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한 미국, 푸틴의 대응은?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것과 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벌이지 못할 정도로 러시아가 약해지는 걸 보고 싶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4월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비밀리에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뒤 작심하고 한 발언이다. 미국의 최고위 국방 당국자가 ‘러시아 군의 약화’란 미국 정부의 의중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작심 발언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을 우려해 최근까지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려 신중을 거듭해온 미국 정부의 기조가 바뀌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실제 최근 들어 미국 최고 수뇌부는 공격적이고 거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3월 하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전범’이라 불렀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는 러시아의 군사 목적이 “이미 실패했다”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기조가 그동안의 ‘신중 모드’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 증거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의 양과 질이 확 달라졌다는 점이다. 전쟁 초기 미국은 러시아를 의식해 우크라이나에 소총과 탄약 같은 방어용 무기를 공급했다. 4월 말 현재 상황은 크게 다르다. 미국은 Mi17 헬기는 물론 155㎜ 곡사포, 박격포, 무장 드론, 대전차미사일 및 지대공미사일 등 공격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 중이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연일 8~10대의 미군 수송기가 무기를 본토에서 나토 회원국의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로 나르고 있다. 72시간이면 충분하다.
미국이 공격용 무기까지 공급하기로 방침을 수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자 우크라이나 군이 몇 주 내에 무너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군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러시아 군에 강력히 저항하며 버텼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북부에서는, 당초 속전속결을 노렸던 러시아 군을 사실상 패퇴시켰다. 미국은 전략을 수정했다. 우크라이나 군이 적어도 몇 달, 심지어 몇 년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면서 적극 지원키로 한 것이다. 미국은 전쟁 초기인 2월 말에는 소총, 탄환, 방탄복 등 3억5000만 달러 규모의 무기를 지원한 바 있다. 이후 시간이 갈수록 지원 규모가 커지더니 4월 말 현재는 37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앞으로 더 불어날 전망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국방부에서 유럽 및 나토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이언 브르제진스키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전쟁 초기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는 무기를 공급하는 데 무척 주저했지만 지금은 공격용 곡사포와 헬기까지 지원하는 등 초기와는 아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공급한 무기를 보면 러시아 탱크와 장갑차를 공격하는 데 주효한 피닉스 고스트 드론 121기 및 스위치블레이드 드론(일명 가미카제 드론) 300기, 장갑차 200대, 155㎜ 곡사포 90문, 대전차 공격용 재블린 미사일 6000기 및 스팅어 지대공미사일 2000기, Mi17 헬기 11기, 4000만 발 이상의 탄환과 포탄 14만 발, 5000정 이상의 소총, 기관총 400개, 방탄복 및 헬멧 3만 개 등이다. 나토 주둔 미군은 우크라이나와 마주한 나토 회원국 국경지대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 미제 무기 사용법을 훈련 중이다. 미국은 또한 우크라이나가 자체 보유하던 노후 전투기 20대에 대한 부품을 공급해 전선에 출동시키는 등 백방으로 돕고 있다. 이쯤 되면 병력만 파견하지 않았을 뿐이지 미국이 러시아와 사실상 ‘대리전’을 펼치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사실상 미제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 군의 동부 총공세를 저지할 수 있느냐다. 성패 여하에 따라 전쟁의 향배는 물론 조만간 재개될 평화협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주둔 미군 특수전 사령관을 지낸 마이클 리파스 예비역 소장은 〈뉴욕타임스〉에 “만일 러시아 군이 동부를 장악해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통로를 확보한다면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군이 돈바스 점령에 성공하면, 푸틴이 비록 부분적이긴 해도 전쟁 승리를 자국민에게 선전하면서 이를 평화협상의 지렛대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러시아 군이 더욱 궁지에 몰리면…
반면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 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면, 푸틴은 상당한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 경우 장기전 수렁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 끌고 가야 할지 아니면 불리한 상황에서 평화협상에 복귀할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전쟁을 계속하기로 한다면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징집령이 불가피하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군이 서방의 전폭적 군사 지원 아래 끈질긴 저항을 펼치면 러시아 군은 과거 아프간 전쟁처럼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보고 패퇴할 가능성이 크다. 1979년 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은 1989년 12월 철수하기까지 약 10년 동안 전투 중 사망자 1만4453명, 부상자 5만3753명 등 엄청난 인명 피해를 겪었다. 그런데 나토의 추정치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병사 1만5000여 명을 잃었다. 러시아가 동부 총공세에 나선 데는 북부보다 전쟁이 유리한 동부에서 전세를 역전시킨 뒤 자국에 유리하도록 평화협상을 진행하려는 푸틴의 속셈이 깔렸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푸틴의 속셈을 모를 리 없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총력 지원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푸틴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향후 얼마나 많은 공격용 무기를 계속 공급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CNN은 “바이든 행정부가 당면한 최대 도전 가운데 하나는 푸틴의 인내 한계점을 파악해, 그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로 이동하는 미군 무기 수송차량을 공격한 적이 없다. 하지만 미국이 지금처럼 공격용 무기를 계속 공급할 경우 푸틴이 반격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에 미국 혹은 나토가 대응하면 양측의 직접적 무력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4월26일 국영 TV에 나와 “핵전쟁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미국에 경고했다. 앞서 주미 러시아 대사관은 미국이 공격용 무기를 계속 지원하면 “예측 불허의 결과에 직면할 것”이란 강력한 경고가 담긴 항의 문서를 미국 국무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이 같은 경고를 심상치 않게 본다. 앞으로 러시아 군이 더욱 궁지로 몰리면 미군 무기 수송차량에 대한 공격을 실제로 감행할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과감한 무기 지원은 푸틴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종의 ‘시한폭탄’과도 같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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