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기술이 아이를 공격한다.. IQ보다 DQ 디지털 지능 키워야"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2022. 5. 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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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Q 디지털 지능' 글로벌 창시자 박유현 박사
'나영이' 사진에 아동 성매매 광고 붙자, 충격
디지털 팬데믹에 빠진 아이들 구하려 DQ 만들어
똑똑한 IQ형 인간에서 현명한 DQ형 인간으로
기술기업은 악당?..먼저 만들고 용서는 나중에
스마트폰은 언제부터?.. DQ 점수부터 측정
IQ, EQ 이후의 지능 패러다임 DQ를 만든 수리통계학자 박유현 박사. 'DQ 디지털 지능'을 출간했다./사진=박상훈 기자

“왜 아이들에게 기계와 경쟁하라고 가르칠까? 기계와 인간 존재 방식이 다르다. 기계는 일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DQ 디지털 지능’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끝나가지만, 디지털 팬데믹은 이제 시작이다. 집집마다 게임에 빠진 아이와 부모가 벌이는 언쟁의 수위가 높아지고, 아이들은 골방에서 온라인 괴롭힘의 가해자, 피해자 혹은 방관자가 되어간다.

하버드대 수리통계학 박사이자 DQ연구소 대표인 박유현의 연구에 따르면, 8~12세 아이 중 60%가 폭력 음란 영상, 게임, 소셜미디어 과몰입, 위험한 접촉,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 중 한 가지를 경험했다. 17세까지 포함하면 무려 78%의 아이들이 사이버 리스크에 노출된 상태.

이대로 디지털 윤리에 대한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손 놓고 아이들을 바라볼 것인가.

이 답 없는 디지털 팬데믹에서 빠져나올 출구 전략을 담은 새로운 언어가 ‘DQ(Digital Intelligence Quotient)’다. DQ는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이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최근에 출간된 ‘DQ 디지털 지능’은 DQ 글로벌 창시자 박유현 박사가 영국 펭귄 북스에서 낸 책을 출판사 김영사가 국내에 번역 출간한 것이다. 폭주하는 기술에 맞서는 담대한 인문학적 질문부터 국제 사회에 DQ가 천명되는 드라마틱한 여정, 실제적인 교육 방향까지 모든 것이 사려 깊은 톤으로 기술되어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술과 아이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당신의 생각하는 능력은 괜찮은가? 스마트폰을 가질 준비가 되었는가?’

지난 10여 년간 이 시대의 선명한 질문을 품고 솔루션을 찾아낸 소셜 임팩트 리더 박유현을 만났다. 학자의 단단함과 사회운동가의 활력이 흘러넘쳐서,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은 기운이 전해졌다. 그녀는 스마트폰은 자녀의 DQ점수가 100점 이상일 때 주어야 하며, 기계는 인간보다 똑똑하고 친절하니 기계와 경쟁할 생각은 말라고 충고했다.

아이들에게 코딩이 아니라 디지털 시민 의식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박유현 박사./사진=박상훈 기자

-IQ와 EQ가 가고 이제 DQ가 왔다고요. 무슨 뜻인가요? 기계와 경쟁하라는 협박에는 다들 진절머리가 난 상태입니다만(웃음).

“(미소 지으며)어느 날 문득 공항에서 컨베이어벨트가 지나가는 걸 보고 깨달았죠. 산업의 구조가 바뀔 때마다 인간은 보디(body), 마인드(mind), 스피릿(spirit)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능력을 요구받아 왔다는 걸.

1, 2차 산업 혁명 때까지는 보디 스킬(Body skill)로 농부가 되고 공장의 노동자가 됐죠. 그 흐름에 맞춰 공교육이 생겼고, 머리 쓰는 IQ가 나왔습니다. 3차 정보화 혁명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도심의 오피스에 모여 컴퓨터로 일하면서, 감성지능 EQ가 중요해졌어요.

