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두려운'→'모범적'.. 외피만 바뀐 美 아시아인 혐오史

아시아인이라는 이유│정회옥 지음│후마니타스

올해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84세 타이계 남성이 아침 산책을 하다 폭행당한 끝에 숨졌다. 3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한인 여성이 흑인 여성에게 폭행을 당했고, 같은 달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백인 남성이 마사지숍에서 총기를 난사해 아시아계 여성을 포함한 8명이 사망했다.

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할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촉발·강화된 걸까. 정치학자 정회옥 명지대 교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는 170여 년에 이르는 길고 뿌리 깊은 역사가 있다고 단언한다. 책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오랫동안 다듬어진 관습과 신념의 결과물이라고 진단한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는 서구 중심주의와 인종주의라는 뿌리 깊게 내재된 관념 때문이고 전염병과 경제 위기, 정치 및 대중매체의 선동이란 외적 자극으로 인해 구체적 행동으로 분출되고 있다고 봤다.

저자는 미국으로 대상을 좁혀 어떻게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작동했는지 분석한다. ‘더러운’ 아시아인에서 ‘두려운’ 아시아인을 거쳐 ‘모범적인’ 아시아인에 이르게 됐는지 170여 년에 걸친 혐오와 차별의 역사다.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이주하는 아시아인이 많아지면서 아시아인에게는 ‘더럽다’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이후 황화론을 통해 ‘위험한 황인종’이란 프레임이 더해졌다. 1960년대 이후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학력 아시아인이 미국에 대거 유입되면서 ‘모범적인’ 아시아인의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모범 소수 인종론’에 따라 아시아인은 백인의 조력자지만, 결코 미국에 편입될 수는 없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는다. 아시아인을 더럽다고 봤든, 위험하다고 봤든, 모범적이라고 봤든 모두 백인 주류 계층이 소수집단인 아시아인을 길들이는 지배 기제로 작동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통렬하다.

책은 아시아계 여성을 ‘순종적인 게이샤’ 혹은 ‘포악하고 사악한 드래곤 레이디’로 보는 백인 남성의 인종차별적이자 성차별적 관념도 문제 삼는다. 또 서구사회에서 혐오의 피해자인 한국이 중국인(화교)과 중국 동포(조선족)를 혐오하는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특히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관념은 ‘미개하고 위험하며 난폭한 아시아인’이란 서구 사회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낯선 존재에 대한 공포는 혐오를 야기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64쪽, 1만6000원.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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