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118년 전 러일전쟁 때처럼..앵글로색슨 동맹과 손잡는 일본

정열 2022. 5. 1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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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호주 등 오커스 회원국과 잇따라 군사협력 강화 행보
중·러 위협에 맞서 영·미와 손잡았던 118년 전 역사 데자뷔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군사 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앵글로색슨 동맹국과의 안보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 존슨 총리 만난 기시다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118년 전 패권국이던 앵글로색슨 동맹과의 안보협력 체제를 통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략의 데자뷔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결성으로 한층 공고해진 앵글로색슨 동맹 역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안보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일본을 적극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英·日 총리 2시간 넘게 정상회담…"유럽대서양·인도태평양 안보는 불가분"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영국을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무려 2시간 넘게 정상회담을 했다.

후쿠시마산 팝콘을 먹으며 진행된 이날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사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원활화 협정'(RAA)에 합의했다.

원활화 협정은 양국 군대가 연합 훈련 등의 목적으로 상대국을 방문할 때 무기를 반입하는 절차 등을 간소화하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1월 호주와도 이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호주 총리와 화상회담하는 기시다 일본 총리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로써 일본은 오커스 회원국인 미국, 영국, 호주 등 앵글로색슨 3개국과 모두 RA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일본은 2004년 미국과 RAA를 체결하고 올해 1월 호주와도 이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며 "영국은 일본이 RAA를 공식 체결하는 세 번째 국가이며, 이를 계기로 앵글로색슨 국가들과의 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영일 정상은 회담 뒤 발표한 성명에서 "유럽대서양과 인도태평양의 안보는 분리할 수 없고 무력에 의한 현상 유지의 통일적 변화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을 재확인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결정 후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 전략을 발표한 존슨 행정부는 지난해 9월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을 본거지인 영국 포츠머스에서 2만㎞ 이상 떨어진 일본 요코스카(橫須賀)항으로 보내 일본 해상자위대와 합동 훈련을 한 바 있다.

영국 항모전단은 요코스카항에서 나흘간 기항하며 오키나와 근해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퍼시픽 크라운 21'로 명명된 해상연합훈련을 했다. 여기에는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함대도 참가했다.

대만해협에서 중국의 위협적 군사 활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영국, 일본의 항모전단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시행한 첫 연합 군사훈련이었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이달 11일 일본과 오커스의 밀착에 대해 "일본은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이며, 호주와는 준동맹, 영국과는 새로운 형태의 동맹 관계를 추진 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의 앵글로색슨 동맹 밀착은 지난 4월 일본을 공식 방문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기시다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일본-뉴질랜드 정상은 기밀정보를 제한 없이 공유하기로 하는 내용의 협상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뉴질랜드가 80년 역사의 앵글로색슨 정보동맹체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회원국이란 사실을 감안할 때 이 협상이 체결되면 일본은 그동안 '파이브 아이스' 회원국끼리만 공유해오던 기밀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재팬타임스는 "뉴질랜드와의 합의는 일본을 (앵글로색슨 정보동맹체) '파이브 아이스' 정보 동맹에 더욱 밀착하게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18년 전 러일전쟁 데자뷔?…"오커스에 日 합류 '조커스' 결성 가능성"

글로벌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앵글로색슨 동맹국과의 급속한 밀착은 100여년 전 일본이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면서 구사했던 전략을 연상시킨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중국, 러시아와 경쟁하던 일본은 근공원교(近功遠交) 전략에 따라 당시 패권국이던 영국과 동맹을 맺는 한편 떠오르는 신흥 강국이던 미국과도 손을 잡았다.

가까운 대륙 국가와 맞서기 위해 멀리 떨어진 해양 국가와 손을 잡는다는 일본의 외교안보 전략은 1904년 발생한 러일전쟁 승리의 결정적 동인이 됐다.

영국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열세로 평가받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제독의 일본 해군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대파할 수 있었던 데는 영국의 역할이 컸다.

발틱함대는 수에즈운하를 장악하고 있던 영국이 항로를 열어주지 않는 바람에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동해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일본 해군과 대결할 수밖에 없었다.

1904년 4월과 1905년 5월 사이에 영국과 미국이 4차례에 걸쳐 일본에 제공한 4억1천만 달러의 차관도 일본 승리의 발판이었다. 차관의 약 40%가 일본의 전비로 충당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포츠머스 조약 등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과 요동반도의 조차권 등을 인정받았다.

영국과 미국의 직·간접적 지원으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면서 동아시아의 맹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20세기 초 발생한 러일전쟁으로부터 118년이 지난 오늘날 동아시아 정세도 당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만에 또다시 군사 대국화의 문을 열어젖히려 하는 일본은 대만 정복을 통해 남중국해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냉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있는 러시아와는 쿠릴 열도(일본명 북방영토)의 영유권을 두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의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자주권을 지키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려는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 야욕을 꺾으려는 앵글로색슨 동맹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일본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주창으로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협의체) 결성에 앞장서고, 오커스 회원국인 앵글로색슨 3개국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디플로맷은 "비록 워싱턴과 도쿄는 부인했지만 미일 군사동맹의 존재와 일본-호주간 준동맹 관계, 새로운 형태의 영일동맹 체결 가능성은 많은 안보 분석가와 전략가들에게 일본이 오커스에 합류해 이른바 '조커스'(JAUKUS)를 결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국제적 위기 상황에서 유엔과 G20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신 영일동맹으로 묘사되는 영국과 일본의 군사적 밀착은 향후 일본의 오커스 합류와 영국의 쿼드 참여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passi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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