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유효한 100년 전 선언, "다시 어린이를 높이자"

김중미 2022. 5. 1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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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든 4월 초, 2년 만에 기찻길옆작은학교 공부방의 일상을 되찾았다.

개복숭아꽃과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주말, 그 놀라운 어린이들이 강화 공부방으로 농촌 체험을 왔다.

하지만 공부방 밖 세상은 여전히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어린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날 100주년을 앞두고 공부방 어린이들과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선언을 만들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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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100년 전 선언인데 2022년에도 유효하다.
2020년 12월4일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된 ‘기찻길옆 작은학교 활동 발표회’.​​​​​​​ⓒ시사IN 신선영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든 4월 초, 2년 만에 기찻길옆작은학교 공부방의 일상을 되찾았다. 초등부는 공부가 끝나면 골목으로 나가 놀았다. 1, 2학년 동생들도 형 누나들을 따라 긴 줄넘기를 하고, 다방구를 하고, 소꿉놀이를 했다. 3년 만에 ‘함께 하는 놀이’도 시작했다. 요일별로 평화 공부를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목공을 하고, 인형극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른인 우리는 걱정이 많았다. 어린이들이 몸을 움직여 노는 법을 잊지는 않을지,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어울리는 법을 잊는 것은 아닐지. 그러나 기우였다. 어린이들의 회복탄력성은 놀라웠다.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배려하고, 언니 오빠들의 경험을 존중하며 함께 어울렸다.

개복숭아꽃과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난 주말, 그 놀라운 어린이들이 강화 공부방으로 농촌 체험을 왔다. 어린이들이 할 일은 모판 만들기. 싹을 틔운 볍씨를 상토 위에 뿌리고 다시 흙을 얇게 덮는 일이다. 못자리를 하는 일은 잠시뿐, 아이들은 골짜기와 냇가를 오르내리며 신나게 놀았다. 공부방에는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보다, 좁은 골목 외에는 놀 공간이 없는 다세대주택이나 외주물집(마당이 없이 길가에 바싹 붙여 지은 집)에 사는 친구들이 더 많다. 지난 2년 동안 아이들 몸이 더 쪼그라들고 굳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그 몸이 깨어나 봄꽃처럼 피어났다.

공부방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소파 방정환이 1923년 발표했던 ‘소년운동의 기초 선언’ 중 한 문장을 떠올렸다.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100년 전 선언인데 2022년에도 유효하다. 모두 알다시피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 아이를 어른보다 미숙한 존재,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로 보던 시선을 뒤집어 어린이를 높이자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 ‘어린이’란 말이 요린이, 골린이, 와린이 등등 어떤 일에 미숙한 이들을 일컫는 말로 폄하되어 쓰인다. 애써 높인 어린이의 존재를 다시 바닥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1922년 첫 어린이날 행사는 세계 노동자의 날에 열렸다. 방정환과 천도교소년회가 어린이의 인권을 높이는 일을 노동해방, 더 나아가 인간해방과 같은 차원으로 여긴 까닭일 것이다. 어린이날은 애초에 선물이나 받고 놀이공원에 가는 날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래의 꿈나무들’을 넘어

오늘날에도 어린이는 주체가 아니라 여전히 대상이 될 때가 많다. 당연히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방정환은 100년 전, ‘어린이를 시혜적으로 베풀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어린이들을 완전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예우해야 한다’고 했으나, 여전히 어린이는 시혜의 대상이거나 부모의 소유물이거나 어른들의 부속물이고 그저 미래의 꿈나무들이다.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사회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절망만 할 수는 없다. 우리 공부방에는 이주 배경을 가졌거나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많다. 공부방에서는 유엔이 정한 아동권리협약 ‘성별, 나이, 종교, 인종, 국적, 재산, 능력,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고, ‘이주노동자 자녀, 장애 아동, 난민 아동은 특별한 배려를 받’는다. 하지만 공부방 밖 세상은 여전히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어린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이날 100주년을 앞두고 공부방 어린이들과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선언을 만들어보려 한다. 못자리에 새싹이 돋듯 어린이들도 다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다.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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