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아·가·패' 인사
[경향신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서 흥미로운 자료가 나왔다. 장차관급 89명 인사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 출신이 44명, 고려대 출신이 12명이라는 것이었다. 결론은 이러했다. “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맥이 주를 이룬다는 일부 주장은 맞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가 극구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소영’이라는 기발한 조어는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 인사를 시기별로 분석한 한 기사에는 서울시장 같은 창업기에는 능력에 따라 사람을 썼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수성기에는 경력에 따라 자리를 준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말로는 능력만 보겠다고 했지만 고소영 내각으로 비판받은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 장차관급 인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며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로지 능력만 보겠다고 했으나, 실상은 경력만 화려한 인물이 등장한 점은 이명박 정부 때와 유사하다.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다. 검찰총장 시절 중용했던 인물들이 대통령실과 내각에 두루 포진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총장 시절 최측근이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복두규 인사기획관·이원모 인사비서관·주진우 법률비서관·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윤재순 총무비서관·강의구 부속실장도 임명됐다. ‘서초동 대검찰청’이 한강 다리만 건너 ‘용산 대통령실’로 통째 옮겨온 듯한 풍경이다.
오랜 인연을 가진 인물을 뽑는 소위 ‘지기(知己) 인사’도 특징적이다. 대광초등학교 동기인 김성한 안보실장, 충암고 동문인 김용현 경호처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대 법대 선배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은 학연으로 얽힌 절친이다. 야당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같은 경우 ‘40년 지기’로 알려지자 뒤늦게 정정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인사 스타일을 두고 ‘아가패 인사’(아는 사람·가까운 사람만 쓰는 패밀리 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아는 사람과 가까운 사람들만 능력 있는 것이 아니다. ‘아가패 인사’는 ‘널리 인재를 구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