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 텐트촌'의 위기.."거지라도 살게는 해줘야지"

박동해 기자 2022. 5. 1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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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고시원은 되는데 천막은 안 되는 주거지원
주거지원 받더라도 생계로 천막 벗어나기 막막
지난 10일 용산역 뒤편에서 바라본 텐트촌의 모습. 나무가 무성히 자란 사이사이로 천막들이 보인다. © 뉴스1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A(60)의 집에는 문이 없다. 입구 쪽 천막을 살짝 들추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사실 문만 없는 것이 아니라 지붕도 바닥도 벽도 없고 거실도 욕실도 화장실도 없다. 하지만 이곳을 A는 집이라고 부른다. 7~8평 되는 공간에 A는 손수 집을 만들었다.

상가 입주자 모집을 알리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지붕 삼고 비닐하우스에서 사용하는 골조를 기둥 삼아 햇빛과 비를 막는 역할을 맡겼다. 천막 안 바닥에는 검은색 플라스틱 화물운반대(팔레트) 석장을 쌓아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았다.

천막 안 팔레트 위에 세워진 1인용 텐트가 그가 먹고 생활하는 안방이다. 텐트 안에는 그가 덮고 잤던 이불과 침낭이 정리되지 않은 채 놓여있다. 텐트 바로 앞 팔레트가 깔리지 않은 천막 안 땅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컵라면 용기가 놓여있다.

어두운 천막 벽면을 가득 메운 잡동사니들 중 사실 정리되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천막 입구에는 언제 썼는지 모르는 스테인리스 숟가락 하나가 흙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원치 않은 '이사'를 하기 전까지 그의 집은 열심히 정리한 흔적이 있던 곳이었다. 그는 이전 집에 살 땐 집 앞으로 오는 길도 매일 깨끗이 청소했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2주 전까지 살던 천막 집이 허물어지고 불과 10m 떨어진 곳에 다시 천막을 지으면서 A는 짐을 정리하는 것을 미루고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A의 집 옆에서 함께 천막를 치고 사는 이웃주민 B(68)는 "속상한 일이 있는지 A가 8~9일 내내 나오지도 않고 밥도 안 먹고 술만 먹었다"고 했다. 결국 A는 11일 새벽 술을 마시고 계단에서 미끄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10여년 전부터 A가 천막을 치고 살아온 공터 주변에는 20여개의 비슷한 천막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천막들이 즐비한 이곳을 사람들은 '텐트촌'이라고 부른다. 용산역 뒤편에 자리 잡고 있어 '용산역 텐트촌'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지난 10일 용산역 텐트촌 한쪽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다.© 뉴스1

이 텐트촌으로 향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용산역 3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달주차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 다시 왼쪽으로 향하면 지상으로 향하는 고가가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텐트촌으로 향하는 콘크리트 계단이 보인다. 계단 바로 옆에는 큰 오동나무가 텐트촌으로 가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여명의 주민이 이 마을에 살고 있지만 누구 하나 땅을 가지진 못했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용산역 인근에서 노숙을 하던 이들로 각자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거리를 떠돌다 갈 곳이 없어서 지낼 곳을 찾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다.

최근 이들이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는 이 텐트촌의 공간 일부가 잘려 나가는 일이 있었다. 용산역과 주변 고급 호텔을 잇는 공중보행교를 새롭게 짓는 공사가 시작되면서 2개의 천막이 철거된 것이다. A와 B는 이번 공사로 원래 살았던 천막이 헐려 텐트촌 안쪽으로 이동해 다시 천막을 쳤다.

지자체와 공사를 진행한 시행사는 사전에 철거를 공지했고 천막 이동을 위한 편의도 제공했다고 밝혔지만, A는 '사전에 아무런 합의도 없이 다짜고짜 포클레인을 가지고 와 철거를 진행했다'고 열을 냈다.