그때까지 보디 스킬(body Skill)을 갖춘 똑똑한 아이, 마인드 스킬(mind skill)을 갖춘 친절한 아이가 교육 목표였고 인재였어요. 100년 주기로 이런 변화가 있었는데, 갑자기 얼마 전에(50년 만에) AI 기반의 4차 혁명이 일어난 거예요. 기계가 똑똑함과 친절함에서 인간을 앞질러 버렸어요.

일례로 챗봇을 보세요. 사람보다 스마트하고 나이스하니, 아이도 노인도 로봇을 좋아해요. 심지어 AI는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려요. 그러면 남은 게 뭡니까? 보디, 마인드 그다음은? 스피릿이죠. 그 스피릿을 이야기하는 게 DQ입니다.”

-스피릿이 어떻게 지능으로 표현될 수 있나요?

“스피릿은 인류 공통의 가치 체계(Universal moral value), 윤리로 표현됩니다. 자제력을 갖춘 지혜로운 인간이 DQ의 교육 목표지요.”

-바야흐로 윤리가 대세인 시대로군요! 정확하게 DQ가 뭔가요?

“DQ는 윤리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능력입니다. 테크니컬 스킬과 디지털 시민 윤리, 두 가지를 통합하는 능력이죠. DQ는 UN인권의 가장 기본 원칙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에서 시작했어요. 인간 존중의 시작은 나 자신이고, 그래서 DQ의 출발은 내 시간과 환경에 대한 존중이에요.”

-최근 들어 디지털 역량이 전 세계 어젠다가 되면서, 코딩 교육이 유행입니다만.

“코딩 기술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사는 법 자체를 배워야 합니다. 디지털이 곧 라이프인 시대잖아요. 그래서 DQ의 첫 번째 목적은 윤리적인 디지털 시민 되기이고, 두 번째는 디지털 창의력, 세 번째는 혁신 기업가 정신이에요.”

가장 중요한 디지털 시민 의식이 무너지면서 모든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게임 중독, 사이버 불링, 사생활 침해, 가짜 뉴스… 아이들에겐 당장 디지털 안전 교육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이들 스스로 사이버 위험을 분별하고 디지털 역량과 윤리를 갖도록 DQ 프로그램을 설계했다./사진=박상훈 기자

박유현은 하버드대학교에서 바이오 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그룹에서 일하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공해 세상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사회 운동을 시작했다. 2008년, 우연히 본 충격적인 뉴스 페이지가 계기였다.

-어떤 일이 있었지요?

“당시 저는 임신 중이라 재택근무를 하면서 BCG 애널리스트로 미디어 동향을 분석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소아성애자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이’의 사진 밑에 미성년 음란광고가 붙은 걸 본 거예요. “열여섯 살 여자아이가 당신을 침대에 초대합니다”라는…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죠. 눈물과 각성이 폭풍처럼 일어났습니다.”

-동기는 역시 아이들이었군요!

“네. 너무 미안했어요. 그런데 나영이 사진과 미성년 포르노 광고는 재수 없이 같이 걸린 게 아니었어요. 2007~2008년은 IT업계의 티핑포인트였죠.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나오고, 모든 돈이 IT로 모이고 있었어요. 미디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 찾은 구조가 자극적인 콘텐츠와 광고의 결합이었죠. 그때 예감했어요. 인폴루션(infollution 정보 공해)은 우리나라의 8살 여자아이만의 희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글로벌한 문제라는 걸.”

문제를 만든 건 우리 세대지만, 당장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기술 기업에 대한 법적 제재는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서서히 공론화되는 중이다.

-전 세계 부모들은 지금 디지털 기기 사용을 두고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부모도 아이도 도움이 절실하죠.

“교육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아이들은 이미 유치원 이전부터 디지털에 들어가요. 부모가 쫓아다니면서 게임과 유튜브를 제재할 수 없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조절해야 합니다. 저도 제 아들을 위해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안전 교육과 코딩 교육을 담을 큰 그릇이 필요했어요.”

