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생명을 잇는 장기이식,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죠"[병원잡(job)썰]
사람의 생사가 오가고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곳, 바로 병원입니다. 병원은 누구 한 명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직원이 한데 모여야만 비로소 환자를 치료하고, 생명을 살려내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병원잡썰'은 보통 사람들은 잘 알 수 없는, 하지만 병원이 돌아가는데 꼭 필요한 조력자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뇌전증 앓던 스무살 청년, 장기기증으로 7명에 새 삶 선물', '의사 꿈꾸던 12살 소년 장기기증…5명에 새 생명',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로운 삶 선물'…하늘의 별이 된 간호사'
간혹 알려지는 장기기증 소식은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만듭니다. 소중한 사람을 보내면서, 장기기증을 결정한 가족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한 생명은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일 것입니다.
이러한 장기이식 전 과정을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입니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들은 장기이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기증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식을 받은 수혜자들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도 이들의 몫입니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들의 삶은 어떨까요. 지난 10일 서울아산병원의 '2호'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이자 20년 넘게 이 역할을 맡아온 홍정자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홍 선생님은 "장기기증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아픔 앞에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며 숭고한 결정을 해준 기증자와 이식을 받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하는 일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두됐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이 처음 도입했는데, 장기이식 과정이 매끄럽고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뇌사자 기증자 확인부터 이식 수혜자가 건강하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환자·보호자 상담과 교육·안내·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저희의 몫이지요. 장기기증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이식이 쉽지 않은 만큼 병원 직원은 물론 국민을 대상으로 홍보하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를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제가 1999년부터 시작한 병원 2호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인데 앞서 지금은 은퇴하신 1호 선생님(하희선 선생님)이 롤모델이었어요. 10년간 외과 중환자실, 투석실 간호사로 일을 했는데 하희선 선생님을 보면서 한 생명이 마감하는 가운데에서 한 생명이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란 것을 알았어요. 생소하기도, 복잡하기도 하고 나의 것을 많이 희생해야 하지만 기존 간호사 역할에서 조금 다른 분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죠.
한 생명을 다른 한 생명으로 잇는 일
-처음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를 하기 전에 중환자실과 투석실, 외과 외래 등 여러 부서에서 일했어요. 아무래도 가장 많은 이식이 신장이식이다 보니 투석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업무상 조금 접할 기회가 있었고, 그래서 다가가는 데는 어려움이 덜했죠. 그렇지만 극복해야 할 것들이 많더라고요. 중환자실 같은 경우에는 근무 시간에 내 일만 하면 되는데, 장기이식은 퇴근 후에도 급한 환자나 이식자가 있다면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해야 해요. 조금 힘들긴 해도 노력 끝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내 역할이 이런 거였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힘이 났습니다.
-어떨 때 가장 감동과 보람을 느끼나요.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일, 가령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아픔 앞에서 장기기증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에요. "대단하다"는 말도 그분들에게는 조심스럽습니다. 혼절하고 통곡하면서도 "이 죽음이 조금 더 값지려면, 기증할 수 있는 상태라면 기증하겠다"는 가족분들에게 큰 감동을 받습니다. 흔히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기증자 가족을 만나는 매 케이스가 에피소드에요. 힘든 과정을 넘어 이식이 이뤄지고, 소아 때 이식을 받은 수혜자가 성인이 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살아가는 그 자체가 감사하죠.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희 가족이죠. 가족들과 있다가도 일이 있으면 병원으로 가야 하는 것이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입니다. 한밤중에도 기증과 이식이 이뤄질 수 있으니까요. 식구들이 이해해 주지 못했다면 더 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도 심리적으로 지지가 됩니다. 같은 병원 동료, 이 길을 같이 걷고 있는 코디네이터 모임 등은 제가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될 때 이를 바로 세우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흔들리고 위축될 때 신앙의 힘으로도 이겨내고 있습니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에게 필요한 능력과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우선은 주변을 두루 수용하고 협조해 나가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코디네이터는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목표하는 부분으로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특히 이식 과정 자체가 여러 부서와 연계할 일이 많아요. 협조를 잘 이끌어낼 능력을 갖추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풀어나갈 사람이 적격이라고 생각해요.
스트레스 크지만 만족감·성취감은 그 이상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과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요.
▲현실적으로 육체적, 심리적으로 스트레스가 크긴 합니다. 집에 간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잠도 덜 자고, 연락도 많이 해야 하지만, 잘 마무리되면 그 만족감과 성취감이 일을 하게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자부심을 갖고 성실하게 꾸준히 일한다면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역할을 무난히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만약 제가 잘 아는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다고 한다면 공감하고 응원할 거예요.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나에게 있어 장기이식이란?
▲힘이 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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