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해발 1100m 고원에 콘크리트로 만든 '브라질의 세종시'

한겨레 2022. 5. 14. 13: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SC : 노동효의 지구 둘레길]노동효의 지구 둘레길│브라질 브라질리아
내륙 균형발전 위해 계획된 수도
대통령궁 등 조각품 같은 건물들
198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오스카르 니마이어가 설계한 국립박물관. 노동효 제공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서울의 인구 문제는 수도를 이전하는 방법으로밖엔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소.”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사법부·청와대까지 전부 옮길 작정으로 이 말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 구체적 천도 계획을 짠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정적인 김대중의 공약(충청도로 수도 이전)이었지만, 초법적 대통령조차 계속 불어나는 서울 인구를 백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극비리에 팀이 꾸려졌다. 400여명의 전문가가 참가했고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행정수도건설 백지계획’이란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100여권에 달하는 책자였다. 1979년 종합요약본이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1996년까지 수도 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행되진 못했다. 대통령의 서거로 무산되었기에.

극비리에 제작된 문서가 다시 빛을 본 건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러서다. 보고서엔 도시의 전체 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새가 날개를 펼친 형상. 머리에 해당하는 위치에 대통령 관저가 있고 오른쪽 어깻죽지엔 국회의사당, 왼쪽 죽지엔 대법원, 활짝 편 날개 위로 시가지가 앉은 모양새였다. 유럽 수도나 미국 주요 도시 중 새의 형상을 한 도시는 없다. 유기체처럼 자라는 도시가 저절로 그런 형상을 띨 수는 없는 법이다. 빈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한다면 모를까. 세계의 수도 중 ‘행정수도건설 백지계획’에 그려진 도면과 닮은 신도시가 하나 있긴 하다. 브라질리아.

국회의사당(가운데) 건물과 좌우 대칭으로 있는 정부 각 부처 건물들. 노동효 제공
항공기 형상을 한 브라질리아 도시계획도. 노동효 제공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

1956년 주셀리누 쿠비체크는 수도를 내륙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루시우 코스타는 항공기 형상을 가져와 도면을 그렸다. 조종석 위치에 삼권 건물을, 동체에 정부 부처 건물을, 양쪽 날개에 시가지를 배치한 도시였다. 건설에 들어간 지 2년 후 세계인에게 문을 열었다. 20세기 최대 건설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 각국 정치지도자가 참석했고, 교황이 축복했으며, 브라질리아는 단숨에 미래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선정 이유는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이란 점과 ‘인간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 기술, 경관’에 해당한다는 점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35년, 브라질 3대 도시이자 남아메리카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은 도시가 되었다.

물론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기려 할 때 동부 연안 시민들은 반대했다. 리우와 상파울루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경제가 낙후될 거라며 불안해했다. 문제가 전혀 없었던 바 아니지만 상파울루는 여전히 제1의 경제도시로 굳건히 자리해 있고, 리우는 여전히 세계인이 브라질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도시이자 최고의 관광도시다. 천도 뒤 황무지가 개발되면서 농업 수출량이 세계 1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는 세계 경제위기의 큰 파도가 칠 때마다 견딜 수 있는 방파제 구실을 했다.

브라질리아까지 육로로 가는 여행자는 극히 드물다. 주로 비행기를 이용한다.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사우바도르 등 해안 인접 관광도시에서 너무 멀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선 버스로 브라질리아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짓을 내가 했다. 온통 초록빛의 내륙을 관통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포스두이구아수에서 버스로 1600㎞, 몇개 도시를 지나치긴 했지만 초록의 사막을 하염없이 지나는 기분이었다. 심심해진 나는 ‘수도’에 대해 생각했다.

고대 도시국가는 자체로 수도이자 나라였다. 국가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도시 중 하나가 수도 역할을 했다. 정치세력의 변화로 천도하기도 했다. 왕건은 고려를 세우며 개성으로, 이성계는 조선을 세우며 한양으로 옮겼다. 수도를 옮기려면 기득권의 반대를 무릅써야 했고, 천도는 새 시대를 뜻하는 가장 큰 상징이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한국인은 600년 넘도록 새 시대를 맞이한 적이 없는 셈이다. 물론 수도를 옮겨 새 시대를 열려는 시도는 있었다. 김대중의 공약, 박정희의 구상, 노무현의 실행. 세 대통령은 정치관, 국가관, 세계관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결론은 같았다. 또 하나의 공통점, 세 사람 모두 서울 출신이 아니라는 것. 이들의 시도는 모두 무산되었다.

그 후 세월은 흘러 서울은 파리에 이어 인구밀도 세계 2위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전체 인구 대비 파리권 인구비는 5분의 1에 불과하다. 도쿄권 인구도 일본 전체 인구 대비 3분의 1로서 엄청나지만 한국에 비할 바 아니다. 한국에선 전체 인구의 2분의 1이 수도권에 산다. 사태의 심각성은 수도권이 아니라 파리권, 도쿄권이라고 부르듯 서울권이라 부를 때 확연해진다. ‘대한민국 인구의 50%가 서울권에 산다.’

