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플 사무실서 쓴다, 과학을 담은 쾌적한 의자

2022. 5. 1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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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허먼 밀러 뉴 에어론 체어
외부 일정이 없는 날이면 나의 일터이자 놀이 공간인 작업실 비원에서 여러 일을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쓰고 사진 작업하는 게 주 업무라 할 수 있다. 한 자리에서 열네 권의 책을 냈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진을 판다. 커피 내리고 음악 듣는 일은 삶의 풍요를 이끄는 리추얼이자 놀이다. 턴테이블에 LP를 얹어 듣는 아날로그 오디오가 좋다. 좋은 소리가 난다는 진공관 포노 이퀄라이져 앰프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햇수로 20년을 맞는 비원 생활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국내외 IT 인재들이 애용하는 허먼 밀러의 뉴 에어론 체어. [사진 윤광준]
산다는 건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유용과 무용, 일과 놀이의 구분 없이 즐겁게 살기로 했다. 시간을 어디서 보내는가가 중요하다. 발 딛고 있는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이 펼쳐지게 된다. 그러니 비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곧 내 삶으로 바뀌는 셈이다. 가구와 쓰는 물건부터 조명의 분위기와 밝기까지 허투루 할 수 없다. 색마저 지워 온통 하얗고 단정한 방은 싫다. 내 행동의 궤적이 남아 적당히 복잡하고 시간의 때로 얼룩진 사물조차 기괴하게 보이지 않도록 방을 꾸몄다.

유독 일상의 공간에 신경 쓰는 덴마크인들이다. 춥고 어두운 기후 탓에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원목을 소재로 한 따스한 느낌의 가구디자인이 발달한 이유기도 하다. 특히 의자를 중요시해서 첫 월급을 타면 좋은 의자를 산다. 의자는 새로운 삶을 펼쳐갈 중심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모든 일은 의자에서 이루어지 않던가. 의자가 삶의 풍요로 이어질 거란 그들의 기대를 수긍한다. 허먼 밀러도 똑같은 내용으로 광고한다. “꼭 허먼 밀러 아니더라도 의자는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의자를 쓰고 있었다.

국내외 IT 인재들이 애용하는 허먼 밀러의 뉴 에어론 체어. [사진 윤광준]
비원의 작업은 책상 위 컴퓨터와 작업대에서 펼쳐진다.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며칠씩.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의자 하나만은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안 된다. 앉아있으면 편안하고 빈 의자를 바라보면 존재감이 넘쳐야 합격이다. 의자가 앉아있는 나를 돋보이게 해야 할 테니까. 이집트 파라오가 앉던 의자나 임금의 용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자의 옹색함에 묻히긴 싫다.

컴퓨터를 오래 써보니 비로소 알겠다. 결국 일을 하는 건 기기의 성능이 아니라 사람이다. 편하게 오래 앉아있을 수 있어야 작업량이 는다. 컴퓨터가 아니라 엉덩이와 허리의 편안함이 일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와 사람을 잇는 중요한 도구가 작업용 의자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지금까지 나온 세상의 어떤 컴퓨터도 서서 쓰는 기종은 없다.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서 쓸 때 컴퓨터는 효율로 보답한다.

여느 의자와 일을 하기 위한 의자는 구분해야 한다. 잠깐 앉는 의자라면 무엇이든 어떠랴. 하지만 사무용 의자는 엉덩이에 닿는 감촉과 질감까지 따져야 옳다. 내 몸의 연장이라 느껴질 만큼 일체감이 느껴져야 한다는 말이다. 바닥의 굴곡을 타고 넘지 못하는 작은 바퀴의 부실함도 참을 수 없다. 이런 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스런 소리를 낸다. 일하다 보면 의자에 앉아 밀고 돌며 비틀고 몸 굽혀야 하는 일이 얼마나 빈번하던가. 요즘 많은 사람의 밥은 컴퓨터를 두드릴 때 나온다. 컴퓨터가 곧 밥인 세상에선 집중을 해치는 자잘한 방해 요소까지 신경 쓴다. 쾌적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의자의 중요성은 생산성을 높이는 전제로 자리 잡았다.

