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소부장의 시간" IPO 한파서 살아남은 회사들 보니

노자운 기자 2022. 5. 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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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社, 수요예측 경쟁률 1000대1 이상..9개가 소재·부품·장비 기업
"바이오 반사이익, 공급망 차질 영향"

기업공개(IPO)에 나선 회사들이 기관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가운데, 소재 및 부품·장비를 만드는 제조 업체들은 수요예측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소부장’으로 불리는 제조 업체들은 올 들어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 상위권을 싹쓸이하고 있다. 1000대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한 회사가 9개나 된다. 이들은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청약에서도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IPO 시장 한파 속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13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관 수요예측에서 1000대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한 14개 업체 중 9개가 중소·중견 소부장 기업이었다.

지난 2일 수요예측을 끝낸 시스템반도체 디자인 솔루션 기업 가온칩스가 1847.12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공모가를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 1만1000~1만3000원)보다 높은 1만4000원으로 결정했다. 반도체 부품을 만드는 비씨엔씨는 앞서 지난 2월 1831.23대1의 경쟁률로 수요예측 흥행에 성공했으며, 공모가를 밴드(9000~1만2500원) 상단보다 높은 1만3000원으로 확정했다.

그 외에도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만드는 지투파워, 알루미늄 주조 업체 세아메카닉스, 그리고 유일로보틱스, 풍원정밀, 퓨런티어, 아셈스, 이지트로닉스가 수요예측에서 1000대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모두 공모가를 밴드 상단 이상으로 정했다. 기관 수요예측 이후 실시한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청약에서도 대부분 수천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소부장 기업들의 선전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예비심사 및 공모청약 철회 사태와 반대된다. 올 들어 총 12개 기업이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에서 미승인을 받고 심사를 철회했거나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하며 공모 일정을 취소했다.

대표적인 예는 연초 공모를 철회한 현대엔지니어링이다. 최근에는 SK쉴더스·원스토어·태림페이퍼가 줄줄이 상장을 중도 포기했다. 바이오 기업 보로노이도 상장 예심을 통과했으나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고 공모 일정을 접은 후 증권신고서를 다시 작성 중이다. 애니메디솔루션·드림인사이트·미코세라믹스·파인메딕스·에이엘티·퓨쳐메디신·한국의약연구소는 상장 예심에서 미승인을 받고 심사를 자진 철회했다.

소부장 기업들은 특히 바이오 업체들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거래소의 상장 예심을 통과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은 알피바이오, 보로노이, 루닛 세 곳뿐이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바이오 기업 중 상당수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반면, 소부장 기업들은 실제로 매출을 내는 등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다”며 “이 때문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제약·바이오 업종에서 소부장쪽으로 이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는 소부장 기업의 상장이 제도적으로 한층 더 수월해지기도 했다. 거래소는 지난 2019년 말 소부장 전문 업체들의 상장 활성화를 위해 소재·부품 전문 기업으로 확인 회사에 상장 예심 기간을 30영업일 내외로 단축해줬다. 또 기술특례 상장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은 원래 2개의 기관으로부터 A등급과 BBB등급 평가를 받아야만 예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소재·부품 전문 기업의 경우에는 1개 평가 기관으로부터 A 이상의 등급을 받으면 청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소부장 특례상장 제도로 인해 시장에서 ‘거래소가 소부장 기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인식이 생기며, 관련 업체들에 대한 투자 수요도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차질 역시 소부장 기업들의 투자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 벤처캐피털(VC) 대표이사는 “공급망 병목현상이 계속되며 반도체 부품, 소재의 수급에 차질이 생겼고, 이를 미리 확보하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소부장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미·중 갈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반사이익을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다만 설비투자(CAPEX)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소부장 업체들의 특성상,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면 투자 매력은 지금보다 크게 떨어질 수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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