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듣기 싫은 소음 대신..

2022. 5. 1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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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이 생긴 것은 한 달쯤 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라디오 주파수를 잘못 맞췄을 때 들리는 잡음 비슷한 소리가 나더니, 한겨울에 창문을 사납게 뒤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바뀌더니, 그것이 다시 저벅저벅 행군하는 군인들의 발소리로 바뀌었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일상생활에서 그것들을 입에 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내 삶과 동떨어져 있는 무엇인가 때문에 종일 괴이쩍은 소리에 시달려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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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이 생긴 것은 한 달쯤 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라디오 주파수를 잘못 맞췄을 때 들리는 잡음 비슷한 소리가 나더니, 한겨울에 창문을 사납게 뒤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바뀌더니, 그것이 다시 저벅저벅 행군하는 군인들의 발소리로 바뀌었다. 모두 잠든 깊은 밤이면 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해져 동이 트도록 잠들지 못했다. 밤이 엉망이니 낮도 엉망이 됐다. 밤낮으로 나는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저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게 유스타키오관입니다. 의사가 볼펜 끝으로 벽에 걸린 귀 내부 구조도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귀 내부와 외부의 압력이 같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지금 제 기능을 못해서 이명이 생긴 겁니다. 유스타키오관이라.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그것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났다. 당시 내게 유스타키오관은 시험에는 자주 나올지 몰라도 졸업하고 나면 죽을 때까지 더는 입에 담을 일이 없을 것 같던, 그러니까 미토콘드리아라든가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 우랄알타이어족 등 실용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인상적이었던 낱말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일상생활에서 그것들을 입에 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니, 생활이 아니라 소설에서조차 써먹어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 삶과 동떨어져 있는 무엇인가 때문에 종일 괴이쩍은 소리에 시달려야 한다니. 내 신체 기관의 일부라지만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유스타키오관인지 뭔지 때문에 이렇게 생활이 엉망이 돼버렸다니. 사실 증상의 원인만큼이나 어처구니없기는 의사의 처방도 마찬가지였다. 이명은 고칠 수 없습니다. 이명이 신경 쓰이면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곳에서 생활하세요.

이비인후과 건물을 빠져나왔다. 한낮의 거리에는 차량 경적 소리, 상점의 음악 소리, 행인들의 말소리 등 소음이 가득했다. 그 덕분에 이명은 전혀 들리지 않았으니 의사 말이 맞긴 맞았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대로 맞은편에서 유난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선거 유세 차량처럼 개조한 트럭 위에서 군복 차림의 노인들이 확성기를 들고 이미 사망한 어느 전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며 국민장을 치르기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저 소리를 안 들을 수 있다면, 이명은 끔찍하게 싫지만, 때에 따라 선택적으로 소음 대신 이명을 택할 수 있다면, 하고 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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