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보드 규제 1년..고무줄 규제에 시장 급랭, 전기자전거만 '씽씽'
업체들 운영 규모 동결하며 허리띠 졸라매
외국 업체들은 사업 철수·잠정 중단하기도
정작 인력 부족으로 규제 '유명무실' 전락
규제 적용 안받는 전기자전거만 '씽씽'
이달 13일은 전동킥보드 헬멧 미착용·면허 미소지 시 범칙금 부과를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지 딱 1년이 된 날이다. 그간 업계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각 지자체별 고무줄 행정까지 겹악재를 맞으며 고사 위기에 처했다. 시행 후에도 실제 헬멧 미착용을 잡아낼 교통경찰 인력 부족으로 인해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유명무실’이라는 지적도 따른다. 킥보드의 빈자리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전기자전거가 메꾸고 있다.
14일 공유킥보드 업계에 따르면 선두 업체인 지쿠터와 킥고잉은 지난해 5월 이후 킥보드 운영 대수를 사실상 동결한 상황이다. 지쿠터의 경우 지난해 3만 대 수준이었던 킥보드가 현재 4만대까지 늘었다. 지난해 증차 목표였던 2만대의 절반만 달성했다. 이마저도 1만 대의 증가분 중 8000대가 지난해 5월 이전 주문분이다.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 이후에는 사실상 증차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킥고잉은 이달 기준 약 2만2000대의 킥보드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5월 2만여 대와 비교했을 때 사실상 변화가 없는 수준이다. 지쿠터(2만대), 라임·씽씽(각 1만대)등 상당수 킥보드 업체는 지난해 공격적인 대수 확장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용자들이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기 보다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기기를 타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사업 확장을 위해선 ‘물량 공세’가 가장 중요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규제 이후 산업이 빠르게 침체되면서 이같은 전략에도 제동이 걸렸다.
싱가폴계 킥보드업체 '뉴런'은 지난해 겨울 이후 킥보드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규제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확실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운영을 재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이어 서울시가 지난해 7월부터 실시한 강제견인 정책에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책은 불법 주정차된 킥보드를 유예 시간 없이 즉시견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킥보드 대당 수거료가 경차와 동일한 수준인 4만원으로 책정했다는 점이다. 킥보드는 경차보다 부피가 훨씬 작아 ‘무더기 견인’이 쉬운 만큼 견인 업체만 배불리는 정책이라는 불만이 업계에서 터져나왔다. 견인료는 업체에 우선 부과하는 만큼 업체들의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견인 규정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자 서울시 측은 지난 3월 신고 후 60분의 유예시간을 둔 뒤 견인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 또한 껍데기 뿐이었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본래 시 측에서 차도·자전거도로에 주정차된 킥보드에도 60분 유예 시간을 부과한다고 발표했으나 하루 만에 결정을 번복했다”며 “현재 즉시견인 건수는 규제 완화 전 80% 수준까지 증가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고무줄 행정에 시내 킥보드 대수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4월 대비 12월 서울 시내 킥보드 대수는 5만4000대에서 3만8000대로 급감했다. 독일 전동킥보드 업체 ‘윈드’는 지난해 말 일찌감치 한국 사업을 접었고, 알파카도 최근 서울 지역 서비스를 중단했다. 업체들은 서울 대신 지방 사업에 집중하며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 또한 지자체별로 규제를 강화하며 업체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중이다. 일례로 대구·원주·광주가 올해 상반기 각각 8000원, 1만 6000원, 1만 5000원의 견인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갈수록 강화되는 규제에 업체들도 공동 대응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공유킥보드 업체들은 올해 3분기 내 국토부를 소관 부처로 한 공유킥보드 협회를 설립할 예정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퍼스널모빌리티 산업협의회(SPMA) 회원사 14곳은 물론 라임 등 비회원사까지 국내 대부분의 업체가 합류할 전망이다.
정작 규제 시행 이후 인력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된 단속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규제 시행 전부터 제기돼 왔다. 당시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교통 외근이 3000명인데 일평균 근무자는 1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며 “차량 과속, 신호위반 단속 등 다른 업무도 해야 하는 만큼 킥보드 단속에만 집중하긴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현재 시속 25km 수준인 킥보드 제한 속도를 20km 이하로 낮추는 안을 제시한다. 퍼스널모빌리티(PM)에 대한 제도적인 기반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PM 관련 기본법은 2개가 발의돼 있으나 1년이 넘도록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해외의 경우 산업 활성화를 위해 확실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 중이다. 호주 멜버른의 경우 안전 우려로 인해 공유킥보드 진출 자체를 막아 오다가 지난 2월부터 라임·뉴런과 손잡고 전동킥보드 약 500대를 시범 운영 중이다. 시 측은 “전동킥보드는 친환경적이고 접근성도 높은 이동수단”이라며 “1년 간의 시범 운영을 통해 안전 운영이 가능할 지를 검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주 외에는 면허·헬멧 의무를 면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규제 자체보다는 규제 환경이 들쭉날쭉한 게 업체 입장에서는 더 힘들다”며 “업체도 대응 전략을 짤 수 있도록 국내에서도 해외처럼 확실한 규제 환경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킥보드의 빈자리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전기자전거가 채우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사 공유 전기자전거 브랜드인 ‘카카오 T 바이크’ 서비스를 지난해부터 본격 확대하기 시작했다. 2019년 1000대로 시작한 카카오 T 바이크는 현재 1만7000여대에 달한다. 올해 초에는 인천 등 일부 지역에서 일반 자전거 시범 서비스도 시작했다. 쏘카가 지난해 말 인수한 일레클은 지난해 말 기준 6000대인 운영대수를 연내 2~3만대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정다은 기자 downright@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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