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태의 뇌과학] 아이들에게 메타인지를 허하라

여론독자부 2022. 5.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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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뇌연구원 연구원
문제 외워 푸는 주입식 교육 벗어나
생각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선
느리지만 꾸준히 메타인지 길러줘야
그 과정에서 성적은 덤으로 따라와
[서울경제]

뇌 과학을 연구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둘 중 하나를 묻는다. “어떻게 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인지 기능, 그 가운데 학습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첫 번째 질문에 “꾸준한 유산소 운동이 뇌의 퇴행을 늦출 수 있습니다” 정도의 하나 마나 한 대답을 하곤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 떠들고도 남을 정도로 할 말이 많은데, 요약하면 이렇다. “공부를 억지로 시키면 시험 점수는 높아질 수도 있지만 생각할 줄 아는 아이를 기르기는 힘들겠죠. 생각할 줄 아는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느리지만 꾸준히 아이들의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길러줘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학교 성적은 덤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메타인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혼란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메타인지란 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thinking about thinking)을 의미한다. 왠지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우리 모두 일상에서 메타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의 말에 화가 날 때, 우리는 올라오는 분노의 느낌을 모니터링하고, 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주어진 상황에서 적절할지,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끊임없이 판단한다. 이 같은 예에서 보듯이 메타인지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인지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선택하는 과정을 포함하는데 최근의 많은 연구 결과들은 메타인지 능력이 사회적 성취, 삶의 만족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을 밝히고 있다.

메타인지는 무엇보다 두 가지 측면에서 학습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첫째, 학습 과정의 전략적 통제와 관련한 측면이다. 높은 메타인지 능력을 가진 학습자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떤 학습 전략을 사용해서 잘 알고 있는 부분을 확장하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할지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메타인지가 지식의 구조화를 촉진한다는 점이다. 우리 뇌는 두 종류의 보완적인 학습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나는 뇌 안쪽 해마(hippocampus)를 중심으로 한 빠르지만 망각에 약한 일화기억(시간·장소·상황 등에 관한 기억) 시스템, 또 하나는 신피질(neocortex)을 기반으로 한, 매우 느리지만 안정적인 학습을 가능케 하는 의미기억 시스템이 존재한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 ‘새가 나는 것’을 봤다고 가정하자. 아이의 뇌는 해당 경험을 일단 해마에 저장한다. 이후 ‘또 다른 새들이 나는 경험’들을 반복하면 뇌는 이들 유사 경험들 간의 공통적 정보를 추출하고 신피질로 전달해 ‘새는 난다’라는 구조적인 지식을 구축한다. 이러한 지식 추출 과정(기억 공고화)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데, 최근의 연구들은 주어진 정보를 신피질에 저장돼 있는 지식 체계와 비교·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구조적인 지식 체계가 신피질에 안착화되는 시간과 노력이 놀랍도록 빨라질 수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이 신피질에 안착된 구조적 지식 체계가 우리 사회가 그토록 강조하는 창의력의 생물학적 기반이라는 것 역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메타인지를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을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메타인지의 핵심은 다양한 전략의 시도와 실패, 그리고 깊은 숙고에 있다. 그러한 점에서 시험 문제를 무조건 ‘빠르고 정확하게’ 풀기 위해 정해진 문제 유형을 외우게 하고, 깊은 생각을 불가능하게 하는 고속 선행 학습을 강조하는 한국의 교육 상황, 특히 약탈적 사교육 시스템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효율적으로 아이들의 메타인지 능력을 조기에 제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려줄 것 없어 스스로 ‘개털 아비’라고 자책하는 필자 역시 아이들의 미래가 불안하다. 하지만 부모의 불안 때문에 아이들의 실질적인 삶의 경쟁력을 마모시키는 불행한 일은 이제 멈출 때가 됐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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