브라질리아 대성당의 내부 모습. 노동효 제공

거대한 구름이 떠다니는 대양

오후 버스가 밤의 도로를 지나 아침, 점심, 다시 밤, 40시간을 달린 뒤 브라질리아에 닿았다. 해발 1000m 넘는 고원이라지만 너무 평평해서 고도를 느낄 수 없었다. ‘거대한 구름이 떠다니는 대양’ 같았다. 철골 구조의 버스터미널에서 나와 도심의 호스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해비타트 회원으로 세미나 참석차 브라질리아에 온 카를로스를 숙소에서 만난 건 행운이었다. 브라질리아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도시란 건 알지만 내가 건축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으니까. 그리스부터 근대유럽에 이르는 건축 사조에 대해 배운 적은 있지만 현대건축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다를 바 없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없었더라면 브라질리아는 존재하지 않았을는지 몰라. 르코르뷔지에는 철근콘크리트로 혁신을 일으킨 건축가야. 그는 가난한 노동자도 햇빛, 숲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 공산품 같은 집을 구상했지. 규격화된 크기, 전후좌우·아래위로 복사가 가능한 집.”

카를로스의 말을 듣다 보니 한국에서 늘 보던 건물이 떠올라 그에게 “그거 아파트 아냐?”라고 물었다. 내 말을 듣고 카를로스가 이렇게 말했다. “맞아, 하하하. 그는 철근콘크리트로 신도시를 건설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공급하자고 했지. 높이 올릴수록 녹지 공간도 넓힐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많은 도시계획도를 그렸지만 실현되진 않았어. 대신 브라질리아를 건설하며 브라질 건축가와 도시설계자가 그의 상상을 실현시켰지!”

카를로스가 말한 브라질 건축가는 오스카르 니마이어(니에메예르)다. 워낙 유명해서 쿠리치바에서도 작품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숙소에서 큰길로 나가서 공원 따라 동쪽으로 가면 오스카르가 만든 건물을 차례대로 보게 될 거야. 우린 그를 콘크리트의 피카소라고 불러.”

가장 먼저 만난 오스카르의 작품은 국립박물관이었다. 건물은 땅속에 반쯤 잠긴 백색 행성의 테두리에 토성의 띠 같은 게 둘러쳐져 있는 듯했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상, 건물이라기엔 조각품 같았고, 조각품이라기엔 너무 거대했다. 멍하니 건물을 바라보자니 정신이 갑자기 우주로 튕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햇살 쨍한 공터를 지나 오스카르의 두번째 작품에 닿았다. 브라질리아 대성당. 건물은 콘크리트 기둥 16개가 쌍곡면 구조를 이루며 솟아올라 두 손 모으고 있는 손 같기도, 왕관 같기도, 성배 같기도 했다. 성당 외관을 감상하며 둘레를 한바퀴 돌았다. 이 또한 조각품 같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게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사도들 조각상에 다가서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보였다. 연못 아래를 통과해 내부로 들어갔다.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리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내 이마에 성수를 뿌린 듯한 기분이었다. 실내는 짐작한 것보다 훨씬 높고 넓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이 내려앉고 천사상이 날아다녔다.

성당을 나와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였다. 오스카르의 대표작이었다. 둥근 사발 하나는 엎어놓고, 하나는 바로 놓은 듯한 형상이 지붕에 있는데 엎어놓은 건물은 상원, 바로 놓은 건물은 하원 의사당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국회의사당, 대통령궁, 대법원이 서 있었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듯이. 오스카르의 작품을 연달아 보니 르코르뷔지에와의 차이점이 보였다. 철근콘크리트로 건물을 지었지만 르코르뷔지에의 건물이 수평과 수직선에 원리를 둔 몬드리안 작품 같다면 오스카르의 건물엔 곡선이 흐르는 호안 미로의 작품이 들어 있는 듯했다.

브라질리아 대성당의 고해성사실. 노동효 제공
브라질리아의 국립도서관. 노동효 제공

차들만 오가는 길

혹자는 ‘브라질리아는 실패작’이라고 평한다. 걷는 내내 마주치는 사람이나 상점 거리도 없이 차들만 오가는 길에서 보행자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 듯한 기분이 되기에 십상이라며. 그러나 새 수도의 나이는 겨우 60여살, 유기물인 도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우리 세대는 알 수 없다. 근데 내가 한국에서 새 수도를 볼 날도 올까? 나는 근미래 같은 도시를 거닐며 훗날 브라질 친구와 나누고 싶은 대화를 상상했다.

“브라질리아는 왜 브라질리아야?” “땅을 뜻하는 ‘~이아’(~ia)가 붙어서 브라질리아야!” “이름치곤 너무 싱겁다.” “그럼 세종시는 왜 세종이야?” “한글을 창제한 왕이 있었어. 우리말은 있어도 우리글이 없었거든. 왕은 모든 국민이 쉽게 글을 익히고 쓸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들었어. 우리는 그 위대한 왕의 이름을 따서 수도를 세종이라고 부르기로 했지.”

글·사진 노동효(〈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