박유현 박사가 최초로 만든 디지털 지능 DQ는 디지털 시민 역량을 8가지 핵심 능력으로 구분하고 있다. 1 온라인 인격 형성 능력 2 디지털 이용 시간 조절 능력 3 사이버 폭력 대처 능력 4 사이버 보안 능력 5 디지털 공감 능력 6 온라인 정보 선별 능력 7 디지털 발자국 관리 능력 8 온라인 사생활 관리능력 등이 그것이다.

DQ와 더불어 초등학생을 위한 디지털 안전 교육 프로그램인 DQ월드는 이미 8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아이들 교육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천 송도 지역에서 파일럿으로 선보인 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8~10시간 분량으로 구성된 이 디지털 안전 프로그램이 국내 정규교육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정책, 커리큘럼, 교사 교육 등의 이유로 최소 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80개국 아이들에게 디지털 시민의식을 교육한 박유현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적 사업가'로 불린다./사진=박상훈 기자

-누가 봐도 시급한 디지털 안전교육이 왜 당장 초등 필수 교육이 안 되나요?

“제가 2014년 OECD 미래 교육 포럼에서 ‘지구상의 모든 아이가 디지털 문해력을 배워야 한다’는 목표를 제안했어요. 그로부터 7년 뒤인 2021년에야 한국 교육 개정안에 ‘디지털 소양 능력’이라는 문구가 포함됐죠.

정말 기뻤습니다(웃음). 7년 만에 열매를 맺은 것도 빠른 거죠. 개혁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느려요.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좀 더 진척되길 바랄 뿐이죠.”

-안타깝게도 코로나 팬데믹을 겪는 동안 디지털 팬데믹도 심각해졌습니다. 실제 사이버 리스크 데이터는 좀 어떻습니까?

“29개국의 통계를 들여다봤어요. 8~12세 아이들 60%가 사이버 리스크를 경험한 걸로 나와요. 10명 중 6명 정도가 게임 과몰입, 사이버불링(온라인상의 괴롭힘), 사생활 침해, 폭력음란물, 혐오 뉴스 등에 노출됐어요. 그 수치는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를 가리지 않아요. 비슷하게 나옵니다.

바이러스가 몸을 헤집어 놓는 사이에 디지털 바이러스가 우리 아이들을 무차별로 공격한 거죠. 18세까지 포함하면 72%가 사이버 리스크를 경험한 걸로 나오는데, 대부분 아이들이 한 번 이상은 위험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안전과 능력을 동시에 성취하기 위해 ‘표준’을 만들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DQ는 2020년 IEEE 표준 협회에서 디지털 역량 및 디지털 리터러시의 국제 표준으로 공인되었다.

-글로벌 표준을 여러 번 강조하더군요. 표준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디지털로 가는 순간 글로벌 시민이잖아요. 이제 아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전에 디지털 시민이에요. 그러면 국제자격증처럼 전 세계에 통용되는 스탠더드가 있어야 해요. KB 뱅크에서 싱가포르 은행으로 돈을 보내려면 국제 통용 코드인 스위프트 코드를 쓰듯이요.

이제 교육과 채용 분야에서도 대학 졸업장은 잘 안 봅니다. ‘어떤 스킬을 가졌느냐’가 중요하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격증을 보고 전 세계에서 인재를 뽑아요. 그런 맥락에서 DQ 시스템이 글로벌 표준으로 인정받는 건 중요해요. 제가 프레임을 짠 DQ가 국제 인증 테스트이자 자격증의 베이스가 되는 거죠. 각 나라의 디지털 안전과 능력 테스트가 이걸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DQ와 함께 만든 COSI(실시간 아동온라인 안전지수)도 앞으로 중요하게 쓰일 겁니다. G20에 디지털 경제 지수를 평가하는 데 COSI를 반영하라고 제안했어요. 그러면 COSI가 높은 나라가 진짜 디지털 역량을 가진 스마트 국가로 인정받는 거죠.”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DQ 디지털 시민의식 점수가 100점 이상일 때 주어야 한다.

-각국의 반응은 어떤가요?

“반반이에요. 반은 반기고, 반은 반대해요.”

-쟁점이 뭐죠?

