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원정 진료비만 연 9조.. "지방엔 큰 병원, 의사가 없다"

오지혜 2022. 5. 1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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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계기로 지역 간 의료격차 문제 주목
"거점당 300병상 이상 병원 하나씩은 있어야"
지난 3월 22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에서 구급차가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공휴일이나 야간이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죠. 진료 자체가 안 되니 다른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요. 조산 산모를 타지역 병원으로 보낸 적이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아기가 사산된 경우도 있었어요."

13일 의료진 부족 문제를 묻자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 A씨는 긴 한숨 끝에 그간 마음 한편에 묻어뒀던 어느 산모 이야기부터 꺼냈다.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병원이지만 이곳엔 '당직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다. 위급한 산모가 와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급히 근처 병원을 수소문해 보냈는데, 도착했을 땐 이미 아이가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산모뿐이랴. 그래도 대학병원이라고 뇌경색, 심근경색 같은 급한 환자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A씨는 '봐줄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할까 봐 무섭다.

사실 이 문제, 수도권과 다른 지역 간 의료격차 문제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이 격차는 지난 2년간에 걸친 코로나19 대확산 사태를 맞아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병상대란이 벌어졌다곤 하지만 그건 그래도 병상이 어느 정도 있는 수도권 병원의 얘기이고, 비수도권 병원엔 음압병실도 제대로 없다보니 경남 창원의 임산부가 제주에 가서 출산한 경우도 있었다. 지방 병원엔은 호흡기·감염 내과의사조차 없거나 부족해, 마취과 등 다른 의사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26일부터 전국을 돌며 '지역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은 몸이 많이 아파도 진료 한 번 속 시원하게 못 받게 그냥 내버려 둘 것이냐는 문제제기다.


의료격차에 서울 원정진료비만 9조원

2019년 지역별 치료가능 사망률. 강준구 기자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치료가능사망률'에서 생생히 드러난다.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숨진 이들의 비중을 따져보는 치료가능사망률을 보면, 2019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충북이 46.95명으로 제일 많다. 가장 적은 곳은 당연히 서울로 36.36명이다. 최대 11명까지 차이가 나는 셈이다. 17개 시도 전체를 봐도 서울을 비롯한 4개 시도만 평균(41.83명) 이하다.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심하게 아픈 지역 주민들은 서울로 향한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거주지 외 다른 지역으로 진료를 받으러 간 환자들이 쓴 '원정진료비'는 19조7,965억 원에 달한다. 수도권만 따지면 다른 지역에서 유입되는 환자들의 진료비는 12조4,539억 원에 이르고, 서울만 보면 8조7,175억 원이다. 원정진료비는 앞으로도 늘 것으로 보인다. 전년도에 비해 전체 원정진료비는 2,557억 원, 수도권 원정진료비는 2,461억 원 정도 늘었다.


의료진 부족 → 환자 유출 → 투자 감소... 악순환 고리

하지만 지역병원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병원이 없으니 의료인력은 부족하고, 업무가 과중해지니 또 의료인력은 빠져나가고, 의료인력이 빠져나가니 환자들은 병원을 외면하고, 병원은 투자를 할 수 없으니 의료인력이 부족해지고. 이런 현상의 무한반복이다.

지역 공공병원 간호사 B씨는 "인력이 부족하니 견디다 못한 고연차들이 그만두는 일이 계속된다"면서 "그러면 신규 간호사가 처치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시키는 우리도 불안하지만, 환자들도 종종 문제를 제기한다"고 토로했다.

지역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일하는 C씨도 "인력이 없어 위험한 산모나 태아를 돌볼 수 없다는 걸 아니까 동네 산부인과부터가 위급환자를 우리 병원에 보내지 않으려 한다"며 "그러니 분만 건수가 줄고, 신생아실 운영도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방법은 그저 하나, 남은 의료인력들의 버티기다.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확보가 핵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지난달 26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앞에서 '전라북도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주=뉴시스

보건의료노조가 주장하는 해법은 정부가 전국을 70개로 나눠둔 진료권마다 하나씩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병상 수 자체는 적지 않다. 수도권 대형 병원에만 몰려서 문제다. 2020년 기준 병상 수를 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12.4개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일본(13개)의 뒤를 잇는 2위다. OECD 평균인 4.5개보다도 훨씬 많다. 하지만 300병상 이상 병원이 없는 진료권은 70개 중 18곳이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300병상 미만의 종합병원이란 중환자를 볼 능력이 없다는 의미"라면 "지방엘 가보면 100~200병상 정도 되는 중소병원만 과잉공급된 상태인데 이 부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국회입법조사처는 300병상 미만인 지방의료원 27개를 증축해 덩치를 키우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하드웨어를 늘리는 것 이상으로 장기적인 관리 대책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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