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고'에 부동산까지..윤 정부 경제팀, 출발부터 험로

안광호 기자 2022. 5. 1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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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5~6월 물가, 5%대로 치솟을 가능성 커
한은의 ‘빅스텝’ 압박이 요인”
중국 봉쇄도 성장률 둔화에 영향
“정부 간 긴급 외교 플랫폼 구축 시급”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5층 회의실에서 첫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고 “물가가 제일 문제”라며 민생경제 회복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출범과 함께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위기’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미국 통화정책 정상화, 중국의 록다운(봉쇄)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다. 모두 민생과 직결된 사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히 “제일 문제가 물가”라고 했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민심이 악화하고 향후 국정 운영도 동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와 금융·외환시장 불안으로 인한 충격은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고물가의 직접적인 원인이 대외 변수에 따른 것이란 점에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도 제한적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지만, 내수와 가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으로 재정과 물가의 변동성 우려도 크다.

국제 공급망 차질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출이 흔들리고 무역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난 것도 새 정부의 고민을 키운다. 연간 성장률은 2%대로 떨어질 수 있다. 하반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현실화할 것이란 경고음도 나온다. 규제 완화 기대감으로 들썩일 조짐을 보이는 부동산 시장 문제도 쉽지 않은 과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월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윤석열 정부 경제운용 방향과 관련해 “물가안정 등 민생안정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했다. / 연합뉴스



■‘3고’, 하반기 성장률 둔화 요인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5월 10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축하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재부 부내 회의를 열고 물가와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공급망 차질 등으로 물가는 5%에 육박하고, 미국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원·달러 환율이 1300원 문턱까지 다다르자 급하게 회의를 소집했다. 최근엔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수출마저 흔들리면서 시장에서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 적자에 빠지는 ‘쌍둥이 적자’와 ‘퍼펙트스톰(총체적 복합 위기)’를 걱정해야 한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각종 지표를 면밀하게 챙겨 물가 상승의 원인과 그에 따른 억제 대책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 에너지 가격이라든가 다 올라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산업경쟁력에도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같은 날 추 후보자는 부총리 취임식에서 “물가안정 등 민생안정을 최우선으로 챙기면서 거시경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 나가겠다”고 했다.

지금의 고물가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의 5월 첫째 주(5월 1~5일) 배럴당 가격은 105.7달러로, 전주보다 3.6달러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해보면 지난해 4월 배럴당 약 63달러에서 올 4월엔 약 103달러로 63%가량 올랐다. 국제유가 상승세는 한동안 이어질 공산이 크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내년 1월까지 석유제품 수입을 끊는 제재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곡물가격의 지속적인 오름세도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출항구가 봉쇄되는 등의 영향으로 밀 가격이 20% 이상 올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4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58.5로, 전년 동월(122.1) 대비 29.8% 상승했다. 한국은 국민이 먹는 밀의 99%를 수입에 의존한다. 곡물 가격 변동성과 수급 불안이 커지면 직격탄을 맞는다. 시카고선물거래소 선물가격 기준으로 지난 1월 t당 평균 284달러였던 밀 가격은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96달러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탄 이후 4월 평균 391.84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의 강도 높은 긴축도 우리에겐 악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5월 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0.25~0.5%인 기준금리를 0.75~1.00%로,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밟았다. 연준은 회의 직후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 위험에 매우 높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8.3% 올랐다.

연준의 빅스텝은 이번 한차례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향후 두어 번의 회의에서 50bp(0.5%포인트·1bp=0.01%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인식이 위원회에 퍼져 있다”고 했다. 이미 한국(1.50%)과 미국(0.75~1.00%)의 기준금리 격차는 기존 1.00~1.25%포인트에서 0.50~0.75%포인트로 크게 줄어든 상태다. 한두차례 빅스텝만으로도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의 기준금리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 이는 곧 금리 역전에 따른 투자 자금 유출, 원화 가치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속적으로 연고점을 경신 중이다. 시장에서는 1300원대 진입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원자재 가격 인상과 달러 강세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이러한 3고 현상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경제분석 보고서에서 “글로벌 공급망 불안,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데다 미국의 강도 높은 긴축정책 등으로 고환율(원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삼중고 현상을 맞고 있다”며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동시 발생으로 하반기 소비·투자 위축, 경상수지 악화 등이 경제성장률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4월 4.8%, 5월 5%대 유력

