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52] 소통과 고통

백영옥 소설가 2022. 5. 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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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어쩌면 ‘변화 그 자체’보다 ‘변화의 속도’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사실 대한민국은 ‘일사불란’이란 말에 어울리는 속도감의 나라 아닌가. 미국에서 아직 시도하지 못한 쓰레기 분리 배출도 빠르게 정착됐고, 복잡해 보이던 ‘키오스크’가 상점을 점령한 일도 순식간이었다. 해외를 다녀도 대한민국처럼 현수막이 많은 나라를 본 적이 없다. 우리에게는 늘 알려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넘친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도한 정보 수준을 넘어 잘못된 정보가 많다. 덕분에 필요한 정보를 찾거나 날것의 정보를 가공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더 힘들어졌다. 마치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정작 먹을 물은 부족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주기적으로 내가 사는 공간을 정돈하듯 나를 둘러싼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능력이다.

‘미디어 단식’과 ‘디지털 디톡스’는 취사선택을 돕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주기적으로 휴대전화의 앱을 제거하는 것도 그렇다. 인터넷은 분명 소통 공간이지만 종종 ‘배우’는 간데없고 ‘관객’이 모두 무대로 올라가 귀 없는 사람처럼 서로의 주장만 늘어놓는 경우도 많다. 이때 정보는 마구 뒤섞여 ‘신호’가 아닌 ‘소음’으로 추락한다.

유대인들은 6일을 일하면 마지막 날은 쉬었다. 우리가 ‘안식일’이라 부르는 이 전통은 종교적 약속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삶의 원칙이었다. 한 달 동안 일출에서 일몰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이슬람의 ‘라마단’ 역시 멈추고 쉬는 행위다. 몇 년 전부터 주목받은 각종 단식은 쉬지 않고 작동하는 우리 몸에 차단 버튼을 눌러 몸의 면역력을 증강하는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24시간 연결된 사회에서 ‘단절’은 더 깊이 연결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삶의 기술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자기 자신을 잘 데리고 노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한 건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이다. 적당한 소통과 교류는 기쁨이 되지만 타인과의 과도한 소통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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