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민주주의의 무기고

여론독자부 2022. 5. 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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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미국이 선도한 서방 자유민주 진영
우크라軍에 막대한 군수물자 지원
푸틴의 지구전 셈법 완전히 빗나가
막강한 군사력에도 패전 위기 몰려
[서울경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했을 당시 모스크바의 패전 가능성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군에 비해 열두 배나 많은 국방 예산의 뒷받침을 받는, 현대화된 정예군을 거느린 듯 보였다.

우크라이나가 마치 기적처럼 러시아의 초반 공세를 물리친 후에도 장기전에 대한 전망은 회의적이었다. 서방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입었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탓에 양측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을 수 있다. 따라서 풍부한 자원을 지닌 러시아가 장기적인 소모전에서 결국 승리를 거두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싶다. 푸틴이 전황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는지 아무도 단언하지 못한다. 그의 관리들은 과연 그에게 진실을 전할까. 하지만 러시아가 서방을 향해 심각하면서도 애매한 협박을 퍼붓고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등 자기 파괴적인 성질을 부린 것은 이제 시간이 더 이상 러시아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스크바에 있는 누군가가 알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관리들도 낙관적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완승 가능성을 입에 올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답은 미국이다.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미국은 진주만 공습 한 해 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방국들과 협력해 자유의 수호자들에게 전쟁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군수품을 제공하는 ‘민주주의의 무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1940년의 영국은 2022년의 우크라이나처럼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적을 일단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다. 영국 침공에 앞서 제공권 확보에 나선 루프트바페(독일 공군)를 RAF(영국 공군)가 물리친 덕분이었다. 하지만 1940년 말 영국은 또다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무기와 식품 및 오일 등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들여올 재정적 여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곤경에 처한 영국에 막대한 양의 무기와 식품을 제공하는 무기대여법으로 대응했다. 이 같은 지원은 전세를 완전히 뒤집기에는 충분치 않았지만 윈스턴 처칠에게 버틸 힘을 줬고 결국 연합군 승리의 디딤돌이 됐다. 이제 무기대여법이 부활했고 대규모 군사 지원이 미국뿐 아니라 많은 우방국들로부터 우크라이나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바로 이 지원 덕분에 지구전의 셈법은 푸틴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의 경제가 우크라이나에 비해 큰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과는 상대가 안 되고 서방국들의 경제를 한데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 된다. 이처럼 제한된 경제 기반 탓에 러시아는 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대체할 여력이 없다. 예를 들어 서방측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러시아가 2년간의 생산량에 해당하는 탱크를 잃었다고 믿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의 무장은 날로 개선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공할 첨단 중화기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이제 우크라이나의 편인 듯 보인다. 만약 러시아가 눈부신 기동 작전으로 우크라이나군의 주력 부대들을 포위해 이제까지 놓쳤던 극적인 반전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힘의 균형은 계속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만 확실히 해두자. 첫째, 만약 우크라이나가 정말 이긴다면 그것은 모든 자유 진영의 승리가 될 것이다. 전쟁을 꿈꾸는 자들과 전쟁 범죄자들은 멈칫댈 것이고 푸틴의 열혈 팬이었던 서방측 내부의 민주주의의 적은 거친 몸짓과 진정한 힘 사이의 차이에 관한 객관적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다.

둘째, 승리가 현실화할 경우 그 공로는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지만 일부 서방국들의 대담하고 효과적인 지도력이 없었다면 승리는 불가능했을 터다.

보리스 존슨 총리를 둘러싼 구구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이번 위기 내내 서방의 굳건한 반석이었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서방의 결속을 유지하고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무기를 제공하는 등 믿기 힘든 일을 해냈다.

이전의 미국 대통령들은 자유에 관한 명연설을 남겼다. 그중에는 “이 장벽을 제거하라”거나 “나는 베를린 시민”이라는 독일어 연설도 있었다. 물론 잘한 일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단순히 큰 울림을 주는 말 대신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실질적인 방법으로 기여했다. 그가 언제쯤 이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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