고물가가 장기간 이어지면 가계의 실질소득과 실질구매력이 줄어든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내수 회복도 더뎌진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4.8% 상승했다. 2008년 10월(4.8%) 이후 13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시장에서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에 주목한다. 소비자가 예상하는 향후 1년간 상승률을 의미하는 기대인플레이션(4월)은 3.1%로 2013년 4월(3.1%)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주요기관의 한국 연간 물가 전망치는 한은 목표치(2.0%)를 크게 웃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기존 전망치(3월·3.1%)보다 0.9%포인트 올린 4.0%로 상향 조정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ING은행도 4.6%로 제시하면서 “조만간 5%대에 진입할 수 있으며, 예상보다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인해 한국은행이 이달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오는 5월 26일 열리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제는 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다. 다중채무자와 취약계층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은의 가계신용(빚) 통계를 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대출은 1755조8000억원이다. 이중 예금은행의 76.1%가 변동금리 대출이다. 단순 계산하면 대출금리가 기준금리와 마찬가지로 0.25%포인트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3조3404억원가량 늘어난다는 의미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금의 고물가 상황은 대외적인 요인에 따른 것이어서 재정당국이 효율적인 안정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통화당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방법이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는데, 다만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등 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당국의 역할도 제한적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유류세 인하 등 기존 물가안정 대책 외에 내수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법인세와 부가세 감면과 같은 한시적인 조세정책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동의를 얻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주 실장은 이어 “5~6월 물가는 5%대 상승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한은 금통위의 단순한 베이비스텝(한 번에 0.25%포인트 인상)이 아닌 미 연준처럼 빅스텝 결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지난해 3분기 106.7%까지 급등한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금리 인상에 따라 채무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률 둔화도 우려된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 영향까지 더해져 경상수지가 더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들어 지난 4월 말까지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66억1900만달러다. 1년 전 같은 기간 무역수지는 101억3600만달러 흑자였다. 현대경제연구원 등은 “봉쇄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향후 공급망 쇼크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질 것”이라며 “당분간 상하이, 베이징 등 코로나19 봉쇄조치가 내려진 지역은 물론 한국 기업이 다수 진출한 지역의 기업 애로 사항을 검토한 후 중국 정부에 전달할 수 있는 정부 간 긴급 외교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고 경고한다. 한은도 오는 5월 26일 수정경제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3.0%에서 2%대로 낮출 가능성이 높다. IMF는 지난 4월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제시했다. 1월 수정 보고서에서 제시한 3.0%보다 0.5%포인트 낮춘 수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상견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5월 26일 예정된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 연합뉴스

■‘부동산 정상화’에 집값 들썩 조짐

부동산 정책도 새 정부의 어려운 과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세제와 대출의 문턱을 낮추는 것을 시작으로 ‘부동산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규제 완화 기대감에 집값이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어 규제 완화와 시장안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우선 다주택자의 세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현행은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주택 2채를 보유하게 된 사람이 1주택자로서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주택 1채를 처분해야 한다. 윤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출범일인 지난 5월 10일부터 처분 기한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세대원 전원이 신규 주택에 전입해야 비과세를 받을 수 있었던 세대원 전원 전입 요건도 폐지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조치도 1년간 한시적으로 중단된다. 이에 따라 주택을 2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는 중과세율을 적용받지 않고 최고 45%의 기본세율(지방세 포함 시 49.5%)로 주택을 처분할 수 있게 된다. 새 정부의 이러한 완화 조치들은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5월 2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기존의 매물이 나오도록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1년 유예하는 등 공급에 플러스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했다. 2020년 7월 말 도입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지난해 6월 초 시행한 전월세 신고제 등 임대차 3법은 대폭 손질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공약인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의 통합 여부는 장기 과제로 미뤄둔 상태다. 부동산 대출 규제도 완화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보면 생애 최초 주택구매 가구의 경우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최대 상한을 완화(60~70→80%)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유지한다.

규제 완화 기대감에 안정세로 돌아섰던 집값이 다시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1% 올랐다. 지난 1월 4주부터 14주 연속 하락·보합세를 기록하다 반등했다. 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는 “다주택자의 세부담 완화는 보유세 부담을 낮춰 매물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이긴 하나 대출의 경우 다주택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직접 연관된 문제”라며 “대출 문턱이 낮아지면 강남을 중심으로 한 고가 주택에 대한 고소득자의 매수 등 접근이 쉬워질 가능성이 높아 집값 불안을 부추길 여지가 있는 만큼 완화 폭과 규모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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