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승진 적체? 물꼬를 자꾸 트겠다"..'타운홀 미팅' 만든 秋부총리의 약속

세종=이민아 기자 2022. 5. 1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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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쯤은 저희 직원들의 승진 적체 문제를 보고 살펴봐주시기를...
기재부 8년차 A 사무관

지난 1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 다목적강당에서 취임사를 읽은 후 “일방적으로 취임사만 밝히면서 끝내지 말고 여러분과 소통하는 취임식을 가져야겠다”면서 상기된 얼굴로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기재부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대화를 하며 건의사항을 듣겠다는 취지였다. 추 부총리가 단상 아래로 내려온 후, 한 8년차 예산실 사무관이 나섰다.

추경호(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 11일 취임식을 열고 기재부 직원(왼쪽)과의 대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기재부 제공

이 사무관은 “기재부에서 근무하면서 정말 어렵고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좋은 가르침과 기재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즐겁게 일을 했다”며 추 부총리에게 ‘승진 적체’를 해소해 달라는 운을 뗐다. 그는 “하지만 다른 부처에 있는 동기들이 먼저 과장으로 승진해 업무 협의를 하러 왔다는 선배 사무관들의 씁쓸한 이야기, 하나둘씩 먼저 승진하고 떠나가는 다른 부처 동기들을 직접 볼 때 괜시리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며 “(추 부총리가) 막중한 경제 현안을 맡아 고생이 많겠지만 한번 쯤은 직원들 승진 적체 문제를 살펴봐달라”고 말했다.

승진 적체는 기재부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일단 서기관·부이사관으로 승진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다른 부처보다 몇년씩 느리다. 이 같은 승진 적체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시기에 더욱 심화됐다.

홍 부총리는 누적되는 승진 적체 해결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과거에는 기재부 1급 고위 관료들이 다른 부처 차관급 인사로 임명되거나 관세청, 조달청 등 산하기관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위직 인사를 이렇게 풀고 연쇄적으로 과장급까지 움직여 인력을 운영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실세로 꼽혔던 최경환 전 부총리 시절, 2015년에 기재부 출신이 산업부, 국토부, 환경부 장관과 금융위원장, 국무조정실장까지 맡았다.

하지만 이런 인사 이동의 명맥은 문재인 정부 이후 끊기다시피했다. 지난해 초 임재현 당시 세제실장이 관세청장에 임명된 것만이 예외적인 승진 인사로 평가되고 있었다. 다른 부처보다 행정고시 기수가 한참 높은 고참 간부들이 기재부에 그대로 남아있다 보니, 연쇄적으로 승진이 늦어지는 구조가 고착화했다.

기재부가 비인기 부처로 신입 사무관들 사이에서 굳어지는 데에는 이 같은 승진 적체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기재부 사무관은 “일도 많고 야근도 많이하는 부처인데 급여가 그렇다고 많은 것도 아니니, 사실상 인사가 공무원들에게는 유일한 보상”이라며 “그런데 승진이 다른 부처에 비해 너무 느리다 보니 일 할 의욕을 잃는 동료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 외에도 실·국 간 이동을 4년간 제한하고 있는 것을 3년으로 기간을 줄여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지나치게 기간이 길어 비인기 부서로 이동했을 때 공직 생활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부총리님 성함을 국회 요구 자료에서 많이 뵀다”면서 운을 뗀 장기전략국의 한 주무관은 주무관급, 즉 7급 공채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7급 공채 가운데 보고서 업무를 많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역량있는 7급 공채의 성장 기회를 달라”고 했다. 직원들의 유학 기회를 늘려달라는 요청을 한 사무관도 있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열고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기재부
네가지 지적, 건의 사항을 들어보니 ‘이야, 정말 안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은 추 부총리는 이렇게 답변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가) 사무관 시절에도 승진, 유학, 보직 이동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는 당장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저도 평생 여러분과 같은 (공무원) 생활을 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가장 큰 소망이자 해결돼야 하는 가장 큰 바람인 점을 알고 있다”면서 “우리 간부들이 좀 더 좋은 곳으로 가도록 물꼬를 자꾸 트고, 그 효과가 우리 직원들한테까지 스며들어서 여러분이 신나게, 미래가 보이는 직장생활을 기재부에서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 간부들이 좀 더 좋은 곳으로 가도록 물꼬를 자꾸 트겠다”라는 추 부총리의 약속은 일부 실현되고 있다. 기재부 1급들이 대거 외청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윤태식 세제실장을 신임 관세청장으로, 이종욱 기획조정실장을 조달청장으로, 한훈 차관보를 통계청장으로 각각 임명했다. 1급들이 자리를 내주게되면서 기재부 국장, 과장들의 승진 또는 보직 이동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현직 관료뿐 아니라 기재부 출신 ‘올드 보이’들도 주요 부처의 차관급으로 진출하고 있다. 기재부 재정관리관을 역임했던 조규홍 유럽부흥개발은행 이사는 복지부 1차관으로, 기재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던 조용만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문체부 2차관으로 선임됐다. 현재 국무총리 후보자인 한덕수, 최상목 경제수석비서관,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정부 요직에 있는 주요 인물들도 전부 기재부 출신이다. 아직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국무조정실장(장관급)도 기재부 출신들의 진출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기재부 출신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추 부총리는 타운홀 미팅을 마칠 즈음에는 엘리트 조직인 ‘기재부다움’을 강조했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강조하며, 총괄 부처로서 조정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도 주문한 것이다. 그는 “과거 우리의 영화만 믿고 일 하려는 것은 우리의 오만이 될 수 있다”며 “총괄 부처로서 제대로 (일)하려면 남보다 한 시간 더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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