퇴임할 때 가져가는 게 맞다. ‘통영항’의 감정가는 1억원이 넘는다. 소문에 의하면 벽이 좁아 그림을 좀 잘랐다고 한다. 그림이 벽에 맞지 않으면 자르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렘브란트의 1642년 걸작 ‘야경’도 1715년 암스테르담 시청에 걸릴 당시 크기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좌우와 위아래를 조금씩 잘라냈다. 그러다가 지난해 약 300년 만에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해 원상을 회복했다.”

전혁림 ‘통영항’ (2006, 유화, 255.6x602.6cm)



-분실된 소장품도 있다. 1972년 8월 16일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거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과는 함께 논의할 수 없다)’는 문화재청 대장에 의하면 국가 소유로 청와대가 관리자로 명시돼 있지만 2011년 ‘도난 유물’로 등록됐다.

“안 의사의 유묵은 1976년 3월 17일 당시 소유자인 이도영 홍익대 이사장이 청와대에 기증했다. 하지만 1997년 물자관리법이 개정되고,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소장 미술품을 조사해 처음 정리한 목록에 안중근 유묵은 없었다. 문화재청은 2009년 9월 청와대로부터 ‘안중근 유묵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나 1980년대에 누군가가 가져갔을 것으로 짐작한다. 문화재 사범 단속반이 1980년대에 이 사건을 내사하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어떻게 도난이 가능한가.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청와대 소장 미술품은 비품으로 처리됐다. 비품의 감가상각은 5년이어서 5년이 되면 장부상에서 사라진다. 안중근 유묵이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예전에는 비품대장에서 내구연한이 지난 빠진 작품들이 창고에 있어, 비품 담당 부서장이 직원의 집들이 가는데 선물로 가져가자고 하면 창고 가서 하나 가져다 선물로 줬을 정도다.”

김기창의 ‘농악’. 청와대 영빈관에 걸려 있다.



-청와대에서 미술관으로부터 그림을 대여하기도 했다던데.

“예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을 대여해갔는데 미술관 소장품을 온·습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에 오래 전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내가 회수해야겠다고 건의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런 관습이 사라졌다. 물론 이후에 청와대에 잘 보이려 작품도 내주고, 학예직도 나서서 파견한 분도 있었다. 아무튼 이후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작품값의 2%를 주는 조건으로 일반 화랑에서 대여를 했다. 그 전통이 노무현 대통령 때도 이어졌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사에는 국빈이 많이 방문하므로, 어떤 그림을 걸었는가도 국격을 대변할 것 같다.

“옷도 상갓집에 갈 때는 상복을 입고 파티에 갈 때는 파티복을 입어야 하지 않나. 다시 말해 그림도 맞이하는 손님이 어떤 취향인지, 어떤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 또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등을 고려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바꿔 걸어야 한다. 그게 문화 외교다. 또한 작품들이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맥락을 갖춰야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무조건 비싸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만 건다고 좋은 게 아니다.”

춘추관에 걸려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산조’. 청와대 소장 작품 중 최고가로, 2014년 당시 평가액은 3억원 정도였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시대가 열렸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들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좋은 작품을 엄선해 활용하되, 상당수 미술품은 오히려 관리하는 데 비용이 더 든다. 이번 기회에 등급을 매겨 싹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국은 백악관이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내부에 백악관의 예술품과 장식을 책임지는 큐레이터가 있어 소장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도 그런 전문인력을 채용하면 좋지 않을까.

“전담할 전문인력을 임기제나 별정직으로 채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작품을 구입하는 일도 이 사람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스템 자체를 미국이나 영국처럼 바꿔야 한다. 접시는 주방에서 수년간 접시 닦아본 사람이 가장 잘 닦는다. 전문인력을 채용하면 그 사람의 판단을 100% 존중하고 따라야지,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겠지만 함부로 간섭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백악관엔 예술품 관리하는 큐레이터가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벽난로 위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초상화를 걸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걸어놓았던 자리다. AP/연합뉴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인 백악관을 장식하는 그림은 백악관 자체 컬렉션도 있지만, 대부분 여러 미술관에서 대여한다. 1945년 이후 수많은 미술관이 백악관에 다양한 작품을 대여해주고 있다. 대부분 대통령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상징하는 작품들이다.

백악관에는 백악관의 예술품과 가구, 식기 등 모든 장식을 책임지는 큐레이터가 있다. 백악관의 예술 및 유물의 수집 및 보존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61년 역사의 백악관역사협회도 존재한다. 백악관 큐레이터 직제는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만들었다.

윌리엄 G. 올먼은 1976년부터 백악관 큐레이터 사무실에서 일했고, 2002년부터 수석 큐레이터를 맡았다. 역대 7번째 백악관 수석 큐레이터다. 그는 2011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에 대해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백악관이기도 하고, 그래서 일하는 집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워싱턴의 초상화를 배경으로 뜨거운 텔레비전 조명을 켤 수 없습니다!’라고 소리치며 달릴 때 누군가는 술을 쏟을까봐 걱정한다. 가끔 누군가는 가구를 부러뜨린다. (백악관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단 대통령 가족이 거주하는 ‘사적 공간’인 2층과 3층은 백악관 큐레이터가 예술과 장식을 조언해줘도, 그에게 관리책임이 있는 영역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 초상화 중에 누구를 어디에 거느냐도 중요하다. 현직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집무실 벽난로 바로 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초상을 걸었다. 대통령이 앉아서 회의하는 사진이 자주 언론을 통해 공개돼 가장 중요한 위치다. 루스벨트는 경제 대공황기에 취임해 뉴딜 정책으로 미국 경제를 재건했다. 바이든은 코로나19가 창궐한 자신의 취임 환경을 루스벨트의 취임 당시와 비교하며 자주 인용해 왔다. 바이든 이전의 대통령 9명은 모두 이 자리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초상을 걸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각실에 있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초상화를 트루먼의 초상화로 바꿨다. 당시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뒤집고 있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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