벼르고 별러 고른 나의 의자는 오카무라의 콘테사다. 15년 전 도쿄의 사무용 가구점 쇼윈도에서 마주친 콘테사는 충격이었다. 의자의 금속 골격을 밖으로 드러낸 스켈레톤(외골격) 방식의 획기적 디자인 때문이다. 이태리의 산업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의 솜씨를 확인하고 ‘역시!’를 연발했다. 쥬지아로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었다. 콘테사는 다행히 국내에 수입되고 있었다. 꽤 비싼 값을 치르고 샀다. 내게 의자는 생산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콘테사를 들여놓은 후 기존 사무용 의자가 얼마나 엉망인지 알게 됐다. 내 몸에 맞게 높이와 각도 반응 강도가 조절된다. 나만을 위해 의자가 복무할 태세를 갖춘 셈이다. 쾌적하고 편안한 의자로 일을 한다는 게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15년을 쓴 나의 콘테사는 팔걸이가 닳아 헤졌을 뿐 여전히 비원의 일상을 함께한다.

슬슬 새로운 의자가 궁금해졌다. 이번엔 필요가 아니라 관심이다. 눈 밝은 후배들이 사무실에서 쓰고 있는 ‘허먼 밀러 뉴 에어론 체어’에 앉아본 게 발단이다. 사무용 의자의 현재는 세부를 보완해 큰 폭으로 진화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인간의 몸을 읽어 최적의 편안함을 주는 의자는 가구를 넘어 과학에 근접한 느낌이다. 모든 작동 요소가 조절되고 부드럽게 작동된다. 말로 하면 뻔한 내용이지만 디테일이 더해져 생각한 이상의 결과를 내주고 있다.

등받이와 좌판의 소재는 모두 훤히 비치는 신소재 섬유로 만든 메시 천이다. 등받이 부분은 닿는 압력을 고려해 8개의 각기 다른 패턴과 탄성으로 만들었다. 등의 굴곡을 편하게 받쳐줘서 오래 앉아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이유다. 바람이 통해 시원함은 물론이다. 특히 부드럽고 유연한 좌판은 엉덩이가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의자의 연결부위는 부드럽게 작동되어 허리를 눕히면 등받이도 뉘어진다. 의자가 먼저 잠깐의 휴식을 준비해주는 느낌이랄까. 시선의 높이를 조절해주는 건 유압 쇼바다. 의자 전체가 부드럽게 상하로 움직인다.

허먼 밀러의 뉴 에어론 체어는 갑자기 나타난 신제품이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1970년대에 고령화 시대를 맞은 미국 사회의 대처가 발단이다. 빠르게 늘어나는 노인을 위한 보조 시설의 부족과 집에서 장기치료를 하는 이들을 위한 다목적 의자가 필요했다. 허먼 밀러는 10여 년에 걸친 연구로 에어론 체어의 원형을 선보였다. 94년 첫 출시된 에어론은 이후 28년 동안 개량에 개량을 거쳐 보완되고 완성도를 높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에어론의 유명세 이면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산업디자이너 조지 넬슨이다. 허먼 밀러사의 가구 제작부 아트 디렉터 시절 찰스 임스와 이사무 노구치를 발굴해 에어론 디자인을 협업한다. 그들이 누군가. 훗날 세상을 주름잡게 된 디자이너들이다. 에어론 체어가 전반적으로 둥근 모양으로 마무리된 건 이들의 영향으로 봐야 한다. 이후 빌 스툼프가 새로운 기능을 더했고 현재의 에어론 디자인을 주도하는 이는 돈 채드 윅이다.

실리콘밸리의 상징인 구글과 애플에서 허먼 밀러를 써서 화제가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IT기업 네이버와 카카오도 에어로 체어를 들여놨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전 사업장에 이 의자를 보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회사들은 모두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쾌적한 업무환경을 위한 회사의 결정에는 이유가 넘친다. 의자의 비싼 가격으로 화제에 오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의자를 바꾸므로 얻게 될 더 큰 작업효율의 기대 때문일 것이다. 난 이런 기업들의 선택이 인간을 위한 진심의 배려라 믿고 있다. 의자가 편하고 아름다워야 기분 좋게 일하게 될 테니까.

윤광준 사진가. 충실한 일상이 주먹 쥔 다짐보다 중요하다는 걸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대 위에서 깨달았다. 이후 음악, 미술, 건축과 디자인에 빠져들어 세상의 좋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됐다. 살면서 쓰게 되는 물건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일 또한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심미안 수업』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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