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건반과 흰 건반 사이에 '차별'은 없다

한겨레 2022. 5. 14. 08: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스티비 원더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
<한겨레> 자료사진

참 멋지다고 생각하는 책 제목이 있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동인문학상을 받은 마지막 소설집이다. 필자는 뭔가를 쓰고 말하는 일을 오래 해오다 보니 아차 싶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 그 제목을 떠올리곤 했다.

“내가 왜 그렇게 썼지? 내가 왜 그렇게 말했지? 아, 나는 너무 오래 떠들거나 써왔구나!”

그렇게 탄식했던 순간을 오늘 칼럼에 담아보려 한다.

라디오에서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틀고 이런 말을 얹은 적이 있었다. “스티비 원더는 앞을 못 보는 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의 노래는 오히려 우리 내면의 눈을 틔워준다”고. “육체의 장애는 위대한 재능과 불굴의 의지를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지 못한다”고! 그때는 꽤 그럴싸한 말을 한 줄 알았다.

망각의 늪에서 썩어가고 있던 그 말이 다시 기억의 표면으로 떠오른 건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투쟁 때문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필두로 전장연의 투쟁 방식을 비판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첨예하게 대립했던 양쪽의 주장 모두 귀 기울일 논리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의 발언은 논리를 떠나 그저 불편했다. 지하철 운행을 늦추는 전장연 시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본인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국민도 똑같은 불편을 겪어보라는 그런 시위 방식은 곤란합니다. 좀 더 품격 있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는 게 타당합니다.”

비슷한 맥락의 다른 주장을 들을 때는 논리를 따져보려 했는데 왜 이 발언은 듣자마자 불편했을까? 고민 끝에 찾은 이유는 ‘품격’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의 이동권은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품격을 지키라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물론 전장연도 좀 더 효과적인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게 무려 품격을 요구할 순 없다. 차별 철폐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요구하는 건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바로 그 발언 때문에, 스티비 원더의 노래 뒤에 필자가 붙였던 말이 떠올랐다.

“육체의 장애는 위대한 재능과 불굴의 의지를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지 못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시각장애는 스티비 원더의 재능과 의지를 가로막지 못했고,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흥겹게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최고의 팝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그는 ‘레이틀리’ 같은 애절한 발라드도 잘 불렀고 펑크 리듬을 기막히게 살린 노래도 많이 불렀다. ‘이즌트 쉬 러블리’ ‘아이 저스트 콜 투 세이 아이 러브 유’ 같은 불멸의 히트곡도 남겼다. 그가 남다른 재능과 의지의 소유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의 말은 극소수만을 위한 입바른 칭찬일 뿐 대다수의 장애인에게는 가혹한 말이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을 넘어 재능과 능력이 있는 장애인과 그렇지 못한 장애인을 차별하는 말이었다. 부끄러워 몇번이나 탄식했다. “아, 나는 너무 오래 떠들거나 써왔구나!”

며칠 뒤인 5월17일은 국제 동성애자 및 성전환자 차별 반대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동성애를 질병 분류 목록에서 제외한 1990년 5월17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 말인즉슨, 그날 이전에는 동성애를 공식 질병으로 분류했고 동성애자를 불결한 병을 옮기는 환자쯤으로 취급했다는 뜻이다. 차별의 역사를 좀 더 들여다보면,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꽤 많은 나라에서 여성은 참정권이 없었다. 미국의 모든 주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건 1984년이 되어서다. 지금도 차별의 역사는 계속된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15년 전에 처음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이래 새로 출범하는 국회마다 발의만 하고 제정은 미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은 매우 다양하고 격렬하다. 대체로 찬성하는 필자조차도 몇몇 조항, 특히 헌법을 비롯한 기존의 법체계와 충돌할 수 있는 조항들은 우려된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더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검찰개혁에 쏟아부은 정치적 에너지의 반만큼이라도, 아니 반의반만큼이라도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에 할애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훨씬 정교한 형태의 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장애인이면서 흑인이기도 했던 스티비 원더는 인종차별을 금지하자는 목소리도 높이곤 했다.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와 함께 부른 노래 ‘에보니 앤드 아이보리’의 가사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검은건반과 흰건반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죠. 내 피아노에서 나란히 말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요?’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