“디지털 경제 개념을 어떻게 보느냐예요. 반대하는 쪽은 디지털 경제를 플랫폼 경제로 정의해요. 기술 범위로만 한정하는 거죠. 그런데 플랫폼의 광고 기반이 바로 우리의 개인정보고 삶 그 자체잖아요. 우리의 라이프를 자원으로 쓰고 있는 거라면, 디지털 경제를 ‘디지털 소사이어티’로 넓게 사고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의 웰빙과 안전을 기본으로 하는 지속 가능 시스템이 나올 수 있죠.

문제는 정치인과 기업이 아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정치인은 가짜 뉴스가 선거에 유리하고, 기업은 사생활과 개인 정보가 필요하죠. 그런데 아이들은 선거권도 없고, 구매력도 없으니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요.”

-그래서 더욱 ‘스탠더드’가 중요하군요!

“그렇죠. ‘이건 기본이다!’가 되면, 정부도 기업도 따를 수밖에 없거든요. 알고리즘 디자인 단계에서 윤리적으로 안전한 설계가 되도록 DQ와 COSI(아동온라인 안전지수)가 입구에서 유도하는 거죠. ‘아이들이 보호받을 근거’가 되는 겁니다.”

-최근에 저는 ‘무엇이 옳은가’를 쓴 미래학자 후안 엔리케스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미래 세대가 우리에게 묻는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강한 환기 효과를 일으키며 ‘기술 발전으로 윤리의 골대가 변한다’고 주장했어요. IT 기술이 빈부 격차와 가짜 뉴스로 사회를 분열시키고, 우리 모두를 디지털 감옥에 가뒀다고 거침없이 비난했지만, 유전자 편집 등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허용적이라 놀랐습니다. 당신은 기술의 윤리 문제를 들고나왔지만, 학자들의 유보적 태도와는 달리, 아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디지털 윤리’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추진력과 포용력이 남다른 건 당신이 학자보다 소셜 임팩트 리더의 위치로 행동하기 때문이겠지요. 유엔, G20, OECD 등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구글, 틱톡, 싱텔 등 ICT 기업과 두루 일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느낀 건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거였어요.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거죠. 나는 영웅, 반대쪽은 악당으로 몰아붙여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가자 디지털 팬데믹이 왔다.

-후안 엔리케스도 그러더군요. 이 세계엔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건전한 사람들이 99%라고요.

“맞아요. 소셜미디어 기업, 게임회사 사람들은 악하다? 이런 관점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개척하는 거죠.

한때 PC방 쿠폰 발행 등 게임 회사의 비윤리적인 마케팅이 문제가 된 적이 있어요. 그 일로 2011년에 ‘신데렐라법’이 발효가 됐어요. 청소년의 심야 게임을 제한한다는 내용인데, 곧 유명무실화 됐죠

게임 셧다운하면 아이들이 엄마 계정으로 들어가서, 30~40대 여성 계정들이 폭발 지경이 됐거든요. 제어가 안 되면 갈등은 더 심해집니다. 오죽하면 중국은 아예 얼굴 인식으로 청소년 게임을 원천 봉쇄했잖아요. 그것도 심각한 인권침해입니다.”

-그럼 아이들의 게임 과몰입은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합니까?

“무조건 못하게 할 순 없어요. 근본적인 절제력을 가르쳐야죠. 게임에는 중독 메커니즘이 들어가 있으니 부모가 도와줘야 합니다. ‘계속하면 정신과 몸에 왜 나쁜가’를 납득하도록 대화하고 가르쳐야죠. 그런 과정 없이 줬다가 뺏었다, 전원 꺼버리면 반발심만 늘어나요. 생각해보세요. 좋아하는 드라마 보는 데 누가 와서 꺼버리면, 기분 나쁘잖아요.

안타깝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제까지 디지털이 보모였어요. 뱃속에서부터 뇌가 즉각적인 보상에 반응하도록 단련됐죠. 부모님들이 먼저 그 메커니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절제력과 균형 잡힌 기술 사용을 DQ 프로그램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8~12살까지가 아이를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그 나이 때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 옳고 그름의 분별이 생겨요. 그래서 8~12살에 노출되는 미디어 정도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됩니다. DQ 글로벌 표준도 1등이 되는 게 아니라 기준선을 정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8~12살에 노출되는 미디어 정도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된다.

