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절반이 양반의 성노리개였다고?"..조선사 전공 교수의 반박

한겨레 2022. 5. 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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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여성 인구의 절반이 언제든 주인인 양반들의 성적 쾌락의 대상이었다."일본군 '위안부' 피해 배상금을 두고 "밀린 화대"라고 표현하고 "동성애는 정신병"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던 김성회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김성회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조선시대 "여성노비는 외거를 하더라도 양반 주인이 수청을 요구하면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은 역사학계에서는 일반화된 이론이다. 결국 여성 인구의 절반이 언제든 주인인 양반들의 성적 쾌락의 대상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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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성회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 배경 사진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의 모습. 대통령비서실 제공, 연합뉴스
“(조선시대에는) 여성 인구의 절반이 언제든 주인인 양반들의 성적 쾌락의 대상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배상금을 두고 “밀린 화대”라고 표현하고 “동성애는 정신병”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던 김성회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비하 발언을 사과한다며 올린 이 글에서 “조선조에 절반에 달하는 40~50%의 인구가 노비였고, 그중 노비 2세를 낳을 수 있는 여성노비가 더 선호됐다. 여성노비는 외거를 하더라도 양반 주인이 수청을 요구하면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은 역사학계에서는 일반화된 이론이다”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이런 그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조선정치사를 전공한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반박글을 싣는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120년 전쯤까지 이 땅에 살았던 여성 인구의 절반이 언제든 주인의 성적 쾌락의 대상이었다고 외치는 사람, 굳이 조선이 아니라 인간 세상의 어디에서라도 그 사회를 이루는 여성의 절반이 특정 계층의 성노예였다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으며,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까. 못된 사람들의 범죄행위를 그 사회의 일반적 상황으로 당연시하는 사람이 정부의 최중심부에 앉아 정책을 세우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김성회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조선시대 ”여성노비는 외거를 하더라도 양반 주인이 수청을 요구하면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은 역사학계에서는 일반화된 이론이다. 결국 여성 인구의 절반이 언제든 주인인 양반들의 성적 쾌락의 대상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오늘날 무뢰한이 혼자 길을 가는 여성을 습격해 성폭행을 저지르는 범죄를 근거로, 한국 여성 전체가 힘센 사람의 성폭행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같은 논리의 비약이다.

노비제도가 조선시대 역사의 어두운 면모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도적으로 사람을 돈 주고 사고팔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선시대에 대한 설명에서 노비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사회든 매우 다양한 면모를 지닌다. 조선시대 양반은 못된 짓도 많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체적으로 언제든 노비 여성을 불러 성노리개로 삼았던 계층은 아니다. 미국의 고 제임스 팔레 교수는 한국 역사학자들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조선시대를 노예제사회라고 규정하고 그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 역사학자다. 그런 그마저도 조선시대 양반을 이렇게 평가했다.

“조선 후기의 국가나 양반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한 지도력을 제공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나름대로 보다 높은 삶의 가치 기준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행동에 있어서 완전한 도덕적 성취, 가장에서부터 온 가족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전 국가에까지 미치는 개인의 도덕적 청렴성, 또 덕을 숭상하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이들 유교적 양반들은 자신들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다. (…) 조선 관료들의 빈번했던 고도의 부정행위 때문에 이러한 사실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사학회 편 <동양 삼국의 왕권과 관료제> 115쪽)

서양 박물관에 즐비한 금식기·은식기에 비견할 만한 조선시대 지배층의 사치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 없어서 아쉬울 정도다. 그만큼 조선시대 지배층은 절제와 검소를 주요 덕목으로 여겼다. 또, 조선은 600년 전 15세기에 일반 농민에게 과거에 응시해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했다. 그런 면모만을 과장 왜곡하여 조선은 성인(聖人)들이 통치하는 이상사회였다고 한다면 수긍하겠는가?

조선시대 노비들은 양반 신분의 자기 주인에 맞서 대등한 재판을 벌일 수 있는 소송권을 가졌고, 남녀 모두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소유권도 지녔다. 노비 여성 전체가 양반의 성 노리개였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과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현대 기준에 못미치는 바가 많지만, 그들이 먼 옛날부터 각고의 분투를 벌이며 거두어낸 성과를 부정하고 모독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실 비서관이 극도로 왜곡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외치면서 국민의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자 하는 마당에 난데없이 역사학계를 끌고 나와 들러리를 세웠다. 역사학자 누가 조선시대 여성 절반이 양반의 성노예였다고 주장하는가?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비뚤어졌을 뿐 아니라 학자들 공부까지 마음대로 왜곡하는 사람이 새 정부의 핵심을 이루는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기고] 오수창 |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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