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가 돌아왔다, 젊은이들을 향해서

신준봉 2022. 5. 1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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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늘을 보아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음

느린걸음

시집 제목이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너’는 누구일까. 시인 박노해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터. 본명 박기평.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독극물까지 만든 반국가조직”인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을 주도한 죄로 사형구형까지 받았던 풍운아 박노해 말이다. 그런 그가 누구에게, 명령형으로 느껴지는 ‘봐’ 대신 풀어써서 부드러운 느낌의 ‘보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하늘을 보라고 하는 것일까.

여전히 혁명가, 게다가 사진작가라는 타이틀로도 자신을 소개하는 시인 박노해는 우리 곁을 오래 떠난 적이 없다. 100만 부가 팔린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옥중 출간한 93년 『참된 시작』 이후 시인은 마음을 바꿔먹은 듯했다. 숨 가빴던 스스로를 돌아보고 넓은 세상을 둘러보는 쪽으로 말이다. 시집 대신 이라크 전쟁터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고, 글을 덧붙인 사진 산문집을 여럿 출간했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참된 시작』 시절부터였다고 해야겠다. “지금 우리,/ 마치 닭갈비 같은 처지는 아닌가/ (…) / 경악하여 눈 씻고 보니 현실은 급변하고/ 민중의 마음도 저만큼 달라져 가고 있네”. 『참된 시작』에 수록된 ‘닭갈비’의 일부다.

12년 만에 새 시집을 낸 박노해 시인. 사진은 전쟁 중이던 레바논에서 활동할 때다. [사진 느린걸음]
새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는 박노해의 시인 복권 선언이라고 봐도 좋겠다. 12년 만의 시집 출간이다. “사형을 받은 날의 최후진술서처럼/ 하얗고 아득한 원고지”에(‘시가 괴로운 밤에’), “한 자 한 자 피로 쓴” 3000여 편 가운데 301편을 추린 것이다(‘초고는 쓰레기’). 그런 만큼 시인의 현 좌표, 최근 10여 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늙은 혁명가 박노해는 고문의 생생한 고통을 추억하고(‘내 몸의 문신’), 야간 상고를 졸업하고 공장으로 향한 경위를 떠올린다(‘어머니가 그랬다’). 자전적이라는 얘기다. 세태를 꼬집거나(‘접속과 소통’, ‘나를 죽이던 시간이 확 돌아서’), 어딘가 잠언풍에 빠지기도 한다(‘경계’). 강렬했던 언어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저기 사람이 있습니다’나 ‘향사전언(香死傳言)’ 같은 작품들은 군더더기 없이 좋아 보인다. 이렇게 말이다. 전문이다.

“꽃이 진다/ 꽃이 간다// 지는 꽃잎이 바람에/ 향기를 전한다// 향사전언// 그대가 떠났구나/ 가슴 시린 향기여// 향기에 쓴 유언이여/ 바람의 전언이여”.

이쯤에서 처음으로 돌아가자. 시집 제목 말이다. 누구에게 권하는 걸까. 하늘을 보라고 말이다. 결론을 당겨 말하면 젊은이들에게다. 시집 안의 여러 편에서 한때 자신이 향유했던, 그러나 한번 통과한 지금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청춘을 다독이고 응원했다. 시집의 그런 졸가리가 맨 앞에 실린 ‘그 약속이 나를 지켰다’에 역력하게 표현돼 있다.

“널 지켜줄게/ 그 말 한 마디 지키느라/크게 다치고 말았다/ 비틀거리며 걸어온 내 인생// 세월이 흐르고서 나는 안다/ 젊은 날의 무모한 약속,/ 그 순정한 사랑의 언약이/ 날 지켜주었음을”.

이런 시행들에 말이다. 그런데 이런 문장들은 연애시의 문장은 아닌가. 시를 어떻게 읽느냐는 독자의 자유다. 기자에게는 달리 읽힌다. 젊음 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시어가 사랑이다. 시인은 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이다(‘다 다르게 불리기를’).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의 실체는 ‘감염된 사랑’ 같은 작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인은 “사랑의 접촉자”, “죽음까지를 감수하면서” “낯선 이들을/ 접촉하고 받아들이는 결단과 용기”가 사랑과 정의라고 했다. 이럴 때 “사랑의 길”은 “자유의 길”이자 “삶의 길”이다. 그러니 시인은 여전히 혁명가다. 코로나 시대에 접촉을 얘기하는, 생각과 삶의 일치를 꿈꾸는 혁명가 말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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