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에 모인 이들, 그림책으로 하나되어 "안녕!"

김지은 입력 2022. 5. 1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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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타 국제도서전 역사는 상당히 길다. 35년째인데 방문객이 매년 평균 50만명에 이른다. 이 나라 사람들과 우리는 60년 전 외교관계를 맺었고 올해는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초청되었다.
4월20일(현지 시각) ‘2022 콜롬비아 보고타 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이 전시된 책을 둘러보고 있다. ⓒAFP PHOTO

보고타 국제도서전(Feria Internacional del Libro de Bogotá·FILBo) 참석을 위해 엘도라도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고도 3152m의 몬세라테산이었다. 콜롬비아 보고타는 그 아래 해발 2640m의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도시다. 이 나라 사람들과 우리는 60년 전 외교관계를 맺었고 올해는 그동안의 우의를 기념해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초청되었다.

남아메리카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이 나라는 거의 모든 기후대를 포함하고 있다. 생명 다양성 세계 2위이며 나비의 다양성은 1위다. 출장을 준비하다가 나는 책과 나비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비와 책은 둘 다 크기가 크지 않고, 국경을 넘어서 날아가며, 작고 아름다운 것부터 아득히 무서운 것까지 수없이 종류가 많다는 유사성이 있다. 어쩌면 누군가의 영혼을 담는다는 점에서 나비는 한 권의 책이다. 이번 출장은 나비의 나라에 우리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나비들을 보여주러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고타 국제도서전 역사는 상당히 길다. 35년째인데 방문객이 매년 평균 50만명에 이른다. 아동청소년 방문객이 많고 기간은 열흘이나 된다. 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한국 그림책관에서 일했다. 올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를 비롯해서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자인 박연철·정진호 작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김효은 작가, 한국 그림책 역사의 증인이기도 한 김서정 평론가가 함께 왔다.

우리 작가와 평론가들은 현지 작가와 날마다 대담을 진행하고 현지 독자와 워크숍을 열며 보고타 곳곳의 문화적 거점을 방문해 어린이책 전문가·작가·독자들을 만났다. 은희경 작가는 이번 도서전 개막식 연설에서 “책은 반문명과 폭력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주는 강력한 친구”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나이 들 때까지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세대의 책인 그림책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 그림책은 최근 백희나 작가의 알마(ALMA)상 수상과 이수지 작가의 안데르센(HCAA)상 수상을 계기로 각국의 출판 관계자들에게 주목을 받는 중이다. 이번 도서전에서 대담을 통해 만난 자베리아나 대학의 훌리아나 카파소는 “이수지 작가의 안데르센상 수상은 하나도 놀랍지 않다. 그의 그림책은 완전한 격차를 두고 앞서 나가고 있었다. 이수지를 비롯한 한국 그림책의 인상적인 행보가 우리의 큰 관심이다”라고 격찬했다.

한국 그림책의 해외 진출을 돕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그림책관은 작년부터 전시 기획, 원고 집필, 디자인과 설치, 통번역 등의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전문가들이 분주히 준비한 끝에 사상 최대의 면적(약 3000㎡)으로 이곳 주빈국관 안에 개관했다. 열기는 예상보다 대단했다. 북토크와 워크숍은 연일 만석이었고 남녀노소가 우리 그림책에 관심을 집중했다. 주말에 한국관에 들어오려면 한 시간가량 긴 줄을 서야 했고 그림책관과 전통놀이관, 멕시코 문화원의 한복 체험관이 가장 붐볐다.

우리 그림책 이미지가 담긴 종이 왕관을 쓴 독자들이 “안녕!”을 외치며 몰려들었다. 단지 호기심 차원의 열광이 아니었다. 빠짐없이 수준 높은 질문을 던졌고 책과 작가에 대한 정중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해마다 도서전에 참석하는 교육 환경에서 자란 것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한국 그림책의 행보는 세계의 큰 관심

4월22일 이수지 작가(오른쪽)가 콜롬비아 작가 클라우디아 루에다와 북토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제공

4월22일에 비르힐리오 바르코 공공도서관에서 이수지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다. 1만6092m²의 면적에 물과 벽돌과 나무로 만든 이 아름다운 도서관은 보고타시를 문화적으로 상징하는 가장 영예로운 장소다. 사회를 맡은 클라우디아 루에다는 안데르센상에 두 번이나 콜롬비아 측 후보로 올랐던 이곳의 대표 작가다. 이 도서관에 이수지 작가를 초대한 ‘비블리오 레드’는 130개가 넘는 보고타시 공공도서관을 디지털로 연결하는 연합체인데 팬데믹 속에서도 단단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 현대적인 장소에서 우리는 책을 사랑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을 만났다.

클라우디아 루에다는 이수지 작가에게 “어린이는 환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왜 어른은 그것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수지 작가는 “어른들이 그 점에서 어린이에게 한 걸음 뒤져 있는 것은 맞지만, 어른은 환상을 즐기는 어린이를 보는 것과 동시에 어른으로서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라고 대답하면서 어린이와 동행하는 어른의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했다.

토론을 경청하던 한 교사는 자신이 동료 교사들과 〈파도야 놀자(La ola)〉를 읽고 만든 노래를 직접 들려주기도 했다. 학생들과 교실에서 책을 읽은 뒤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북토크 마지막 순서는 400석 규모의 공연장 불을 끈 뒤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비발디의 음악과 함께 〈여름이 온다〉를 영상으로 감상하는 것이었다.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경이로운 공감의 경험을 안겨주는 시간이었다.

보고타 시민들의 예술적 경험 공동체 ‘카사틴타(Casatinta)’에 초대받은 정진호·김효은 작가는 그들과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것이야말로 그림책이 만드는 교감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연철 작가의 마술 같은 워크숍은 콜롬비아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외계인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실제 그는 〈안녕! 외계인〉이라는 그림책을 펴냈다.

이번 보고타 국제도서전을 참관하면서 우리가 책을 같이 읽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세계는 더 나빠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타의 여성 독자들은 수신지 작가에게 고부간의 관계를 그린 〈며느라기〉와 ‘낙태죄 합헌’ 이후 가상의 대한민국을 그린 〈곤〉의 내용을 듣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자신들을 이해해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수신지 작가는 콜롬비아 여성들에게 낙태 비범죄화에 대해 축하를 보냈다. 책은 이렇게 서로를 연결하고 더 잘 이해하게 만든다. 오는 6월1일 개막하는 2022 서울국제도서전의 슬로건은 ‘반걸음’이며 콜롬비아는 이번 도서전의 주빈국이다. 우리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만나는 사이이지만, 책으로 만나는 순간을 통해 또 이렇게 반걸음 더 나아갔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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