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犯국가서 典範국가로.. 독일 성공의 힘은 기억·반성

기자 2022. 5. 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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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언론인 존 캠프너는 ‘독일은 왜 잘하는가’에서 오늘날 독일이 성숙하고 부강한 나라가 된 비결로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 등을 꼽는다. 게티이미지뱅크

■ 독일은 왜 잘하는가 | 존 캠프너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충동적 브렉시트로 왕따된 영국

트럼피즘으로 통제 불능의 미국

중화부활 노리는 중국 등과 차별

1949년 제정된 기본법 바탕해

진보적 민주국가 표본으로 성장

2차 대전 뒤 4차례 개혁사 다뤄

독일은 기적의 나라다. 1871년 건국 이후 약 150년 동안 독일은 최악과 최선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비스마르크 시대에서 히틀러 정권에 이르는 74년간 독일은 악당 국가였다. 군국주의와 파시즘에 사로잡혀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를 저질러 유대인, 동성애자, 장애인 등을 학살하고 억압한 공포와 독재, 전쟁과 범죄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다. 철저한 속죄와 반성, 품위와 안정, 발전과 성숙의 역사를 보여 주면서 현대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모범으로 변신했다.

‘독일은 왜 잘하는가’에서 영국 저널리스트 존 캠프너는 전범국이라는 뼈아픈 과거를 반성 삼아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번영을 누리는 중인 독일의 비밀을 파헤친다. 저자의 비교 대상은 우선 ‘충동적 브렉시트’ 이후 혼란에 빠진 ‘고아 국가’ 영국이다. 특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자유를 부르짖어 재앙을 불러온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역설해 시민을 지켜낸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리더십을 대비한다. 그러나 독일에 배울 나라가 ‘실패 국가’ 영국만은 아니다.

트럼피즘에 포획당한 통제 불능의 미국, 중화의 부활을 꿈꾸면서 힘자랑을 일삼는 중국, 복수심에 불타 전쟁을 저지르는 러시아, 과거를 부정하고 군국주의 망령에 휘둘리는 일본을 보라. ‘인류 종말 전쟁’의 시한폭탄이 돌아가는 것 같다. 브라질, 터키 등 곳곳의 국가들이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에 무릎 꿇고 민주주의의 불안정을 부추기는 중이다. 이러한 시대에 독일은 품위 있는 민주주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 문화 다양성 및 공적 지식인에 대한 존중 등 교양 있고 부유하고 진보적인 민주 국가의 표본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등대가 되고 있다.

현재의 독일을 만든 네 차례 결정적 분기점이 있었다. 1949년 제정된 기본법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 헌법 중 하나로 독일이 나치의 재앙을 이기고 민주 국가로 성장하는 기반을 제공했고, 1968년 혁명은 기성세대에 맞서 추악한 과거를 투명하게 인식하고 선명하게 속죄하는 정치·사회적 윤리를 확립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통일에 따른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면서 독일은 안정된 국경을 바탕으로 유럽 통합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2015년 내부의 고통과 정치적 희생을 감수하며 아랍 난민 100만 명을 수용하는 결단을 보임으로써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윤리적 가치를 제시한 국가가 됐다. 전범(戰犯)국가가 전범(典範)국가로 변신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의 독일을 만든 것은 기억의 힘이다.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고 인류를 재난에 빠뜨린 어제의 독일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책임이고, 자신의 좋은 점을 보지 않으려는 반성 문화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나치를 찬양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했으며, 패전일을 ‘자유의 날’로 기념하는 등 전후 독일의 시민의식은 나치 유산에 대한 공포, 수치, 교훈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초법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나치를 반면교사 삼아 독일인은 관행보다 규칙과 절차에,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라 똑바로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공동체의 규칙을 무시하고 타자를 배려하지 않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법치를 통해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일을 억제했다. 사회적 시장주의, 즉 지속적 경제 성장과 사회적 결속의 균형에 따른 눈부신 번영은 그 결과였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독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동시 확보하고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이룩했으며, 일자리 나누기와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통해 탈산업화의 충격을 최소화함으로써 부의 격차를 완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나치 교훈을 잊지 않은 독일은 이제 서구 문명의 숭고한 가치를 여전히 보여주는 나라이자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자유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는 희망의 등불이 됐다. 이번 주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완벽을 추구하고 절차를 지키며 공동체와의 연대를 중시하는 독일을 본받아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끄는 타협과 숙고의 정치가 이뤄져 전 세계가 ‘한국은 왜 잘하는가’를 궁금해할 시간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456쪽, 2만3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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