-표준과 기준의 중요성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요?

“표준은 모든 나라에서 쓸 수 있는 포괄적 가이드라인이고요. 동시에 기준은 이 선 밑으로 단 한 명의 아이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최전선의 절박감이죠. 적어도 이 선 위에서라면 모든 아이가 AI 시대를 누리면서 뛰고 날아오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코딩은 선택해서 배워도 되지만, 균형 잡힌 기술 사용, 디지털 시민의식 교육은 ‘의무 교육’이 돼야 해요. 디지털 세계에서 자기 조절력, 윤리 기준을 배우지 못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위험합니다.”

-교육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교육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생각하는 힘이죠. 글자로 읽은 것을 상상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힘!

집중한다는 말을 영어로 ‘Pay attention’이라고 하잖아요. 관심은 지불하는 겁니다. 책을 읽는 것도 관심을 지불하는 거죠.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에요. 지불 과정이 있어야 지식의 사유화가 일어납니다. 그게 생각하는 힘이죠.

그런데 디지털 영상은 ‘페이 어텐션’을 요구하지 않아요. 쉬운 시각 정보가 일방적으로 박혀버리죠. 알고리즘에 따라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정보가 줄줄이 자동 입력되고, 의도하지 않아도 가짜 뉴스, 자극적 콘텐츠의 그물망 안에 머물러요.”

-그럴 땐 왠지 내가 파블로프의 개가 되는 느낌입니다. 반사 신경만 남은 것 같죠. 어느 순간엔 IQ도 EQ도 작동 불능이 된 듯싶어요.

“맞습니다. 어텐션(attention)은 정보를 잡아 오는 능력이에요. 주체적인 능력이죠. 그게 없으면 무늬만 인간인 형태로 끌려다니는 거죠.”

기술은 정말로 가치중립적인가?

-DQ를 교육하면서 본 각 나라 아이들의 구체적인 상태는 어떤가요?

“일단 저개발국가 아이들은 부모 스마트폰으로 필터 없이 들어가요. 폭력 영상, 위험한 접촉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됩니다. 인도에서 DQ 교육할 때 알게 된 사실인데요. 11살 여자 아이가 친구들의 포르노 누드를 찍어서 아동 성매매 사이트에 팔았어요. 동급생들과 돈도 나눠 가졌죠. 수익도 내고 분배까지 했으니, 디지털 스킬도 창업가 정신도 훌륭한 아이예요. 윤리만 빼면!

그 아이는 DQ를 배우기 전까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 했다고 해요. 죄의식이 없었던 거죠. 다행히 골든타임에서 구조해서 영혼이 망가지는 걸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디지털 성 착취 ‘N번방’ 사건이 생각나는군요.

“텔레그램은 외국 플랫폼이라 제재도 힘들죠. 그건 교육 문제보다 인프라 문제로 해결해야 해요. 정책이 바뀌어야죠.”

-종종 기술 기업이 신제품을 발표하는 현장에 초대돼 파티의 흥을 깨는 역할을 한다고요. ‘기술과 아이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고 질문하면서. 저도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뇌가 가상과 현실 세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고, 끝없는 보상 체계로 충동 조절이 안 되는 이 상황을 기술 개발자들과 기업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미소 지으며)VR이나 AR 기업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현실을 잘 아는 프로들입니다. 테크놀러지 회사들도 생명의 존귀함과 윤리를 이야기하죠. 하지만 새로운 노다지 마켓이 눈앞에 있으면 브레이크를 걸기 힘들어요. 경쟁자들과 투자자들이 목을 조르는 상황에서,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위험을 계산할 여력이 없는 거죠.”

-’일단 만들고 용서는 나중에 구한다’는 실리콘밸리 구호가 그래서 생기는군요.

