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호스럽다"..그 순간을 위해 홀린 듯, 옷을 짓는다

이영욱 2022. 5. 13. 17: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eekend Interview] 패션·무용·공간 디자인까지..'팔방미인 디자이너' 정구호 존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미엄 여성복 `존스`, 영화 `황진이`, 쌈지길 등 기성복부터 영화 의상, 공간 디자인까지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정구호 존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패션은 내 인생의 업보 같다"고 말한다. [이충우 기자]
가난한 유학생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해봤고 인테리어 디자인으로도 재능을 인정받은 그. 패션 디자인 경험은 전무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구호(KUHO)'로 보란 듯이 성공한 남자. '정사'(1998) '텔 미 썸딩'(1999) '쓰리'(2002) '스캔들'(2003)'황진이'(2007) 등 영화 의상부터 쌈지길 등 공간 디자인까지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끼 있는 디자이너'. 정구호 존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57)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 디렉터는 최근 글로벌세아 패션기업 에스앤에이와 협업해 2021년 하반기 컴젠, 올봄 프리미엄 여성복 존스와 티리버럴이라는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를 선보였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는 정 디렉터를 만나 패션 디자인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새 브랜드 론칭으로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출시한 컴젠은 가성비가 좋은 뉴밀레니얼 남녀를 위한 브랜드이며, 존스는 시대 흐름과 상관없이 오랜 기간 우아하고 멋스럽게 입을 수 있는 '타임리스 클래식'을 표방하고 있어요. '럭셔리 시니어'라는 소비자층은 패션에서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전엔 패션 브랜드를 만들 때 국내 브랜드와 경쟁할 것을 염두에 뒀는데, 요즘은 해외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정구호 하면 '구호(KUHO)'가 생각납니다.

▷구호는 1997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제 개인 부티크 브랜드로 론칭했습니다. 국내 한 패션기업과 협업해 백화점에도 전개했죠. 제 브랜드를 인수했던 그 기업이 브랜드를 다시 매각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매각 금액이 너무 커서 제가 도저히 다시 인수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어요. 그때 제일모직이 나서 제 브랜드를 인수하게 됐습니다.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구호를 점찍었단 이야기가 있던데요.

▷당시 여성복 분야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삼성이 여성복을 육성하기 위해 2003년 구호를 인수한 것인데,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이던 이서현 이사장이 구호를 인수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개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성이 새로운 여성복 브랜드를 출시하기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미 알려진 브랜드인 구호를 인수하자는 것이었죠.

―지금까지 관여한 브랜드가 정말 많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손가락을 꼽으며) 기억이 다 안 날 정도로 많네요. 물론 전부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멋쩍게 웃으며) 당연히 망해서 사라진 브랜드도 있고요. 제일모직에 있을 때도 구호, 르베이지, 빈폴, 비이커 등 10개에 가까운 브랜드를 만들거나 새 단장해 선보였어요. 휠라, 아모레퍼시픽 샴푸 려, 정관장 동인비, 인사동 쌈지길도 제가 기획했습니다. 쌈지길이 기억에 남는데, 디자인을 고민하다가 인사동의 시작과 끝 지점 거리를 잰 뒤 그 길이만큼 도로를 나선형으로 설계했죠. 여기에 인사동 콘셉트에 맞춰 한국 전통 공방들을 입주시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지금의 쌈지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나요.

▷패션을 정말 좋아해서 결국 패션업계에 종사하게 됐지만, 사실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브랜딩'이었어요.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그 브랜드가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것, 패션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다룰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어요. 패션은 확장성·유행성이 크다 보니 브랜드를 알리기 가장 좋거든요. 그래서 시작이 패션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고, 호주 르코르동 블뢰에서 요리도 공부했어요.

―영화 '스캔들' '황진이' 의상도 디자인했고, 국립무용단 창작무용 연출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셨네요.

▷묘한 인연에서 시작된 건데요. 시작은 무용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바,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안은미, 안성수 등 현대무용가도 현지에서 공부 중이었거든요. 이분들과 교류하면서 현대무용에 눈을 떴는데, 디자인 학교 출신 경력을 살려 무대 의상과 메이크업을 종종 도와드렸어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엔 공연 아이디어도 내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출까지 하게 된 것이죠. 영화에는 '정사' 이재용 감독의 의상 디자인 제안을 수락하면서 뛰어들게 됐습니다. 의상과 영화 미술이 안 맞는다는 지적이 있어서 내친김에 영화 미술까지 하게 됐죠. 영화 '스캔들'도 기억에 남는데, 한복·공예 장인들에게 1년 넘게 배우고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 영화 속 의상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존스의 뮤즈 강소라 모델. [사진 제공 = 존스]
―패션 디자이너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스타트업 창업, 레스토랑 운영 아니면 공연업계에 종사했을 것 같아요. 제가 20년 전쯤에 라이프스타일 매니지먼트 컴퍼니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멀티 리빙 스토어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수익은 전혀 없이 2년 동안 전 세계 모든 박람회를 돌아다니면서 관련 자료를 모았어요. 큰 방 한쪽 벽면이 가득 찰 정도로 자료를 모아놨는데, 결국 사업을 유지하기 힘들어서 모 기업에 매각하며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요즘 '리빙' 분야가 큰 관심을 받는 걸 보면서 너무 시대를 앞서갔나 싶기도 해요(웃음).

