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 진정한 의료 복지는 무엇일까?

이순용 2022. 5.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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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할머님 이제 리어카 그만하시고 박카스도 제가 마신 걸로 할 테니 그만 가져오세요. 제가 동사무소에 전화 다시 드려 볼게요” 이제 만으로 75세가 된 환자는 오랫동안 심부전과 심방세동으로 필자의 외래를 다니고 있다. 처음 심한 호흡곤란과 폐부종으로 내원한 후, 약물치료로 호전됐다가 약값과 병원비가 비싸다면서 외래를 한동안 오지 않으셨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이후 폐부종으로 다시 응급실에서 만났고,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외래를 잘 다니고 계신다. 약값이 일반인들이 보기에 비싸지 않고 2만 원 남짓할 텐데 오실 때마다 걱정을 하시길래 하루는 조심스레 자녀분들을 여쭈었는데 따님은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게 됐고, 아들은 사업이 잘 안돼 가끔 방문 한다고 했다. 할머님의 배우자는 거동이 불편하신 모양이다. 차트를 보니 아직 일반 국가 보험 환자로 되어 있어 경제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이 없어 보여 할머니께 동사무소에 가셔서 의료급여로 바꾸어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시라 하고, 진단서를 써드렸다. 할머니는 소소히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종이상자를 주워 팔면서 생계를 이어오신다고 한다. 종이 상자 팔면 돈이 얼마나 나올까 싶으면서도 추운 겨울날에도 리어카를 끌면서 다니는 할머니가 많이 안타까웠다. 다음 번 외래에서 만난 할머니는 아직도 의료급여로 변경되지 않았고, 얼마 간의 약값이 드는 상태였다.

“할머니 동사무소 다녀 오셨어요? 사회사업실도 다녀 오셨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라는 물음에 할머니는 조금 어두운 얼굴로 “의사 양반, 나는 뭐 지원이 안된다는 구려. 아들이 있고 어디서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는 모양이야. 그리고 허름하게나마 우리 집이 하나 있는데, 그게 안 팔리기도 하고 팔면 갈 데도 없고, 집이 있다고 의료급여는 안된다는데 어쩌겠소. 그냥 리어카 해야지. 암튼 치료 잘해주어 고마워” 할머니는 없는 돈에 오실 때마다 치료 잘 해주어 고맙다며 음료수 한 병씩 주고 가시는데 동사무소에 전화를 드려보아도 현재 할머니를 의료급여로 변경할 수는 없다고 하신다. 나라에서 약간의 지원이 나와도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고, 병이 있는데 약값에 대한 지원이 적을 수밖에 없고, 또 약값을 벌기 위해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가 안타깝다.

몇 주 전 서울 한복판, 창신동에서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허름한 주택에 살면서 변변한 소득도 없었지만 복지 지원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 모자의 경우, 실제로 주민센터에도 계속 방문을 했고, 기초 생활수급 신청에도 수급에서 탈락한 것 같다고 하는데 필자의 경우는 위의 환자 같은 케이스가 종종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 상황이 이해가 간다. 비대면으로 어플 등을 통해 신고할 수 있는 절차들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할머님과 같은 환자분들은 오히려 어플을 사용하기도 어렵고 비대면으로 뭔가를 신고하고 이야기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필자의 외래에는 젊고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이 되는, 심장 기능이 많이 회복된 심부전 환자들이 당신이 근로가 안되니 근로 능력 평가서를 써달라. 자신이 심부전으로 약물을 먹는다고 진단서를 써달라라며 요청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 그런 분들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여러 가지 법령들을 따져가며 당신들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취하면서 의료급여를 받아 거의 무상에 가깝게 약물을 타간다. 예쁘게 치장을 하고, 손톱을 하며, 노동하지 않고, 의료급여를 통해 어디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찾아오는 모습이 병원비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와 대조적이다.

필자가 미국 연수를 가면서 다시 외래를 방문을 안 하신 건지 이후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창신동 모자 비극 사건을 보면서 다시금 생각이 났다. 허름한 집에 살고 있지만 부동산 가격이 올라 보유 재산이 같이 오르지만 소득은 그대로인 사람들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출을 받아 가족들을 위해 아파트 한 채 장만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빚 갚는 사람들은 보유세는 늘어나고 정작 자신이 아플 때 병원에 들를 때마다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직장에 눈치를 봐야 하는 심부전 환자들도 있다.

그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받을 수 있게 할 것 인가. 일하느라 바빠서 나라에서 주는 혜택도 잘 모르고 지나치는 환자들도 종종 보게 되고, 오히려 심장 기능을 놓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여전히 의료급여로 모든 혜택들을 누리고 유지하는 환자들도 있다. 나라의 복지는 누구 한 사람으로 결정되는 문제는 아니며, 어느 나라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 사각지대였던 창신동 모자 비극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나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고 하루 이틀 언론에서 크게 다루고 지금은 어디에서도 크게 논의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아직 의료계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의료진을 제외하고 환자들 측면만 보더라도 희귀질환자들의 의료비 지원, 신약의 보험화, 중증 환자들의 의료비 지원, 균형 잡힌 지역과 준·종합 병원의 지원 등 많은 환자들이 제대로 의료 복지를 누리기 위해서 의료가 정치에 이용되지 않고 환자들을 위한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 언론에서 눈치를 보면서 어느 정치인의 행보나 불필요한 트집과 언쟁을 다루기보다는 진정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움직임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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