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아카시아’라는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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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에서 향기는 오나/그 별에서 두 마리 순한 짐승으로/우리 뒹굴던 날이 있기는 했나/나는 기억 안 나네/아카시아.”
김사인 시인의 시 ‘아카시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카시아라는 꽃은 따로 있고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라 부르는 “동구 밖 과수원길”의 하얀 꽃의 정확한 이름은 ‘아까시’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까시’라고 하면 ‘아카시아’라 호명할 때보다 아무래도 서정성이 떨어지지요. ‘아카시아’라는 단어에서는 싱그럽고 향기 짙은 꽃이 연상되는데 ‘아까시’에서는 가시 돋친 억센 식물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시어(詩語)로도 ‘아까시’보다는 ‘아카시아’가 즐겨 사용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카시아’는 서러움의 꽃이기도 합니다. 가난하고 먹을 것 없던 시절, 허기진 아이들이 밥 대신 따 먹었다는 꽃. 그래서 김사인 시인은 배 곯으며 아카시아꽃 따 먹던 누이동생을 떠올리며 시를 끝맺습니다. “허기진 이마여/정맥이 파르랗던 손등/두고 온 고향의 막내 누이여.”
라일락 향기가 슬며시 옅어지더니 어느새 ‘아카시아’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봄밤, 베란다 창을 활짝 열었더니 녹색 숲에 하얀 꽃무리가 구름처럼 피어나고 거실까지 들이친 고혹적인 향기로 어찔해집니다. 바야흐로 봄이 절정에 이르른 모양입니다. 이윽고 여름이 오겠지요. 아카시아꽃 흐드러진 봄의 끄트머리를 한껏 즐기시길 바라며 이해인 시인의 ‘아카시아’를 옮겨 적어 봅니다.
“향기로 숲을 덮으며/흰 노래를 날리는/아카시아꽃//가시 돋친 가슴으로/몸살을 하면서도//꽃잎과 잎새는/그토록/부드럽게 피워냈구나// 내가 철이 없어/너무 많이 엎질러 놓은/젊은날의 그리움이//일제히 숲으로 들어가/꽃이 된 것만 같은/아카시아꽃”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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