―다시 태어나도 패션 디자이너 하실 겁니까.

▷패션은 정말 매력 있는 분야지만, 직업으로선 정말 어렵습니다. 보통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일하면 '달인'이 된다고 하는데, 패션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져서요. 제 나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20대 디자이너에게 밀리는 경우도 있고요. 1년에 두 번 꼬박꼬박 시험(패션쇼)도 봐야 합니다. 시험 보기 전엔 너무 힘들어서 다 내려놓고 싶다가도, 시즌이 끝나기 무섭게 뭔가에 홀린 듯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만큼 패션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경험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디자인에서 창의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잡는 방법이 있나요.

▷패션쇼에서 보통 60벌의 옷을 선보이는데요. 60벌 중 제 마음에 드는 옷은 마지막 5~6벌이에요. 나머지는 (판매를 목적으로) 다 조율된 옷이고, 순수하게 제가 하고 싶은 옷은 마지막에 선보이는 몇 벌입니다. 보통 볼륨(수량) 대비 창의성 욕구는 반비례하거든요. 볼륨이 큰 기성복보단 작은 부티크로 할 때 하고 싶은 것을 더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제가 만든 옷이 가장 '정구호스럽다'는 평가를 받을 때예요. 나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만들어졌구나 싶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정구호스럽다는 것은 내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의미이거든요. 누군가 제가 디자인한 옷을 봤을 때 (브랜드) 라벨이 없음에도 "저건 정구호가 한 거네" 이런 평가를 받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이 또 있을까요.

존스의 뮤즈 강소라 모델. [사진 제공 = 존스]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요.

▷보통 하루에 15~20개 미팅을 하는데, 다 제가 답을 내놔야 할 것입니다. 일은 잊고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고 싶어서 요리를 합니다. 요리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죠. 제가 발효음식을 좋아하는데 식혜, 장아찌, 장류 이런 건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해요. 집에 발효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를 따로 둘 정도입니다. 제게 요리는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정구호만의 경건한 의식'인 셈이죠.

―디자이너로서 영감은 어떻게 얻습니까.

▷따로 뭘 하진 않아요. 항상 주변의 많은 것에 관심을 두고, 찾아가서 직접 보고 느끼려고 합니다. 전 메모를 정말 싫어하는데, 메모를 하면서 그 틀에 갇히는 게 싫어서예요. 보고 느끼고 잊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제 머릿속 어딘가에 그 내용이 저장돼 있다가 저도 모르는 새 저절로 튀어나오게 됩니다.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패션에 직접 관련 없는 것도 많이 보러 다니고 하는 모든 것이 제겐 좋은 경험이 되더군요.

―요즘 명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습니다.

▷명품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어요. 명품을 제작하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명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명품 브랜드는 오랜 시간 지속된 품질과 디자인의 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에요. 우리나라에서 100년 넘게 이어진 브랜드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국적 럭셔리'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같은 맥락인가요.

▷살아남는 브랜드가 되려면 또렷한 브랜드 사명감을 가지고 품질과 (브랜드의) 감성을 유지하면서 소비자에게 정중히 접근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브랜드가 오랜 시간에 걸쳐 명품이 되는 것이죠. 어떤 시대가 오더라도 브랜드만의 품질과 철학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건 정부 차원에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에요. 파리패션조합 담당자를 만났을 때 일인데, 그분이 제게 "한국은 담당자가 너무 자주 바뀌어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내더군요. 일본, 영국, 프랑스 등처럼 자국 패션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긴 호흡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구호에게 '패션'이란 무엇인가요.

▷피해 갈 수 없는 '업보'랄까요(웃음). 제가 너무 좋아해서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고생스럽고 힘들지만 제가 정말 좋아해서 한 거니까요. 다시 태어나도 패션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치 않을 겁니다. 이영욱 기자

▶▶ 디자이너 정구호는…

1965년생. 디자인 명문인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구호(KUHO)'를 론칭했다. '정사(1998)' '스캔들(2003)' '황진이(2007)' 등 영화 의상부터 국립 무용단 '단' '묵향' '향연' '산조' 등의 공연 연출 등을 맡으며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2015~2019년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을 지냈으며, 글로벌세아 패션기업 에스앤에이와 협업해 2021년 컴젠, 2022년 존스, 티리버럴을 출시했다.

[이영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