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양정고보생 윤석중·동학 최시형 외손자 정순철, 국민동요 '짝짜꿍'만들다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2. 5.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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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해방 후 '졸업식 노래'도 합작
윤석중과 정순철은 1929년 국민동요 '짝짜꿍'을 만들었다. 1929년 정순철이 펴낸 창작동요집에 윤석중이 노랫말을 쓴 '우리애기행진곡'이 실렸다. 1927년 개국한 경성방송국이 이 동요를 틀면서 순식간에 인기노래가 됐다. 1930년 일본 유학을 떠나기 직전의 열 아홉살 윤석중(왼쪽)과 동덕여학교 음악선생이던 정순철(오른쪽).
1930년 일본 유학을 떠나기 직전의 열아홉살 윤석중. 깔끔한 '모던 보이'처럼 차려입었다. 윤석중은 10대 떄부터 천재소년예술가로 소문날 만큼, 뛰어난 동요작사가였다.

열여덟 살 양정고보생 윤석중이 쓴 시가 1929년 신문에 실렸다. ‘들로 나아가 뚜루루/언니 일터로 뚜루루/언니 언니 왜 울우/일하다 말고 왜 울우’

들에 일하러 나간 언니가 무슨 까닭인지 눈물 흘리는 장면을 묘사한 동요 ‘우리애기 행진곡’ 2연이다. 식민지의 힘겨운 일상을 우회적으로 담았다.

이 노래 첫째 연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엄마 품에 안겨 말을 배우면서부터 들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아빠 앞에서 짝짜꿍’으로 시작하는 동요 ‘짝짜꿍’이다. 당시 제목은 ‘우리 애기 행진곡’이었다.

정순철은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의 외손자였다. 1922년 일본 동경음악학교에 유학하면서 방정환과 색동회를 만들었고, 동요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윤석중 작시에 곡을 붙인 '우리 애기 행진곡'(짝짜꿍)은 경성방송국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유행곡으로 떠올랐다./미디어 창비

◇경성방송국서 계속 틀어 대인기

윤석중 노랫말에 곡을 붙인 이는 당시 동덕여학교 음악 선생이던 정순철이다. 윤석중의 회고다. ‘1929년에 동덕여학교 음악 선생이셨던 정순철 님이 1926년에 윤극영 동요곡집 ‘반달’이 나오자 나도 내겠다고, 그동안 작곡한 것을 모아 보았으나 아홉 편밖에 안 되었다.열 곡 채우려고 나에게 한 편 부탁해 지어드린 것이 ‘우리 애기 행진곡’이었다.’ ‘우리 애기 행진곡’은 정순철이 1929년 출간한 첫 동요집 ‘갈닙피리’에 실린 동요 10곡 중 맨 마지막 순서로 실렸다.

‘우리애기 행진곡’은 발표하자마자 히트를 쳤다. 1927년 개국한 경성방송국 라디오 방송이 이 노래를 내보내자 전국에서 작곡자가 누구냐는 문의 전화와 재방송 요청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소학교 학예회·소풍에서 인기 레퍼토리로 떠올랐다.

조선일보 1929년 6월8일자에 실린 윤석중 작 '우리 애기 행진곡'. 정순철이 곡을 붙여 같은 해 12월 출간된 동요집 '갈닙노래'에 수록했다.

◇'천재소년예술가 윤석중’

윤석중(1911~2003)은 10대 중반부터 천재소년예술가로 유명했다. 1926년 물산장려운동을 기념하는 노래 현상공모에 당선됐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기사 제목은 ’명예의 우승자/尹군은 천재 소년(조선일보 1925년9월12일)이었다. ‘물산 장려에 대한 인상을 조선 사람 일반의 머리에 깊이 뿌리박게하야 한시라도 각기 그 가슴속에 잊지 않게 하고자 물산 장려의 노래를 현상으로 모집까지 한 결과 시내 관철동 ‘기쁨’사 윤석중 군의 작가가 당선을 보게 되었다.’

물산장려운동은 3·1운동 이후 조선인이 일제의 경제 침탈에 맞서 우리가 만든 상품을 애용하자는 범민족 운동이다. 이 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한 현상 공모에 열다섯 살 까까머리 학생이 뽑힌 것이다.

윤석중은 열 세살이던 1924년 잡지 ‘신소년’에 동요 ‘봄’이 입선했고, 이듬해 아동극 ‘올빼미의 눈’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였다. 같은 해 동요 ‘오뚜기’가 잡지 ‘어린이’에 실리기도 했다. ‘짝짜꿍’은 윤석중의 초기 대표작이었다.