용산역-서울드래곤시티 공중보행교 위치도(용산구 제공).© 뉴스1

A는 시공사 측에서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5만원을 준 것이 전부였다며 "우리 같은 거지들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살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A는 천막을 다시 쳐주겠다는 시공사 측에 제안도 거절하고 공사 구역에서 텐트촌 안쪽으로 10여미터 자리를 옮겨 직접 다시 천막을 쳤다.

지난 3월 공중보행교 공사가 시작될 당시부터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철거가 예정된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해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주민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거주공간을 옮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지만 결국 A는 별다른 준비 없이 다시 천막을 짓고 살아가게 됐다.

그나마 최초에 철거될 예정이었던 천막이 3개동에서 2개동으로 줄어들면서 철거 대상에서 제외된 C(72)는 천막을 지키게 됐다.

시민단체들은 국토교통부훈령인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을 내세우며 공사가 진행되기 전에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민들의 주거지 마련에 나서야 했다고 지적한다.

이 지침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거주지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건설·매입·전세임대주택 거주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해당되는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노숙인시설, 컨테이너, 움막, PC방, 만화방 등의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서 3개월 이상 주거를 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용산구청은 텐트촌 주민이 3개월간 천막에서 실거주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해당 주거지원 사업의 신청을 받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구청은 주민들에게 노숙인 지원 사업을 통해 고시원이나 쪽방에 3개월 정도 거주를 하고 이후에 주거취약계층을 위하 주거지원 신청할 것을 안내했다.

지난 4일 용산역 텐트촌에 있던 주민 A의 천막이 철거되고 있다. © 뉴스1

10년간 이곳에 살았던 D(62)는 본인이 직접 나서 주거지원을 신청해 보려고 했지만 '천막'은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며 "고시원, 쪽방 이런 데서 3개월 이상 살아야 매입임대든 전세든 조건이 된다는 데 여기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비슷하게 열악한 실정인 텐트촌 사람들이 왜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런 지자체의 입장에 대해 '소극 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서울시와 소방당국 등에서 텐트촌 거주민을 위한 상담과 안전 점검들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거주민 명단도 작성하고 있기에 이를 통해 3개월 이상 거주 사실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시민단체들은 쪽방이나 고시원 자체가 이미 '비정적 주거형태'인 만큼 텐트촌의 주민들을 다시 쪽방이나 고시원으로 보내는 것 또한 주거 상향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실제 이번 공사과정에서 텐트가 헐릴 뻔했던 C의 경우 용산역 인근에 고시원을 마련해 거처를 옮겼지만 영 적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있는 것도 불편하고 눈치가 보여 밥을 먹기도 힘들다"며 하루 웬만한 시간은 나와 지낸다고 했다. C는 고시원을 얻은 뒤에도 텐트촌으로 나와 자신의 천막이 잘 있는지 살피고 텐트촌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지난달 14일 홈리스행동과 용산역 텐트촌 주민들이 용산역 텐트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구청에 적절한 주거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뉴스1

용산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주거지원 대상에 대해 자체적으로 임의적 판단을 하기 어렵다'며 해당 지침을 제정한 국토교통부 측에 지난 4월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용산구는 유권해석에 대한 답이 오면 그에 맞게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텐트촌 주민들은 주거지원이 되더라도 과연 이곳을 떠나 잘 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주거비 지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장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부수적인 비용들을 감당하기 어렵고 10년 이상 용산역 주변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살아가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을 받거나 65세를 넘겨 기초노령연금이라도 받으면 사정이 좀 낫지만 텐트촌 주민 중에는 이에 해당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몸이 아파 근로를 하기 힘든 노숙인들의 경우에도 병원에 가기가 어려워 이를 증명할 수가 없고,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 받으니 정부 지원을 받기 힘든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A는 뇌전증을 앓고 있어 주기적으로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텐트촌 주민들은 마을 쪽에 더 가까운 보행교가 완성되면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텐트촌이 더 잘 노출될 것이고,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불어 텐트촌이 자리 잡고 있는 '용산 정비창 부지'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 예고된 곳이라 개발 과정에서 텐트촌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서울시는 올해 안에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설 방침이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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