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는 '실용'이라는데, 군은 왜 역행하나[안보열전]

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2022. 5. 1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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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날 갑자기 검은 옷으로 바뀐 국방부 군사경찰 근무복장
보는 사람도 더운데다 위장 효과 전무..적외선 반사방지 처리는?
경호처 "추가 병력 투입되면서 일체감 형성 차원에서 근무복 통일"
취임식에 등장한 국방부 의장대, 굳이 필요없는 신형 K2C1 소총 휴대
정작 실탄 휴대하고 대통령실 지키는 101경비단은 K2 소총 사용
실전에서 헬멧에 계급장 굳이 달 이유는?..흰 마스크 쓰면 눈에 잘 띄어
"아무렇게나 선진국 따라가지 말고 왜 쓰는지 이해를 하고 보급하라"
편집자 주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실용'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닷새가 지났다. 정부 조직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군대도 이제는 전향적으로 실용을 추구할 때다.

불행히도 우리 군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인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실전을 치르는 미군을 동맹군으로 두고도 이상한 방향으로 선진화를 추구하고 있다.

물론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지만, 이제는 군대도 뻔히 보이는 허례허식보다 '실용'을 추구할 때다. 장병들 목숨이 오고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지킨다고 흑복?…보는 사람도 더운 비실용적 복장

국방부 서문 위병소를 지키는 군사경찰. 김형준 기자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를 지키는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사경찰대대 근무 복장이 바뀌었다.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곧장 이 곳으로 오던 날부터다.

국방부는 국직부대라는 특성상 육해공군과 해병대 장병들이 모두 근무한다. 그전에는 육해공군 화강암 전투복과 해병대 파도무늬 전투복을 입고 위병소를 지키던 군인들이 이날부터는 '군사경찰'이라는 표시가 붙은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다. 더 잘 알려진 말로는 '흑복'이라고 한다.

흑복은 1980년 4월 30일 영국 육군 특수부대 SAS가 런던에 있는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을 진압할 때 입은 일을 계기로 전 세계 대테러부대에 널리 퍼졌다. SAS가 최루가스를 뿌리진 않았지만 방독면을 쓰고 까만 옷을 입어 테러범들에게 위압감을 줬기 때문이다.

육군 수도군단 군사경찰 특수임무대. 시가지에서는 물론 산 속에서도 매우 눈에 잘 띈다. 육군 페이스북


우리 군에서도 같은 이유로 육군 특전사 707특수임무단, 각군 군사경찰 특임대(SDT) 등 대테러 임무를 맡은 많은 부대들이 흑복을 착용한다. 흑복 자체를 대테러부대 전입교육을 받고 테스트를 통과해야 입을 수 있는 일종의 '특권'으로 여기는 내부 문화도 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사실 자연 속에는 까마귀 정도를 제외하면 검정색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산이나 풀숲은 물론 시가지에서도 눈에 잘 띄며, 심지어는 가장 위장이 잘 될 것 같은 밤에도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검정색 옷이 어둠보다 더 검기 때문이다.

국가급 대테러특공대로 해상 대테러 임무를 맡는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특수임무대대가 흑복을 입지 않고 멀티캠 전투복을 입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707특수임무단도 UAE에 파병된 아크부대 위주로 멀티캠을 이미 도입했지만, 국내에까지 도입하는 데는 아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해진다.

더군다나 군에 납품되는 대부분의 흑복은 근적외선 반사(NIR)방지 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많은 업체에서 야간투시경을 만들어 민수용으로 팔기 때문에 야시장비는 더이상 군의 전유물이 아니다. 반사방지 처리가 되지 않으면 사람 눈을 속이거나 위압감을 줄 수는 있어도 야간투시경은 속이지 못한다. 사실 이 문제에선 멀티캠도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경호처는 취재진이 왜 군사경찰대대가 흑복을 착용하게 됐는지를 묻자 "(대통령실 이전으로) 새로운 경호·경비 환경에서 기존 군사경찰대대 인원으로 근무에 한계가 있어, 추가 병력(경호처, 22경찰경호대, 101경비단, 55경비단 등)이 투입되면서 (이 병력들과의) 일체감 형성 차원에서 근무복을 (검은색으로) 통일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정작 국방부·합동참모본부 청사에서 근무하는 군사경찰들은 그전처럼 화강암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다만 경호처는 "새로 (정식) 채택된 근무복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으며, 새로운 디자인으로 (근무복을) 선보이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올라온 우크라이나군용 폴로셔츠


