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머스크'서 '사기꾼 홈스'로..테라 권도형은 누구
루나·UST·비트코인 연쇄 급락 '루나 쇼크'에
"가상자산계 엘리자베스 홈스" 비난도
‘한국판 일론 머스크’, ‘젊은 천재’,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인’(2019년 포브스), ‘비트코인 고래.’
최근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코인 루나와 스테이블 코인 테라달러(UST) 개발자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지칭하던 수식어다. 하지만 두 코인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폭락하며 그 여파가 비트코인 등 타 대형 가상자산 급락으로까지 옮겨 붙자 화려한 평가는 180도 뒤집어졌다. 일각에서는 그의 사업 모델이 일종의 사기에 가깝다는 비판도 나왔다.
13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30살인 권 대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회사를 두루 거친 청년 창업가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로 불리는 스탠퍼드대학에 입학,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애플과 MS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2015년에는 와이파이 공유서비스 ‘애니파이’를 내놓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를 설립한 건 2018년으로, 권 대표는 소셜커머스 티몬 창업자 신현성 대표와 함께 자체 개발 코인을 내놓기 시작했다. 테라폼랩스는 루나, UST, 앵커프로토콜이란 3개의 축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앵커프로토콜’은 회사가 만든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서비스다.
아무런 법적 신뢰 장치 없이 ‘코인으로 코인을 버는’ 구조는 가상자산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개당 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설계된 UST 가격을 ‘스테이블’(안정적?stable)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회사는 자체 코인 루나로 공급량을 조절하는 알고리즘 방식을 채택했다. 아울러 UST를 앵커프로토콜에 예치할 경우 연 19.5%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했다.
달러 등 법정화폐를 예비금으로 활용하는 타 스테이블 코인과 차별화된 데다 이자율이 3~5%대인 타 디파이 플랫폼보다 월등히 높은 이율을 약속하자 투자자들은 속속 테라 생태계에 모여들었다. 초기에는 ‘다단계’, ‘폰지 사기’ 등 비판도 나왔지만 지난해 시장 호황기 속에선 알고리즘이 문제없이 작동하면서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는 명성을 얻었다.
‘도권’(Do Kwon)이란 아이디를 쓰는 권 대표의 트위터 팔로워는 66만 명을 넘겼다. 투자자들은 스스로를 ‘루나틱’이라 부르며 루나를 지지하고 권 대표를 따랐다. 지난해 7월 영국의 한 경제학자가 알고리즘에 의한 스테이블 코인 모델이 실패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권 대표는 “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며 조롱과 함께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 루나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 초까지 1만 8000배 이상 오르며 전체 가상자산 중 상위 10위권에 안착했고 앵커프로토콜은 이더리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디파이 플랫폼이 됐다.
또 권 대표는 약 한 달 전 대형 비트코인 투자자를 뜻하는 ‘비트코인 고래’로도 주목받았다. 그가 세운 비영리조직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가 UTC 가치 유지를 위한 준비금을 추가로 마련하고자 비트코인을 약 15억 달러(약 1조 9300억 원)어치 사들이면서다.
하지만 가상자산 시장 및 투심 위축세 속에서 테라폼랩스의 알고리즘은 정상 작동을 멈췄다. 시장과 함께 UST 가격이 동반 하락하자 알고리즘이 루나 발행량을 자동으로 늘렸지만 사람들은 루나를 사지 않았고 루나 가격도 직전 대비 최대 99%까지 떨어졌다. 결국 루나와 UST가 서로를 떠받쳐주기는커녕 서로가 서로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권 대표에 ‘비트코인 고래’ 수식어를 붙게 했던 비트코인 대량 매집 행위 역시 ‘루나 쇼크’ 속 비트코인 가격까지 끌어내리는 결과를 낳았다. UST 가격 방어를 위해 LFG를 비롯한 테라폼랩스가 가진 비트코인을 대거 처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지난 12일 한때 3만 600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연쇄적으로 떨어지자 일각에서는 이를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의 가상자산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급락이 가상자산 시장의 전반적이고 장기적인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테라의 붕괴가 가상자산판 리먼 사태로 번지지 않더라도 이 사건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권 대표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15억 달러(약 1조 9200억 원) 규모 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테라폼랩스가 가상자산 업계 여러 기업과 접촉했으나 사실상 자금 조달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상자산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의 데이비드 모리스 수석 칼럼니스트는 “권 대표는 가상자산계의 엘리자베스 홈스”라고 비판했다. 엘리자베스 홈스는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리며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을 벌인 바이오벤처 ‘테라노스’의 창업자다. 모리스는 이어 “그는 함선에 구멍을 낸 뒤 침몰하는 배의 구멍에 쏟아부을 자본을 찾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태는 투자자들의 실제 위협으로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날 경찰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6시께 권 대표의 집에 신원 미상의 남성이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용의자를 뒤쫓는 한편 권 대표의 배우자를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 대상자로 지정했다.
조윤진 기자 j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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