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죽음으로부터의 질주 "나, 날아갈래"[책과 삶]
[경향신문]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고요한 지음|나무옆의자|232쪽|1만3000원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시종일관 서울의 밤을 비춘다.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두 20대 남녀는 자정 넘어 일을 마치면 새벽 첫차가 올 때까지 산책하듯 서울 거리를 누빈다. 때로 도보로, 때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하는 이 봄밤의 산보는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하다. 첫차가 다닐 때까지 24시간 불 켜진 맥도날드에서 밤을 지새우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가난한 청춘에게 현실은 봄밤처럼 산뜻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취업난과 불안한 미래, 죽음에 대한 오래된 트라우마, 가족에 대한 죄책감 등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이들의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를 털어내려는 듯 두 청년은 사뿐하게 서울 곳곳을 누빈다. 천국상조라고 쓰인 검은 조끼를 입은 재호, 길에서 주운 하얀 면사포를 쓴 마리를 보고 흠칫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들은 덕수궁 앞에서 ‘이리 오너라’를 외치고, 서울역사박물관 앞 전시된 전차에 들어가 손을 흔들기도 한다. 죽은 자들의 공간인 장례식장에서 시작된 이들의 밤은 마치 꿈이나 환상 속을 누비듯, 서울 곳곳의 풍경을 비추며 이어진다. 달빛을 받으며 날아오르는 오토바이, 청계천에서 튀어올라 인왕산으로 달아나는 물고기 등 환상적인 이미지가 영화처럼 펼쳐진다. 하늘로 헤엄쳐 날아오르는 물고기를 쫓아 인왕스카이웨이로 라이딩을 하며 둘은 말한다. “우리도 언젠가 저 물고기처럼 훨훨 날아가는 날이 오겠지.”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심사위원단은 “죽음의 이미지가 압도하는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서울 밤의 시내를 풍경으로 세계를 스케치하는 이 소설은 청춘의 막막함과 외로움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는 가운데 여백의 미를 보여 준다”고 평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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