“그래서 저 같은 게이트키퍼가 필요한 거죠. 기술 산업은 정신없이 달리는 고속열차예요. 그 속도를 늦추는 윤리적 직언을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현실을 바꿀 힘이 있는 분들, 정책 결정권자들이 옐로카드를 줘야 하는데, 당장 현실적으로 안 되면 교육으로 해야죠.

페이스북은 자극적인 콘텐츠가 청소년 자살 충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를 받고도 기업의 이윤을 위해 묵살했어요. 내부 고발자가 나서고 미국 정부가 문제 삼으니까, 위기를 모면하려고 사명을 메타로 바꿔버렸죠. 국내에서 게임 산업 규제하라고 ‘신데렐라법’이 나왔을 때도, 기업은 혁신 성장 프레임으로 뚫고 나갔어요.

저는 DQ가 그 모든 쫓고 쫓기는 기술 세상을 관통하는 축이 되기를 바라요. DQ를 기본 인권으로 가져가면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도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어요. 그들은 그들의 일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는 거죠.”

기술 산업은 정신없이 달리는 열차다.

-DQ 교육은 누가 1순위로 받아야 합니까?

“(미소 지으며)부모와 아이도 기업도 다 같이 받아야죠. 최근에는 기업의 최대 리스크가 소셜미디어 리스크와 데이터 유출 리스크잖아요. KT도 usb 하나 잃어버려서 고객 정보가 대거 유출됐었고요. 요즘엔 CEO의 소셜미디어 리스크로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죠. 일론 머스크는 자꾸 문제 일으키다가 결국 트위터를 사버렸잖아요(웃음).”

-가상 화폐, 가짜 뉴스 등등 IT 분야에서 연일 가슴 철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AI와 경쟁하기 위해 아이들 머리에 칩을 심어야 할 수도 있다고도 했는데, 이런 식의 자극적인 경고가 이이들의 미래에 도움이 됩니까?

“실리콘밸리에서 그런 연구를 많이 하는 걸로 압니다. 전혀 동의하지 않고요. 정말 기분 나쁩니다. 눈 나쁘면 안경 쓰듯이 머리 나쁘면 칩을 심는다는 건데요. 저는 그걸 ‘노예화’라고 봅니다. 인간의 프라이버시와 자유의지를 침해하면 그건 보조도구가 아니죠. 내 생각과 내 정보가 기계와 연결되면 그건 종속입니다.

‘엑스맨처럼 되겠다’고 머리에 칩을 심어 경쟁하고 ‘안 하면 바보가 되는’ 그런 세상이 우리가 정말 원하는 세상입니까? 그게 과연 인간을 위한 일일까요? 질문해야 합니다. 소수의 기술 전문가가 예측한 미래를 왜 우리 것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가 진짜 원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분명한 건 이 세계의 공통 윤리는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예요.”

-책에서 ‘기계는 일하기 위해서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문장에 감동했어요.

“맞아요. 인간은 기계보다 액셀보다 기능 면에서 떨어져요. 그러니 기계보다 경쟁적으로 똑똑해져야 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가 멍청해질 것을 걱정하지 말고 우리의 자유의지가 없어질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우리 존재의 목표가 효율적인 일꾼인가요? 아니잖아요. 인간은 생각하고 사랑하는 존재지요.”

-우리가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출 용기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다른 대안은 있습니까?

“기술은 은혜로운 신인 척하지만, 우리는 레고블록처럼 기술을 분해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이해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AI도 수학적 원리에 기반해서 사람이 만든 기계일 뿐이에요. 저도 통계학을 기반으로 DNA칩과 빅데이터를 연구했죠.

AI 툴을 블랙박스처럼 갖다 쓰기만 하면, 그걸 신처럼 모시게 돼요. 그냥 믿고 쓰지 말고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원리와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식당 주인이 식재료의 흐름을 알고 요리사를 고용하듯이요?

“그렇죠. 그러려면 사실 기초 교육이 중요해요.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분해와 재조립이 수월합니다. 깊은 기술은 수학과 물리학과 인문학에서 나옵니다.”

디지털 기술을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이용하는 능력을 이야기하는 책 'DQ 디지털 지능'.

