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2년 만에 LPBA '퀸' 복귀한 강지은

정완주 기자 2022. 5. 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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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성공신화 일군 '군산의 딸'
프로당구 선수 강지은이 10일 경기 부천시의 한 모처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대부분의 당구선수는 기존 선배 선수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방식으로 선수의 길을 걷는다. 최근에는 당구 아카데미처럼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코스를 밟기도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강지은(30.크라운해태라온) 선수는 특이하다. 본격적으로 당구를 접한 시기도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였다. 출발도 늦었지만 딱히 스승도 없이 거의 독학으로 당구에 입문했다. 자기 실력에 대한 정립도 채 안 된 시기에 PBA로 넘어와 프로의 길을 걸었다. 프로 입문 4개월여 만에 여자프로리그 LPBA 4차 대회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PBA 최초로 20대 우승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것도 세트 스코어 0대2로 지고 있다가 3대2로 역전 우승하는 불사조 기질을 보여줬다. 깜짝 우승 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그는 2년 2개월 만에 다시 우승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강지은은 지금도 늦깎이 선수의 성공신화를 써 나가고 있다.

부모 반대 뿌리치고 무작정 상경 당구장 매니저로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자란 강지은은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라 스포츠를 즐겼다. 초등학교 때는 여자 축구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당구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포켓볼과 4구를 가끔 즐겼다. 대학 시절에는 학과 선후배들과 시간 때우기용 3쿠션을 치는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남성들 틈에 끼어 3쿠션 게임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서인지 당구장 사장이 동호회 활동을 권유했다. 그는 당구가 제법 재미가 있고 흥미도 생겨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고 간간이 동호회 시합에도 참가했다.

프로당구 선수 강지은이 10일 경기 부천시의 한 모처에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당구선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했다. 당구 전문채널인 빌리어즈TV가 출범하면서 당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던 2015년. 강지은은 전국 규모의 여자3쿠션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했다. 서울에서 열린 제1회 '빌플렉스배 국민생활체육 전국여자 국제식 3쿠션대회'였다. 경험을 쌓기 위해 재미 삼아 출전한 그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실력이 쟁쟁한 아마추어 여자선수들과 어깨를 겨루고 성적도 뒤따르자 당구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연습량도 늘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 다수의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꾸준하게 입상권에 들자 서울에서 취업 제의가 들어왔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당구장에서 게임 매니저를 할 생각이 있느냐는 제의였다. 강지은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수락했다. 문제는 부모님이었다.

"다 큰 딸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가 당구장 일을 하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부모님이 깜짝 놀라셨죠. 그러면서 '뭘 믿고 서울까지 가느냐', '미친 것 아냐' 등의 반응을 보이시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당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편이었고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할 만큼 수입을 보장받는 일자리도 아니었기에 부모님의 반대는 당연했다고 봐요."

그러나 강지은은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는 결단을 내렸다. 당구장 근처에 숙소를 구한 뒤 본격적으로 당구장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이때가 2016년이었다.

그는 서울로 올라온 김에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 이듬해인 2017년 2월 서울당구연맹에 등록해 정식 선수로 활동했다. 그리고 5개월 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단풍미인배 전국당구대회'에서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단풍미인배라는 타이틀 때문에 친구들이 '무슨 미인 대회를 네가 나가?'라면서 놀리기도 했지만 문체부 장관이 후원하는 전국대회라 제법 규모가 컸어요. 결승에서는 당시 국내 여자랭킹 1위를 유지했던 김보미(신한금융투자) 선수와 만났는데 저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어서 깜짝 우승이라 할만 했죠. 우승상금은 150만원에 불과했지만 저한테는 첫 걸음을 뗀 당구선수로서 이정표가 된 대회라고 생각합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1-22시즌 휴온스 LPBA 챔피언십 우승, LPBA 선수들과 함께 강동궁 프로 결혼식에 참석, 20-21 신한금융투자 팀 리그 중 팀 동료 선수들의 응원 모습, 김상아·김세연·임정숙 선수와 함께한 제주여행 모습.

LPBA 첫 우승 후 슬럼프...인고의 세월

강지은은 PBA가 출범하자 바로 합류해 프로선수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생계를 위해 당구장 매니저일을 병행하면서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기회는 의외로 빨리 다가왔다.

2019년 LPBA 선수로 등록하고 4개월여 후 4차 대회인 TS샴푸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일궈냈다. 당시 박수향 선수를 상대로 0대2로 끌려갔다가 역전 우승으로 트로피를 차지한 것이다.

"막상 결승까지 올라가니까 '내가 과연 결승에 오를 실력이 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던 차에 초반 2세트까지 경기 내용이 너무 엉망진창이었던 거예요. 제 실력에 대한 불신, 방송 카메라와 조명, 많은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까지 너무 큰 압박감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고 여겼죠. 오히려 결승까지 올라온 것에 만족하자고 생각한 이후 마음이 편해지면서 역전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TS샴푸 챔피언십은 추석 연휴 기간에 열렸다. 아쉽게도 부모님은 현장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딸에 대한 섭섭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명절 때라 부모님은 집에서 TV로 경기를 보고 계셨는데 경기를 마친 후 엄마랑 통화를 하니까 아빠가 아무 말씀도 없이 눈물을 보였다고 하세요. 저도 울컥했죠. 그동안 저에 대한 걱정과 함께 상심도 컸을 텐데 '잘했다'라는 말씀만 반복하셨어요."