또 검은 옷은 곧 다가오는 여름에도 실용적이지 못하다. 열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걸그룹 f(x)가 부른 노래 'Hot Summer'에는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라는 가사가 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햇빛을 가리고 땀이 잘 증발되는 헐렁한 옷을 입었을 때만 맞는 말이다. 당연히 전투복에 해당될 리가 없다. 여기에 더해 열을 흡수하면, 열상장비에도 더 잘 포착된다. 요즘은 야시장비가 흔해졌듯 열상장비도 흔해졌다.

선진국들 또한 이러한 문제를 이미 알고, 여름에 오랜 시간 위병소를 지키거나 순찰을 돌아야 하는 군사경찰들에게 가벼운 티셔츠나 폴로셔츠 등을 정식으로 허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계급장, 혈액형 표시, 국기 등을 부착한 폴로셔츠를 아예 제식 채용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변화까지는 어렵다면 우리 군에는 단정한 근무복도 있다. 육군을 제외하면 전 장병에게 지급되며, 육군은 일부 부대 병사들만 지급받는다. 국방부 군사경찰대대가 이를 지급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의장대는 왜 최신형 소총 쓰나?…경계근무자 쓸 소총과 바뀌어

K2C1 소총을 휴대한 국방부 의장대. 연합뉴스

윤 대통령 취임식에서 의장 행사를 선보였던 국방부 의장대대. 정작 이를 보던 현역 군인들은 혀를 끌끌 찼다고 한다. 의장대대가 휴대한 총기 때문이다.

의장대대가 행사에서 사용한 K2C1 소총은 우리 군 제식으로, K2 소총이 1980년대 설계돼 부가장비를 부착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머리판을 바꾸고 피카티니 레일을 부착하는 식으로 개량된 신형이다. 전방 전투부대 위주로 지급되고 있다.

문제는 의장대대의 임무가 대부분 총을 돌리거나 들고 움직여야 하는 '행사'라는 특성상, 이 총을 쓸 이유도 없으며 지급받을 이유도 없고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다는 점이다.

K2C1 소총. 김형준 기자


피카티니 레일은 기본적으로 금속으로 만들어졌기에 무겁다. 총을 돌리다가 사용자가 손을 다칠 수도 있으며, 여기에 수직손잡이까지 달려 있으니 더 문제다. 레일에 덮개를 달면 궁여지책으로 해결되긴 하지만 무게가 가벼워지진 않으며, 수직손잡이는 뗄 수도 있지만 군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M1 개런드 소총을 휴대한 미 공군 의장대.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미군은 의장대가 전투를 할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 나무로 만든 M1 개런드, M14 등 구형 소총을 지급한다. 의장 행사라는 특성상 이쪽이 더 어울리기도 해서다.

의장대대는 그전엔 M16A1 소총을 주로 사용했고 지금도 연습용으로는 많이 사용한다. 앞뒤 무게중심이 잘 맞는다는 이유에서다. 굳이 우리 군 제식소총을 사용해야 한다면 기존 K2 소총으로도 충분하다.

정작 평소에 대통령실을 지키는 서울경찰청 101경비단은 외곽 경계근무 때 K2 소총을 휴대한 모습이 포착됐다. 이들은 실탄을 휴대하며 실제 상황에 대비해 경계를 서는 경력(警力)들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K2C1 소총을 써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이들이다.

훈련에서까지 계급장 집착하는 군…눈에 잘 띄는 흰색 마스크

군대에서 계급이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우리 군은 도가 지나치다. 예를 들어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이 확정되면, 계급장은 대위이지만 서류상으로는 소령(진)으로 적는다. 중징계를 받지 않으면 몇 달 뒤에는 진급하게 되며 이른바 '직책 계급장'으로 소령 자리에 일찍 보직하고 계급장을 달아 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진급하기 전까지는 대위다.
육군 수도군단 특공대 훈련 모습. 소령 계급장이 눈에 잘 띈다. 육군 페이스북


전투를 할 때도 그런다는 점이 더 문제다. 최근 육군 등이 공개한 일선 전투부대 훈련 사진을 보면 방탄헬멧은 물론 부니햇 등에도 굳이 커다란 간부용 계급장을 부착한 모습이 포착됐다.