파인 김동환이 노랫말을 쓰고 정순철이 곡을 붙인 '자장가'. 조선일보 1928년 1월19일자에 실렸다.

◇낙원동 설렁탕집에서 탄생한 ‘졸업식노래’

윤석중은 평생 동시 1300편을 썼고, 이중 800편이 동요로 만들어졌다. 그의 노랫말로 동요를 만든 이는 홍난파, 윤극영, 박태준, 정순철 등 정순철은 당시 4대 동요작곡가이자 대표적 음악가였다. 정순철과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문교부가 초등학교 졸업가로 만든 ‘졸업식 노래’도 합작했다. 윤석중은 문교부 의뢰를 받고 ‘작곡할 사람을 나에게 맡겼으므로 즉시 정순철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정순철이 곡을 완성하자 ‘다 된 곡을 들어볼 데가 없어서 낙원동 어느 설렁탕 집으로 들어가 정순철이 가는 소리로 불러 들려주었다’(윤석중 ‘어린이와 한평생’ 203쪽)는 것이다.

정순철(1901~?)은 동경음악학교를 다닌 음악가였다(정순철의 생애는 도종환, ‘어린이를 노래하다’를 참고했다). 외할아버지는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이고, 어머니 최윤도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한 경주 월성군 용담성지에서 수도하며 포교한 천도교 간부였다. 1919년 보성고보를 나와 손병희 사위인 소파 방정환과 천도교 소년회 활동을 함께 했다.

정순철은 1922년 동경 음악학교 선과(選科)로 유학 가 이듬해 방정환과 함께 ‘색동회’를 만들었다. 색동회는 창립 직후 잡지 ‘어린이’를 만들고 어린이 계몽운동을 펼쳤다. 정순철은 동경에서 같이 자취하며 음악을 공부하던 윤극영을 소파에게 소개하면서 동요 작곡을 권했다. 윤극영과 정순철은 ‘어린이’를 터전 삼아 창작 동요를 만들어 발표하고 보급하는 데 힘쓰게 된다.

정순철은 조선일보 1928년 1월19일자에 ‘자장가’를 발표했고, 1932년 동요집 ‘참새의 노래’를 펴냈다. 정순철은 1927년 동덕여학교에 몸담은 이래,경성 보육학교, 중앙보육학교, 무학공립여중, 성신여중에서 음악교사로 활약했다.

두 번째 일본 유학 시절의 정순철. 1922년에 이어 1939년 다시 일본 유학을 감행했다. 성신여중 교사로 재직하다 6.25를 맞아 9.28 수복 당시 납북됐다. /미디어창비

◇내 나라 사랑 북돋은 동요

1924년 ‘어린이’에 발표된 윤극영의 ‘반달’은 누이의 죽음을 계기로 쓴 작품이다. 하지만 ‘누이의 죽음과 대낮의 반달과 나라 잃은 슬픔’이 어우러지면서 민족적 색채를 띤 동요가 됐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하는 ‘반달’은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샛별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로 마무리하며 희망을 노래했다.

동요는 ‘어린이들의 메마른 정서에 물을 주고 그들의 생각과 생활을 보다 맑고, 밝고 곱게 이끌어나가는’ 역할이 주목적이었다. 하지만 ‘일제때 소년운동의 가장 큰 수확은 동요로 전해진 내 나라 사랑이었으니 향토색 무르익은 말과 곡에서 모든 어린이들이 제 나라에 정을 붙이게 된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6.25가 할퀸 동요작가 콤비

6·25는 윤석중·정순철 콤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윤석중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인민군이 퇴각한 뒤 좌익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1955년 복간된 소년조선일보 고문을 맡아 15년간 일했고, ‘새싹회’를 조직해 어린이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300편이 넘는 동시를 썼고, 그중 800편 넘게 동요로 불리면서 ‘한국 동요의 아버지’가 됐다.

정순철은 6·25 당시 성신여중 교사로 학교를 지키다 9·28 수복 이후 인민군이 후퇴할 때 납북됐다. 언제 죽었는지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자연히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최근 평전이 발간되면서 조금씩 재조명 받고 있다. 그가 납북되지 않았으면 ‘짝짜꿍’이나 ‘졸업식 노래’같은 명곡이 더 나왔을 것이고, 우리 동요의 밭도 훨씬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참고자료

윤석중, ‘어린이와 한평생’, 범양사, 1985

윤석중, ‘노래가 없고 보면’, 웅진, 1989

이상금, ‘사랑의 선물: 소파 방정환의 생애’, 한림, 2005

도종환, ‘어린이를 노래하다: 한국동요의 선구자 정순철 평전’, 미디어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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