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 놀림받던 아이, 미군 중령으로 고향에 왔습니다"
6·25전쟁 때 흑인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스물두 살 혼혈 여성이 1973년 7월 23일 대구 미군 부대 문 앞으로 어린 남매를 데려다 놓고 헌병에게 아이 아버지 이름을 알려주고는 재빨리 사라졌다. 차별과 편견 속에 살았던 아픔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감행한 일이다. 아이 아버지인 미군 병사는 남매를 한국 고아원에 보냈다가 상관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다시 아이들을 거뒀다. 그 남매 중 아들이 지금 미 육군 중령이 되어 어린 시절 자신이 맡겨졌던 부대에 근무하고 있다. 미 육군 19지원단 소속 정보장교 준 이(Yi) 중령이다.
이 중령의 사연이 최근 미 육군 홈페이지에 소개됐다. 그는 젊은 날 아버지의 상관(당시 대위)을 ‘나의 수호천사’라고 했다. 아버지를 호출한 그가 “아버지로서 책임을 질 자신이 없으면, 불명예 제대하라”며 호되게 꾸짖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중대장과 선임부사관이 직접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을 데려와 위탁 가정에 맡겼다. 고아원 입양 서류에 적힌 이름이 ‘이준’이었다.
새 보금자리가 된 위탁 가정에는 자신과 같은 또래 혼혈 자녀들이 있었다.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극심했던 시절이었다. 제대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유년 시절 미군 물품이 밀거래되던 암시장에서 심부름하고 수고비 명목으로 적은 돈과 사탕을 받아 먹으며 자랐다. 그러다 아버지가 위탁 가정 여성과 살림을 꾸리면서 가족이 생겼다. 아버지가 퇴역을 앞둔 열한 살 때 새 가족과 함께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 정착했다. 한국어도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던 그는 아버지(레이먼드 워맥) 이름을 물려받아 또래들보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했다. 헌신적인 교사의 도움으로 뒤처진 학업을 따라잡았다. 고교 시절엔 풋볼에 두각을 나타내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워싱턴대에 풋볼 특기생으로 입학했고, 2학년 때는 대학 대항전 우승 멤버로 반지도 끼었다.
프로 선수를 꿈꾸던 그의 진로가 군인으로 급선회한 계기는 “친엄마를 찾았다”는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는 흥신소를 고용해 아이들의 친모를 수소문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한국도 아닌 미국, 그것도 자신들이 거주하는 타코마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미군 부대 앞에서 헤어진 지 20여 년 만에 어머니와 다시 만났다. 이때 그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그 ‘수호천사’ 중대장을 롤모델로 삼아 ROTC(학군사관)에 지원했고 1998년 소위로 임관했다. 군인 복무를 위해 서류에 공식 이름을 적을 때 그는 ‘레이먼드 워맥’ 대신 입양 서류에 있던 이름 ‘이준’을 미국식으로 배열한 ‘준 이’로 정했다.
24년 차 장교인 그는 지금 ‘고향’ 대구에서 근무하고 있다. 갓난아기였던 자신이 헌병 손에 맡겨졌던 그 미군 기지, 그리고 자신의 ‘수호천사’가 소속했던 그 부대다. 그는 “나에게 기회를 준 곳 한국과 미국을 모두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한국 주재 미국 대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글을 또박또박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이 중령은 미군부대에 맡겨진 지 꼭 50년 뒤인 내년 7월 23일에 전역할 예정이다. 그는 13일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공개한 배경을 본지에 알려왔다. “한국은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래도 (다문화에 대한 편견 등) 문제가 있을 수 있지요. 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모두를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사람 정도의 생각은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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