군에는 "평소 싫어하는 상관이 있다면 실제 상황 때 경례를 하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저격수는 계급이 높은 쪽을 가장 먼저 쏘기 때문이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흰색과 노란색 계급장을 보고 공비들이 저격을 하는 통에, 검정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색이든 실제 상황에서는 누가 가장 좋은 표적인지, 그것도 머리에 쏘라고 안내해주는 것 외엔 전혀 쓸모가 없다.

유탄발사기 사격을 하기 위해 사격장에 모인 유엔군사령부 경비대대 장병들. 계급장과 명찰을 방탄복에 부착하고 있다. 유엔사 경비대대 페이스북


수십년째 실전을 치르는 미군 사례를 살펴보면, 과거엔 전투복 옷깃에 달던 계급장과 똑같은 작은 크기 계급장을 헬멧에 달았었다. 그러다가 야간투시경 장착대(슈라우드)를 헬멧에 다는 일이 보편화되면서 계급장을 달 자리 자체가 없어지니 달지 않게 됐다.

물론 미군도 계급장은 부착한다. 전투복과 방탄복에만 달고 헬멧에는 달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 육군에서는 야간투시경 장착대를 활용해 야간투시경이 아니라 계급장을 부착하는 황당한 사례까지 포착되기도 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평소에 전투모에 다는 계급장도 마찬가지다. 해군과 공군은 포제 계급장을 달지만 육군은 베레모와 전투모에 반짝이는 계급장을 부착한다. 국지도발 상황이 처음 시작되기 전 미리 침투해 있던 저격수가 숨어 있다가 포착하기에 딱 좋다.

최전방을 지키는 육군 6보병사단 장병들. 흰색 마스크가 눈에 잘 띈다. 육군 페이스북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쓰는 마스크도 흰색일 경우 눈에 잘 띄곤 한다. 미군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마스크를 쓰라고 규정할 때부터 가능하면 전투복과 비슷한 색상을 착용하라고 지침까지 내렸었다. 마스크만 다른 색이면 눈에 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비실전적인 요식행위 지양, 장비를 왜 쓰는지 이해하고 보급해야

물론 모든 발전에는 시행착오가 있다. 미군도 여러 새로운 장비를 도입해 실전에서 써 보면서 수많은 피를 흘렸고, 그 결과 쓸데없는 요식행위나 비실용적인 행동은 지양하고 보다 실전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쪽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다.

지난 3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를 보면 "군 피복류 조달제도 개선 및 기능 강화를 통한 고품질 피복류 보급을 확대하며, 전투생존성 보강 차원에서 개인전투장구류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구체적인 예로는 무전기·방탄복·야시장비, 생존성 향상 피복류, 전투기능 발휘 보장을 위한 장구류 전력화 추진 등을 들었는데 어떻게 할지 각론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근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면서 관련 예산이 많이 삭감됐다. 방탄복 등 개인전투장비 예산 136억원 중 81억원이 감액됐고, 특수임무 피복은 117억 7천만원 중 32억 3900만원이 깎였다. 대테러 장비 구매 예산 역시 40억 3400만원 중 37억원이 삭감됐다.

우리 군은 미군을 바로 옆에 두고 있다. 유사시 앞장서서 싸우는 장병들 희생과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장비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왜 평소부터 해야 하는지 기본 자세와 노하우다. 이를 일선 부대 장병들에게 교육하는 일도 생활화해야 한다.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도 일선 보병 개인전투장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이같은 방향을 추진했었다. 2017년 취임한 김용우 전 육군참모총장이 주도했던 '워리어 플랫폼'이 대표적인데, 현행 제도 등의 한계로 외국 군수품 카피품이나 성능미달 제품이 들어오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군 소식통은 "군용 장비와 그 사용에 대해 왜 이런 장비를 이렇게 쓰는지 명확하게 이해를 하고 보급을 해야지, 선진국 추세를 아무렇게나 따라가니 장병들만 고생한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배울 것들이 정말 많고, 실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군에서는 "민간에서 알아 봤자 얼마나 잘 아느냐"며 무시하기 일쑤다. 정작 그 우크라이나군이 민간 통신망에 보안대책을 더해 원활히 통신을 유지하고, 민간용 드론에 폭탄을 달아 하늘에서 러시아군을 기습하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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