20대 나이에 우승한 이력은 크라운해태 팀으로 입단하는 계기가 됐다. 꽃길만 걷는 것 같았던 그의 프로 인생은 오히려 첫 우승 이후 틀어지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까지 2년이 넘는 인고의 세월을 버텨야 했다

프로당구 선수 강지은이 10일 경기 부천시의 한 모처에서 진행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본선은커녕 예선 탈락을 반복하는 동안 자신감도 떨어지고 암울했죠. 돌이켜 보면 결국 부담감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우승자 출신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경기가 부진할 때면 외부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먼저 의식했어요. 결국 심적인 압박과 부담이 경기를 짓누르는 슬럼프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 시즌은 완전히 망친 셈이에요."

두 번째 우승은 2021년 11월 열린 휴온스 챔피언십 대회였다. 결승 상대는 국내 최정상급 기량을 자랑하는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블루원엔젤스). 부진의 시간이 길었던 강지은은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 선수가 강자이다 보니 오히려 "내 공만 치자"라는 멘탈을 유지할 수 있어서 4대1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라이벌이자 친동생 같은 김세연과의 우정

강지은과 김세연(휴온스)은 당구계에서 인정하는 '최애' 선후배 사이다. 강지은이 세 살 위 언니다. 동호회 시절부터 알고 지낸 그들은 나이대도 비슷하고 시합장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선수등록은 물론 프로데뷔도 같이 했다. 성격도 비슷한 면이 많고 말도 잘 통했다. 급기야 2018년 두 선수는 아예 집을 같이 구해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말 그대로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세연이가 옆에 있어서 힘든 시기도 잘 견딘 것 같아요. 제 당구 폼이 틀어지거나 이상해졌을 때 바로 직언해 줄 수 있는 관계이거든요. 저한테는 친동생이나 다름이 없죠. 물론 같이 살면서 여느 자매들처럼 자주 싸우기도 하지만 결혼 전까지는 계속 같이 지낼 것 같아요."

강지은이 심각한 슬럼프를 겪는 동안 김세연은 승승장구했다. 김세연은 TS샴푸배에서 거푸 우승을 했고 우승상금 1억원이 걸린 SK렌터카배 월드챔피언십 왕중왕전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겉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선수의 성적 차이가 극과극으로 엇갈린 탓이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격려와 응원은 큰 힘이 됐다.

"우리 둘은 서로 경기를 모니터링해 주면서 직설적인 조언도 마다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만큼 신뢰가 깊어서 가능한 일이죠. 만약 세연이가 우승을 못 했다면 조언을 해도 상처를 받을까봐 저도 부담을 가졌겠지만 그럴 일이 없었다는 게 다행이긴 해요. 서로 경기마다 조언을 하지만 막상 연습경기를 하지는 않아요. 일정이 서로 맞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 연습경기는 피하게 되더라고요."

프로당구 선수 강지은이 10일 경기 부천시의 한 모처에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결국은 기본기가 답이다"...체력·집중력 다지기

강지은의 올해 목표는 기복이 없는 일관된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긴 슬럼프를 거치는 동안 두 가지를 깨달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 필요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기술은 결국 탄탄한 기본기라는 점이다.

자신의 경기 스타일에 적용하면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선수들의 영상도 자주 보는 편이다. 강동궁(SK렌터카위너스) 선수와 조재호(NH농협카드그린포스) 선수가 그 대상이다. 그들의 상황별 스트로크와 샷이 나가기 전까지의 루틴 등을 유심히 보고 참조한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3쿠션을 접하다 보니 기본기 부분에서 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체력이 떨어지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어김없이 자세가 비틀리는 상황이 반복돼요. 자세가 불편해지면 스스로도 안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고 결과도 그렇게 나오기 일쑤죠. 어떤 상황이든 엎드리는 순간 '공이 맞아 있다'라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결국은 기본기가 뒷받침이 돼야 하거든요."

그래서 최근 자세와 스트로크 등과 관련한 기본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체력 훈련도 병행 중이다. 흔들림이 없는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다. 다이어트는 물론이고 근력 강화를 위한 헬스 운동을 시작했다.

강지은은 당구 스승을 따로 모시지 않았다. 동호회 활동을 통해 틈틈이 모르는 부분을 배워 나갔고 동반자인 김세연과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있다. 소속팀에서는 김재근 선수로부터 멘탈과 관련한 부분을, 기술적으로는 이영훈·선지훈 선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당구선수로서 그의 꿈은 소박하다. 선수 생활을 이어갈 때까지는 좋은 경기력을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자기 이름을 내건 당구장을 여는 것이 목표이다.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 능력이 닿을 때까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해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그 이후에는 '강지은'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당구클럽을 오픈하고 싶어요. 선수로서 부끄럽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만 가능하겠죠. 후배를 양성하는 것도 그때쯤 가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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