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 창조적 성공 뒤엔 '협업' 있었다

김용출 2022. 5. 14.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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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컴퓨터 과학·AI 아버지 튜링·애플 잡스 등
디지털 혁명 주역들의 현장 생생히 담아내
그들 업적은 철저한 협업·팀에 의해 탄생
천재의 아이디어에 현실화해낸 기술자들
상품으로 만드는 기업가 사이 조화의 결과
최고의 전기 작가 중 한 명인 월터 아이작슨은 신간에서 꼼꼼한 자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디지털 혁명의 수많은 이노베이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디지털 혁명은 팀과 협업에 의해 이뤄져 왔다며, 협업 문화와 비전 있는 지도자의 결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에이다 러브레이스, 앨런 튜링,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gettyimageskorea, 21세기북스 제공
이노베이터/월터 아이작슨/정영목·신지영 옮김/21세기북스/4만2000원

1833년 어느 날, 런던의 한 사교 모임에서 열일곱 살의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마흔한 살의 홀아비이자 과학과 수학 연구로 유명하던 찰스 배비지를 처음 만났다. 이 모임에서 배비지는 손잡이를 돌리면 기계가 일련의 수를 계산하고 심지어 다항 방정식까지 풀 수 있는 거대한 기계 계산장치를 시연했고, 아버지 바이런의 낭만적인 정신과 이 기질을 진정시키기 위해 수학을 배우면서 ‘시적 과학’이 충만했던 에이다는 배비지의 구상을 곧바로 이해했다.

배비지는 이듬해 프로그래밍 명령에 기초해 다양한 연산을 수행하는 범용 컴퓨터 개념을 떠올렸고, 2년 뒤에는 천공카드를 사용해 명령을 무제한으로 입력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재프로그램이 가능한 범용기계, 이른바 ‘해석기관’을 고안했다. 배비지는 범용 컴퓨터 개념을 1842년 이탈리아의 메나브레아 대위를 통해 프랑스어 논문으로 작성해 발표했지만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배비지의 부탁을 받은 에이다는 1843년 9월 메나브레아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한 뒤 자신이 이해하고 분석한 ‘번역자 주석’을 덧붙여 많은 사람들이 보던 ‘과학 논문집’에 게재했다. 에이다는 ‘주석’에서 현대적 컴퓨터를 상상한 범용기계 개념을 분명히 제시하고, 해석기관의 연산이 수로만 제한되지 않도록 했으며, 컴퓨터 프로그램 또는 알고리즘이라는 부르는 작동방식을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결국 에이다의 ‘주석’은 논문 자체보다 더 유명해졌고 그녀를 컴퓨터 역사의 우상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

배비지와 에이다는 자신들의 구상과 아이디어가 과학계와 산업계에서 진지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배비지는 생전에 자신이 구상한 기계가 제작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가난하게 죽었고, 에이다 역시 도박과 아편에 중독된 뒤 자궁암과 고통스런 사투를 벌이다가 예순세 살의 나이로 떠났다.
월터 아이작슨/정영목·신지영 옮김/21세기북스/4만2000원
국내에서만 무려 7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스티브 잡스’를 쓴 최고의 전기 작가 중 한 명인 월터 아이작슨이 10년을 준비한 역작 ‘이노베이터’를 들고 돌아왔다. 책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진 에이다 러브레이스부터 시작해서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 인텔의 로버트 노이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트랜지스터와 마이크로칩, 개인용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인터넷과 웹으로 이어진 디지털 혁명의 이노베이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튜링은 “계산 가능한 수열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단일 기계를 발명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배비지와 에이다의 꿈을 구체화한 범용적인 보편 논리기계, 즉 보편 컴퓨터가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튜링은 나중에 논리를 모사하는 방식으로 기계가 인간 지능을 모사할 수 있다며 기계 스스로 학습해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인공지능 개념 역시 제시했다.

배비지와 에이다, 튜링의 구상을 바탕으로 1945년 혁신가인 프레스퍼 에커트와 존 모클리가 현대식 컴퓨터 특징을 갖춘 에니악을 개발했다. 에니악은 완전 전자식에 속도가 매우 빨랐고, 케이블을 꽂고 빼는 방법으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현대 컴퓨터의 기초가 됐다.

현대식 컴퓨터가 만들어진 뒤 트랜지스터가 개발되고, 이후 수백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마이크로칩이 인텔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 등에 의해 차례로 개발돼 개량됐고,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열린 뒤에는 빌 게이츠와 폴 앨런 등이 운영 체제와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혁신이 이어졌다.

인터넷 역시 1970년 중반 군과 학술기관 등에서 아이디어를 느슨하게 공유하기 위해 정부와 사기업이 부분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네트워크가 일반에 개방됐으며,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 및 통신 혁명과 결합되면서 일반 가정에 보급됐다. 2000년대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 의해 아이폰이 개발되면서 손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디지털 혁명의 주요 단계와 혁명을 이끈 주역들의 일대기를 세밀한 자료조사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 아이작슨이 도달한 결론은 무엇일가. 그는 디지털 혁명이란 고독한 천재가 홀로 자신의 머리에서 짠, 하고 나타내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팀과 협업에 의해 탄생돼 왔다고 분석한다. 즉 천재성을 갖춘 이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아이디어를 현실화해낸 기술자들의 기술력과, 혁신적 제품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기업가의 사업 수완이 조화롭게 만날 때 이뤄졌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혁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협업 문화와 비전 있는 지도자의 결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벨연구소는 이론가와 과학자가 편하면서도 세련된 공간을 공유해 하루 종일 함께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최초의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인텔의 앤디 그로브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 같은 혁신가들의 협업을 이끌어내고 일에 집중시켜 성공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똑똑하더라도 협업할 줄 모르면 실패하는 경향이 있었다. 쇼클리 반도체가 무너졌다. 마찬가지로 비전을 제시하는 정열적이고 고집스러운 지도자가 없는 협업집단도 실패했다. 벨연구소는 트렌지스터를 발명한 뒤 표류했다. 1985년 잡스를 몰아낸 애플도 마찬가지였다.”(684쪽)

저자 아이작슨은 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문학을 공부한 뒤 애스펀연구소 대표와 ‘타임’지 편집장 등을 역임한 밀리언셀러 전기 작가다. 현재 툴레인대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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