그는 IQ가 높은 아이는 똑똑하고 EQ가 높은 아이는 다정하며 DQ가 높은 아이는 지혜롭다고 했다. 이 모든 열정적인 작업은 아이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출발했다. ‘DQ 디지털 지능’ 책은 ‘아이작과 케이트에게’라는 헌사로 시작한다.

-빠뜨릴 수 없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언제 스마트폰을 주는 게 적절한가요?

“DQ 점수가 글로벌 평균인 100점 이상은 돼야죠. 운전면허가 있어야 자동차 운전을 하잖아요. 같은 원리로 보면 돼요.”

참고로 일반인도 DQ 사이트(https://dqindex.org/ko/)를 방문하면 설문 리스트를 통해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참여해보니 MBTI 테스트보다 훨씬 간단했다. 놀랍게도 나의 DQ 점수는 94.14. 글로벌 평균인 100점 이하였다. 평소 미디어 노출 시간 조절, 디지털 발자국 등의 위험에 안일한 결과였다.

-실례지만 박사님 댁의 아이는 언제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했습니까?

“제 아들은 DQ점수가 115점이 된 13살에 스마트폰을 가졌어요. ‘그냥 안된다’보다 마땅히 알아야 할 건 알고 써야 한다고 설명했어요.”

-부모들은 아이가 스마트폰이 없으면 친구나 가족과 소통의 문제가 생길까 걱정합니다만.

“스마트폰 없다고 주눅 들면, 스마트폰이 있어도 주눅 들 일이 더 많아집니다. ‘그거 없어도 안 죽어’가 제 원칙이었어요. 무엇보다 아이와 대화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일단 저의 전제는 ‘나는 대단히 훌륭한 부모가 아니다’ 였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니, 아이도 받아들여야죠(웃음).

한 살 때부터 제가 아이에게 주입식으로 가르친 문장이 있어요. “나도 너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다른 엄마와 비교하지 말아라!”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친구 엄마는 스마트폰 사주는데 엄마는 왜 안 사줘?”가 성립이 안 돼요. 저처럼 하라는 건 아닙니다. 집안 문화에 맞게 원칙을 정하면 돼요.”

-지금 자녀의 디지털 자제력은 잘 유지되고 있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디지털 기기의 소유권은 아이가 아닌 부모에게 있다는 걸 확실히 했어요. 밤 10시 전에 스마트폰과 랩탑은 엄마에게 반납한다는 게 원칙이었죠. 소셜미디어를 보는 건 괜찮지만, 촬영해서 올리는 것은 금했습니다. 실제로 청소년들이 친구의 나체 사진을 올려서 구속되는 사건이 종종 생깁니다.

지금 제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인데, 작년에 제게 모든 기기를 반납하고 복싱에 전념 중입니다. 한동안 갈등도 있었지만 아이 스스로 조절법을 찾았어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달라더군요.”

"최소한 밥 먹을 때, 잠잘 때는 안 됩니다. 식탁과 침실에서만 디지털 기기를 치워도 변화가 생깁니다.”/사진=박상훈 기자

-마지막으로 부모와 아이가 어떻게 이 디지털 팬데믹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지 조언을 부탁합니다.

“부모들이 너무 자책하지 말았으면 해요. 저희가 이 문제로 자녀와 갈등하는 첫 세대잖아요. 세상 모든 부모가 지금 다 똑같이 어려워요. 중요한 건 아이와 대화를 통해서 신뢰를 쌓는 일입니다. 그러려면 부모가 먼저 힘을 가져야 해요. “디지털은 니들이 나보다 더 잘 알잖니?” 손 놓으시면 안 돼요. 아이들이 많이 쓸 뿐, 그 중독 메커니즘을 깊이 알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DQ는 처음이에요. 그러니 디지털 윤리와 조절법을 공부하면서 함께 방법을 찾아야죠. 각 가정에 맞는 미디어 룰을 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에요. 최소한 밥 먹을 때, 잠잘 때는 안 됩니다. 식탁과 침실에서만 디지털 기기를 치워도 변화가 생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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